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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용석 Mar 23. 2021

위대한 아버지

Dick Hoyt, 이곳에 잠들다

1. 위대한 아버지 딕 호이트, 이곳에 잠들다

  누군가의 죽음을 널리 알리는 것을 부고(訃告)라고 한다.  누군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우리는 그 소식을 알린다.  대부분 사람들의 죽음은 주위 친인척 및 친구들에게는 큰 영향을 미치지만, 대중들에게 크게 조명받지는 못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살면서 행한 일들로 대중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끼친 사람일수록 그 부고 소식은 더 널리 전달되고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만든다.  


  바로 며칠 전, 3월 17일 한 아버지의 부고가 전 세계로 전해졌다.  CNN, Times 등등 수많은 세계 언론들이 앞다투어 그의 부고를 전한 것이다.  보통 전 세계로 부고가 전달되는 경우는 세계적 지위를 가진 정치인이거나 기업인인 경우가 많겠지만, 이번 부고는 한 아버지의 소식이었다.  그 소식은 보스턴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한국에 있는 나의 마음까지 아프게 했는데, 그런 것을 보면 그는 참 위대한 아버지였던 거 같다.


2. 딕 호이트와 릭 호이트의 '팀 호이트'

  모든 것이 그렇지만, 스포츠는 더욱더 냉정하다.  모든 사람을 그 인생의 이야기로 보지 않고, '숫자'로 계량화하기 때문이다.  특히 기록에 따라 1등부터 꼴찌까지의 순위가 정해지는 스포츠는 더욱 그렇다.  사람들은 대부분 1등이 누구인지를 기억하고, 누가 결승지점에 마지막으로 도착했는지를 크게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 참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1989년 하와이, 철인 3종 경기 대회가 개최되었다.  1800명의 선수들이 참가하는 큰 대회였다.  3.9km의 수영, 180.2km의 사이클, 42.195km의 마라톤으로 구성되어 총 226km의 장거리 강행군이 이루어지는 이 철인 3종 경기의 제한시간은 17시간이다.  대회 도중 대회를 포기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모두가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런데, 아직 1명의 참가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17시간의 제한시간은 가까워져 왔고, 사람들은 하나둘씩 '도전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어, 처음부터 불가능할 줄 알았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그들의 눈에 저 멀리 달려오는 두 명의 모습이 들어왔고, 모두는 환호하기 시작했다.  16시간 15분.  49세의 아버지 딕 호이트는 중증 뇌성마비로 인해 거동이 불편한 27세의 아들 릭 호이트를 휠체어에 매단 채 결승지점을 통과했다.  팀 호이트의 첫 철인 3종 경기 기록이었다.

ⓒTeam Hoyt


  팀 호이트의 시작은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했다.  중증 뇌성마비로 인해 계속해서 정적으로 앉아있어야 했던 릭이 '달리는 것'을 원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딕은 곧바로 휠체어를 끌고 밖을 나섰다.  살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았지만, 무작정 휠체어를 뒤에서 밀면서 달렸다.  휠체어에 앉아서 바람에 머리칼이 휘날리고 있는 자신의 아들의 얼굴에 자신이 평생 본 적이 없는 환한 미소가 피어있는 것을 본 딕은 달리기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혼자 하는 달리기가 아닌, 같이 하는 달리기였다.  


  하반신 마비 농구선수의 치료비 마련을 위해 열린 8km 자선 달리기 대회를 시작으로 둘은 하나의 팀이 되어 달리기 시작했다.  첫 대회에서 맨 뒤에서 2번째로 들어온 그 둘이었지만, 완주를 마치고 릭은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장애가 사라진 거 같다는 이야기를 건넸다.  이 말은 한 아버지로 하여금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살게 만들었다.  보스턴 마라톤이라는 큰 대회에서 첫 완주에 성공하고, 완주하는 것이 점차 익숙해지자, 이 부자는 철인 3종 경기에 도전했다.  아들을 보트에 태워서 자신의 몸과 묶은 다음 수영 훈련을 시작했고, 자전거에 아들을 연결시켜 페달을 밟기 시작한 것이다.


