전도서 이야기: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I. 들어가며
1. 우리 교회에서 12월 31일을 보내는 법
12월 31일이다. 분명 올해 1월 1일에 '과연 12월 31일이 올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한 해를 시작했는데, 벌써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날이다. 우리 교회에서는 매년 12월 31일이 되면 '송구영신' 예배를 드린다. 아마 전 세계 교회가 비슷한 예배를 드리겠지만, 우리 교회의 송구영신예배는 조금 특별하다. 전교인이 다 같이 성경 66권 중 하나의 책인 '전도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다. 다양한 교회들을 다녀보았지만, 전도서를 읽으면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를 외치는 교회는 우리 교회가 아마 유일할 것 같다. 여기까지만 이야기하면, 뭔가 이상하다. '어라? 우리가 보낸 시간들이 다 무의미하다는 이야기인가?'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1:2)
2. 망년(忘年)과 억년(憶年)
글의 제목이다. 이것도 이상하다. '망년'이라는 단어는 분명히 들어봤는데, '억년'이라는 단어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거 같다. 당연히 그러실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만든 단어이기 때문이다. '나이를 잊는다' 또는 '한 해의 온갖 괴로움들을 잊는다'는 의미의 망년(忘年)은 한 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에 가장 어울리는 단어일 것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단순히 '잊음'으로만 한 해를 마무리하기에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 새로운 단어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한 해를 생각한다' 또는 '한 해를 기억한다'라는 의미의 억년(憶年)이다. 바로 이 두 단어가 앞서 언급했던, '우리 교회에서 12월 31일을 보내는 법'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들이다. 다시 말해, '전도서'를 읽으며 12월 31일을 보내는 것의 의미는 지난 한 해를 잊음과 동시에 기억하기 위함이다.
과연 전도서가 뭐길래 나는 종로에 종소리를 들으러 가지도, 친구나 가족들과 술 한잔 하면서 왁자지껄 한 해 있던 일을 이야기하지도, 연인과 밝은 달을 맞으며 해 뜨는 것을 보러 정동진에 가지도 않고 전도서를 펼쳐서 1장부터 12장까지 읽는 것일까? 자, 이제 전도서 이야기를 시작해보겠다.
II. 전도서(Ecclesiastes)
1. 배경
전도서(Ecclesiastes)는 기원전 931년, 한 갓난아이를 두고 서로가 엄마라는 주장을 하는 두 여인에게 "아이를 반으로 갈라 나눠가지라"라고 판결을 내려 유전자 검사도 없던 당시에 진짜 엄마를 찾았던 재판으로 유명한 '솔로몬'이 쓴 책이다. 성경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이 재판으로 인해서 '솔로몬'의 이름은 그 누구나 다 알고 있다.
... 칼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칼을 왕의 앞으로 가져온지라 왕이 이르되 산 아들을 둘에 나눠 반은 이에게 주고 반은 저에게 주라 그 산 아들의 어미되는 계집이 그 아들을 위하여 마음이 불붙는것 같아서 왕께 아뢰어 가로되 청컨대 내 주여 산 아들을 저에게 주시고 아무쪼록 죽이지 마옵소서 하되 한 계집은 말하기를 내 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말고 나누게 하라 하는지라 왕이 대답하여 가로되 산 아들을 저 계집에게 주고 결코 죽이지 말라 저가 그 어미니라 하매 온 이스라엘이 왕의 심리하여 판결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저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더라 (왕상3:16-28)
솔로몬과 늘 함께하는 단어는 '지혜'라는 단어다. 솔로몬은 성경에서 공인한 지혜로운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솔로몬에게 (1)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 (2) 부; (3) 영광을 주셨다. 성경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나오지만, 이렇게 성경에서 공인하는 인물은 정말 몇 없는데 그중의 하나가 솔로몬이다. 그런데, 이렇게 지혜와 부(돈)과 영광(명예)을 다 가진 솔로몬은 인생을 마치며 모든 것이 헛되다고 고백한다. 바로 그 고백이 담겨있는 책이 전도서이다.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 저희는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왕상3:5-9)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너의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열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왕상3:12-13)
2. 솔로몬의 마지막 당부
1) 솔로몬의 인생 고백
인생의 마지막을 목전에 앞둔 솔로몬이 말한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라며 인생의 헛됨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전도서는 시작된다. 세상의 그 어떤 왕보다 지혜, 돈, 명예를 누린 솔로몬은 시간이 흐르며 자신의 아버지 다윗의 하나님을 믿고 따르던 삶에서 벗어나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살게 되었고 그 삶의 마지막이 되어서야 깨달음을 얻는다. 그래서인지 과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라고 명쾌하고 명료하게 외치던 솔로몬의 목소리에는 힘이 많이 빠져있다. 그 누구보다 대단한 삶을 살았던 솔로몬의 인생 말년이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전1:1-3)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전3:1-2)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잠언 9:10)
솔로몬이 이야기한다. 내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돈과 명예를 가지고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모든 것을 다 해보았다고 말이다. 수많은 종을 부려보고, 금과 은으로 된 많은 것들을 가져보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들을 수없이 많이 부인으로 맞이하며, 그 부인들에게서 많은 자녀들을 낳아본 솔로몬은 모든 것이 헛되어 마치 '바람을 잡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그가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그가 주게 하시지만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전3:26)
2) 인생의 지혜
①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전도서 3장은 모든 것에 기한이 있고 때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시작과 끝은 하나님만 아시고, 사람은 측량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것을 아는 것이 지혜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전3: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전3:11)
