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수불부(流水不腐): 물은 흘러야 썩지 않는다
1. "걸어 다니면서 전화가 된대"
초등학교 5학년 때 일이다. 아버지가 핸드폰을 사 오셨다. 016이라는 숫자가 큼지막하게 적혀있는 까만색 휴대폰이었다. "우와!!!" 당시엔 꼬불꼬불 선이 길게 늘어진 집에 전화 코드를 꼽아서 쓰는 전화기만 존재했었기 때문에 그 까만 핸드폰이 너무나 신기했고 멋있어 보였다. 소리를 지르며 집 전화로 전화도 해보고, 아버지 전화로 집에 전화도 해서 받아보기도 했다. '걸어 다니면서 전화를 할 수 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몇 번 장난을 치고 나니까, 부모님은 그거 엄청 비싼 거라며 그만 갖고 놀라고 하셨다. 당시 가격으로도 백만 원이 훌쩍 넘어갔던 고가의 물건이었다.
2년 정도 시간이 지나자, 중학교 같은 반에 친구들 하나둘씩 핸드폰을 들고 오는 친구들이 생겼다. 원래 친구들과 만나서 놀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집에 간 뒤 그 친구 집에 전화를 걸어서 "안녕하세요, 저 O학년 O반 OOO 친구 OOO인데요 OOO네 집인가요?"라는 도덕책에 적힌 이야기를 한 뒤 그 집 어머니가 친구를 바꿔주시면 OOO으로 나와서 놀자고 이야기하고 밖으로 뛰어나가서 해당 장소에 가 만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이제 집에서 전화를 쓸 필요도 그리고 약속 장소를 정확히 정하지도 않고 친구를 부를 수 있는 특권층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아마 대부분 학생들은 그날부터 너도나도 집에 가서 부모님께 핸드폰을 사달라고 엄청나게 졸랐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졸랐으니 말이다. 그 이후 6개월 정도가 지나자, 학교 1/3 정도의 학생들이 핸드폰을 갖게 되었다. 내게도 조그마한 폴더폰 하나가 들려있었다. 친구들과 서로의 핸드폰을 가지고 벨소리가 몇 개가 있는지, 8화음인지, 16화음인지를 가지고 서로의 핸드폰을 비교했다. 물론 액정은 흑백이었다.
2. 가운데 버튼을 누르면 절대로 안 되는 이유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은 핸드폰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배터리가 다 되어서 전화를 할 수 없는 친구들에게 핸드폰을 잘 빌려주곤 했다. 그러나,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단 한 가지 원칙이 있었다. 절대로 핸드폰의 가운데 버튼을 누르지 않는 것이었다. 가운데 버튼은 바로 '인터넷'에 접속하는 버튼이었기 때문이다. 소위 Nate, June, OZ, Show와 같은 통신사의 서비스였다. '무선 애플리케이션 프로토콜(WAS)'이라 불리는 당시의 핸드폰 인터넷은 잠깐 사이에 엄청난 비용이 과금되었고, 대한민국 휴대폰 시장을 왜곡하는 주범으로 꼽혀 왔다.
지금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지만, 당시 게임이나 벨소리를 다운로드하기 위해서는 오직 이동통신사들이 구축한 WAS를 사용하여야 했다. 명백한 독점이자 카르텔이었다. 이동통신사들이 대부분의 콘텐츠 이용을 WAP를 사용하도록 강제하였고, 콘텐츠를 독점하여 콘텐츠에 비싼 정보이용료를 부과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콘텐츠를 다운로드하는데 상당 가격의 데이터 통화료를 부과하였다. 한 통신사는 무선 인터넷을 통해 스마트폰 보급 이전까지 매년 2조 원의 수익을 올렸을 만큼 이는 엄청난 수익상품이었다. 그래서 학생들끼리는 절대로 가운데 버튼을 누르지 않는 것이 암묵적인 규칙이었고, 간혹 가다 실수로 주머니에 들어간 핸드폰의 가운데 버튼이 눌려 몇십만 원의 요금이 청구되어 부모님께 엄청 혼나는 친구들도 있었다. 정말 슬프게도 이러한 고가의 요금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학생도 있었을 만큼 이는 심각했다. 그럼에도 이동통신사들이 이러한 제도를 바꾸지 않았던 것을 나는 아직 기억한다.
3. 평소 사용하는 이어폰을 핸드폰에서 쓸 수 없는 이유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핸드폰에 mp3 기능이 추가된 것은 우리들 모두에게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모두가 mp3 기능이 있는 핸드폰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노래를 넣어와 학교 쉬는 시간에 듣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우리가 mp3 기계에서 사용하던 3.5mm 이어폰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핸드폰 회사에서 만든 특유의 이어폰만 사용할 수 있게끔 설계되어서 나왔기 때문이다. 당시 이어폰 없이 학교에 오는 학생들은 정말 드물었는데, 그래서 학생들의 손에는 핸드폰 회사에서 만든 특정 이어폰 또는 핸드폰과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이어폰을 연결시켜줄 수 있는 젠더가 들려있었다. 당시 mp3와 초기 pmp가 대부분 보급되어있던 상황에서, mp3와 pmp를 위해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3.5mm 잭 이어폰을 구입했던 우리들은 오직 핸드폰에서만 그 이어폰을 사용할 수 없었다.
4. 응? 밖에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고?