  2시간 40분 47초, 팀 호이트의 마라톤 42.195km 최고 성적이다.  아들을 몸에 묶어서 끌면서 달렸는데, 이렇게 좋은 성적이 나오자 주변에서는 딕에게 "아들 없이 출전한다면 더 놀라운 성적을 낼 수 있을 텐데, 어때?"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딕은 자신의 달리기는 아들이 없이는 할 이유가 없다며 이를 단칼에 거절했다.  보스턴 마라톤 출발선 근처에는 이들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이 얼마나 위대한 아버지란 말인가!


ⓒ2021 Boston Herald, MediaNews


3. "아빠 이건 뭐야?"

  아이들은 끊임없이 질문한다.  모든 것이 새롭기 때문에 질문하는 것이다.  난 어렸을적 유난히 질문이 많았던 아이였다고 한다.  쉴 새 없이 말을 했고, 끊임없이 물어봤다.  그래서 엄마 아빠의 일상은 늘 나의 질문들로 이루어졌다.  그때마다 우리 부모님은 내게 성심성의껏 대답해주고, 그 대답이 불충분할 때에는 관련된 책을 꼭 사서 주셨던 것을 기억한다.  그래서 내 방 서재에는 항상 다양한 장르의 책들이 꽂혀있었다.


  어렸을 때, 세상을 잘 몰라 "아빠 이건 뭐야?"를 외치던 어린아이가 한참 나이를 먹었는데 아직도 변한 것이 없다.  삶을 살아가면서 고민되는 것들, 그리고 이미 내가 걸어가는 삶을 살았던 나와 가장 닮은 아버지에게 나는 오늘도 똑같이 질문을 던진다.  이 나이에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만약에 돌아간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나이는 들었지만 질문은 항상 똑같다.  "아빠 이건 뭐야?"  내가 존경하는 아버지에게 이러한 질문을 아직 할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4. 어떤 아버지가 될 것인가?

  아직 결혼도 안 했고 심지어 연애도 하고 있지 않지만, 하나둘씩 지인들이 부모가 되는 것을 본다.  아직 많진 않지만, 친구들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 간간이 갓난아이의 얼굴이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놀랍다.  같이 학교에 다닐 때, 그 친구가 얼마나 철이 없는 개구쟁이였는지 다 알고 있는데 사진에 있는 그 친구는 영락없는 한 아이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많은 고민이 생겼다.  어떤 아버지가 될 것인가?  사실 이 답은 내게 크게 어렵지 않다.  '우리 아빠 같은 아버지'라는 답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 답의 내용은 내가 알 수가 없다.  나는 아들로서 우리 아버지를 보았지만, 아버지의 입장에서 아버지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 아버지가 내게 위대한 존재로 여겨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다.  전세계 사람들이 "위대한 아버지"라고 이름 붙이길 주저하지 않는 닥 호이트와 나의 아버지를 잇는 하나의 연결점을 발견했다.  바로 '꿈'이라는 단어다.  딕 호이트가 장애로 몸이 마비된 자신의 아들 릭의 '달리는 것'이라는 꿈을 현실로 만들어주었듯, 나는 나의 아버지를 통해 나의 꿈을 이루어가는데 하나부터 열까지의 지원과 응원을 받았다.


  어떻게 위대한 아버지가 될 것인가?  정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오래도록 이루어지겠지만, 우선 그 답의 가안은 '꿈'이다.  주입된 꿈도 아니고, 강제된 꿈도 아닌, 한 생명의 꿈은 그 한 생명을 살아가게 만드는 근원적인 생명력이 된다.


팀 호이트의 휠체어 바퀴에는 "It's a good life"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꿈을 향해 달려가는 두 부자의 모습과 정말 잘 어울리는 문장이다.

ⓒPortland Press Hera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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