②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행복한 삶이 무엇인가에 대해 늘 고민하며 살았다. 행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솔로몬은 행복한 삶을 5가지로 이야기한다. 선을 행하는 삶(전3:12); 서로 도우며 사는 삶(전4:11-12); 입술을 지키는 삶(전5:2-3); 죽음을 기억하는 삶(종말을 기억하는 삶)(전7:2-4); 어느 한쪽에 지나치게 치우치지 않는 삶(7:16-17)이 그것이다.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전3:12)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전4:11-12)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일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 (전5:2-3)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전7:2-4)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케 하겠느냐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 말며 우매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느냐 (전7:16-17)
③ 만족하는 지혜
솔로몬은 만족하는 지혜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여러 가지 교묘한 일로 인하여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우매자는 손을 거두고 자기 살을 먹느니라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으려는 것보다 나으니라(전4:4-6)
④ 헛됨을 깨닫는 지혜
이 모든 것 위에 있는 것이 바로 인생의 헛됨을 깨닫는 지혜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12:8)
3) 솔로몬의 당부: 헛됨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솔로몬은 삶의 끝자락에서 자신의 삶을 크게 뉘우친다. 그리고 자신이 깨달은 것을 나눈다. 우리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이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을 가치 있게 사는 것이라고 외친다. 하루라도 젊을 때 너의 창조자 즉,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목놓아 외친다. 모든 피조물(인간과 동물 그리고 식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은 유한하기에, 무한한 하나님을 순종하고 따르라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일컬어졌던 솔로몬의 마지막 당부다.
① 모두 다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기억하라 (전9:1); ② 모든 인생이 죄인임을 기억하라 (전9:3); ③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전11:9); ④ 시간이 흘러 노인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라 (전12:3-7); ⑤ 청년의 때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 (전12:1-2)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전12:1)
솔로몬이 노년에 자신의 잘못을 크게 깨닫고 뉘우친다. 그리고 청년들에게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며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전도서를 통해 당부한다. 조병호, 『통성경학교』, 통독원, 211면.
내가 마음을 다하여 이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펴 본즉 의인과 지혜자나 그들의 행하는 일이나 다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 미래임이니라 (전9:1)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일반인 그것은 해 아래서 모든 일 중에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 악이 가득하여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다가 후에는 죽은 자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전9:3)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전11:9)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것이며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 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어다 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 길거리 문들이 닫혀질 것이며 맷돌 소리가 적어질 것이며 새의 소리를 인하여 일어날 것이며 음악하는 여자들은 다 쇠하여질 것이며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원욕이 그치리니 이는 사람이 자기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자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라 은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어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어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어지고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12:3-7)
III. 결론: 12월 31일, 무엇을 잊고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12월 31일이다. 지난 한 해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1년을 보내면서 노력과 시간의 대부분을 어디에 쏟았을까? 생계를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하신 분들도 계실 것이고, 시험을 위해 열심히 지식을 쌓고 공부하신 분들도 계실 것이며, 승진이나 임명을 위해 열심히 뛰었던 분들도 계실 것이다. 분명한 것은 생각보다 '지식', '돈', '명예'를 위해 쏟은 시간이 굉장히 많다. 사실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 중에서 단 한 가지라도 죽어서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지식을 가져갈 수 없다. 많은 예금잔액? 엄청난 양의 주식? 호화로운 부동산? 그 무엇도 가져갈 수 없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했지만, 명예 역시 내가 가져가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을 쏟았던 모든 것은 유한한 것이다. 언젠가 없어져 사라질 것들이라는 것이다.
솔로몬은 그 언젠가 없어져 사라질 것들을 자신의 노력 없이 하나님을 통해 받았던 사람이다. 그 누구보다 뛰어난 지혜, 다른 나라 왕비가 와서 눈이 커다래질 만큼 호화로운 재물들, 주변 국가들이 모두 방문해서 예물을 바치는 하늘까지 닿을 거 같은 명예까지. 솔로몬에게 부족함은 없었다. 그런데, 솔로몬은 인생의 마지막에 그것을 깨달았다. 이 모든 것이 언젠가 없어져 사라질 유한한 것들이라는 것을 말이다.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린 뒤,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많은 비용이 들어간 책인 '전도서'가 나오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유한하지 않은 것이 있을까? 분명 무한한 것이 있다. 바로 '사랑'이다. 요한이 분명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이야기했듯, 성경에서 말하는 무한한 것은 바로 사랑이다.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 즉 사라을 기억하는 것은 어떻게 인생의 헛됨을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솔로몬의 답이다. 지난 1년간 유한한 것에 대부분의 시간을 썼던 것을 돌아보고 기억한 다음, 그러한 후회는 잊고 다음 1년간은 '사랑'에 조금 더 시간을 쓰는 것. 그것이 12월 31일, 솔로몬이 우리에게 주는 한마디 선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지금 나의 가족처럼 같이 전도서를 읽으며 내년엔 서로 더 사랑하자고 이야기할 수 있는 미래의 가정을 꿈꾸며.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