시간이 흘러 대학에 입학했다. 60자까지만 쓸 수 있는 문자 메세지와, 딱 100개까지만 저장되는 문자 메세지 때문에 연인과의 문자나 좋아하는 사람에게 왔던 문자를 차곡차곡 하나씩 저장해야만 했다. 중요성이 떨어진 문자메세지는 가차 없이 지워졌다. 대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사람들이 한 선배 주위에 모여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우리는 지금 밖에 있는데, 인터넷이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네이버에 접속하는 것을 보면서 "우와!!!!!"를 외쳤었다. 인터넷뿐만이 아니라 이전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게임을 핸드폰에서, 그것도 터치로 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열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제 있었던 축구 경기를 컴퓨터를 켜지 않고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Wi-fi라는 것을 잡으면 그것도 무료로 말이다. 고의적으로 WLAN을 제거하여 Wi-fi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만들어놨던 당시 국내 핸드폰들만 사용하던 우리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가히 혁명이었다. 대한민국에 아이폰이 등장한 것이다.
5. 아이폰이 바꾼 대한민국의 모습
아이폰이 출시되자, 당시 대학생이던 우리들 손에는 아이폰이 하나씩 들려있었다. 국내 핸드폰 업체들도 하나둘씩 WLAN을 탑재하여 Wi-fi를 쓸 수 있는 핸드폰을 내놓기 시작했다. 모두가 갖고 있던 이어폰을 사용할 수 없게 했던 제조사들은 아이폰을 따라서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이어폰 단자로 핸드폰을 교체하여 출시하기 시작했다. 가운데 버튼을 누르는 것이 무서워서 벨소리를 비싼 가격에 다운로드하지 못하던 우리들은, Wi-fi를 통해 무료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어떻게 바뀔 수 있었을까? 나는 법을 공부한 사람이지만, 이러한 혁신이 법정에서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을 보며 법의 한계를 느낀다. 비싼 핸드폰 요금에 밤새 괴로워하다 자살을 선택했던 한 학생의 사건이 있은 뒤, 소비자단체와 학생 부모님은 함께 소송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법이 해결해준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국회의원들은 오히려 너도나도 외산 핸드폰을 제한하는 법을 만들고(IMEI 화이트리스트), 이동통신사들의 편의를 봐주는 법과 규정(Sim락)을 만드는데 몰두했다.
어떠한 것이 변화하는 데에는 수없이 많은 '변인'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시기를 살아오면서 수없이 많은 핸드폰을 바꾸고, 핸드폰 가운데 버튼을 누르는 것을 두려워하며, 벨소리를 바꾸면서 많이 나온 인터넷 요금에 깜짝 놀라던 내 경험을 비추어볼 때, 대한민국 시장 속 아이폰의 등장은 이러한 변화를 주도한 '주요한' 원인임에 틀림없다.
6. 유수불부(流水不腐): 물은 흘러야 썩지 않는다
정말 먼 옛날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 같지만, 내겐 아직 생생한 불과 10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일이다. 재미난 사실은, 저러한 일들이 존재하고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국산 핸드폰만 오래 사용해왔다. 무엇이 문제인지도 잘 몰랐고,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 게다가, 학교 수업시간에 귀에 못이 박히게 신토불이(身土不二)의 사상이 내게 남아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고, 외산은 나쁘다는 것 말이다.
일련의 이야기를 통해 내가 뼈저리게 느꼈던 사실은 '물은 흘러야 썩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욕심에 제목을 '아이폰을 쓰는 이유'라고 붙였지만, 사실 여기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단순히 핸드폰이나 이동통신에 그치지 않는다. 크고 작은 권력, 트렌드, 문화에 이르기까지 고립되어 좁은 시야를 유지하는 것은 결국 물을 흐르게 하지 못하고 흐르지 못한 물은 썩어버리게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 글이 단순히 '외산이 좋다'라거나 '무조건 변화가 좋다'라는 식의 왜곡되고 단편적인 인식으로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변화에 순응하지 못하고 고립되거나, 좁은 시야만을 유지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내 손에 들려있는 아이폰을 생각하곤 한다. 법-정치-경제-사회 모두가 얽히고설킨 이해관계 속에서 4,00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앞서 내가 이야기 한 불편함을 겪었던 것을 생각한다. 그 모든 불편함과 부조리 그리고 부정의를 타파했던 원동력은 '자정(自淨)'에 있지 않았다.
지난 1년을 돌이켜보았을 때, 대다수의 국민들을 분노하게 하는 것은 권력자의 '권력의 사유화'였다. 보수와 진보, 여와 야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은 국민을 위해 일하기 위해 국민이 쥐어준 권력을 가지고 자신의 이익을 취하거나, 자신의 가족의 이익을 취하는 것에 국민들은 크게 분노했다. 어찌나 분노했는지 지난 1년간 우리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가까이서 지켜봐 왔다. 그러나 이는 단지 1-2년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한민국 정사 모두에 걸쳐 있었던 일이다.
나는 항상 이러한 사회문제들을 보면서, 뜬금없게도 난 아이폰을 떠올린다. 흐르는 물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흐르는 물은 고여있는 물처럼 썩지 않는다. 변화를 두려워하기만 해서는 물은 흐를 수 없다. 변화 속에 희망이 담겨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유수불부(流水不腐), 물은 흘러야 썩지 않는다" 끊임없이 이를 일깨워주지 못한다면, 나 역시 어딘가에 고여 썩게 될 것이 아닌가? 내가 아직 아이폰을 쓰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