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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용석 Jan 27. 2016

진정한 싸움은 무엇인가?

고통받는 이 세상 사람들을 위한 싸움

사람들 사이에 무엇이 옳은가 그른가, 어떤 것이 자신이 보기에 더 합리적인가와 같은 크고 작은 싸움들이 있다.


타자들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면서 갈등을 완전히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따라서 어떤 싸움은 싸워야 하고 어떤 싸움은 넘어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수많은 갈등의 가능성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영원히 우리의 곁을 떠날 수 없다.


조선시대 성리학에 심취해있던 지배층의 이기논쟁예송논쟁으로 얼마나 많은  작디작은 백성들이 신음소리와 비명을 지르며 죽었는가!


정약용 선생은『애절양』에서 왜 그 농민은 자기 자신의 생식기를 칼로 자를  수밖에 없었는지를 보며 눈물을 흘린다.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레오니다스는 스파르타의 용사 300명과 함께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주변 국가들을 위협하는 '제국'에 맞서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싸움을 하며 장렬히 전사했다.


우리는 인조반정으로 엉겁결에 왕권을 잡은 인조에게 그렇게 당하고도 국가를 위해 "전군  출정하라"를 외치며 명량에 배를 타고 나갔던 이순신 장군의 싸움을 기억한다.


23,000명의 병사 중에서 두 가지 기준에 맞추어 단 300명 만을 추린 뒤에 유유히 가서 단 한명의 목숨도 잃지 않고 민족을 지켰던 기드온의 싸움은 성경에 생생하게 적혀있다.


피부 색깔에 따라 구분 지어지는 나라는 하나님 나라와 가깝지 않지 않다는 이들의 생각에서부터 시작된 남북전쟁으로 아메리카 대륙에는 수많은 피가 흩날렸다.


그리고 그 결과로 나온 '모든 인간은 피부 색깔에 상관없이 평등하다'라는 테제가 아메리카 대륙에 등장했다. 그 테제와 함께 '이렇게 하면 하나님 나라에 가장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꽃 피운 민주주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지금은 홉스가 말했던 괴물(리바이어던)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성경의 짧디 짧은 책인 『빌레몬서』에는 바울의 싸움이 나온다. 바울의 싸움은 하나님 나라를 향한 싸움이었다.


우리는 어떤 싸움을 위해 목숨을 걸 것인가?


사사로운 일들에 싸움을 할 것인가, 아니면 사사로운 일들은 접어두고 큰 싸움에 집중하며 더 좋은 세상을 이 땅에 임하게 하는 싸움에 나갈 것인가?


Why Not Change the World?

이 세계에는 지금도 굶고 있고, '인권'이 없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수많은 소외된 그 사람들의 손과 발을 누가 잡아줄 것인가?


매일 총으로 서로를 죽였던 브라질 빈민가에 들어가 그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교육을 실천해 브라질 빈민가를 완전히 변혁시켰던 파울루 프레이리와 같이, 무시받는 이들에게 인격적으로 다가가 그 사람과 '이웃'이 되어 주는 것.


한나 아렌트 같이 노동자의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


위르겐 하버마스 같이 힘이 없고 돈이 없더라도 그 어떤 이라도 나와서 모두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론장'을 만들어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이야기가 열려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


그 옛날 '조선형평사'를 만들어 백정의 인권을 이야기하던 우리의 선조들이 생각난다.


지금도 자유가 없이 봉건적 왕정에서 살아가는 우리와 피를 나눈 이북의 우리 민족들이 존재한다. 엠마뉘엘 레비나스가 『존재에서 존재자로』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어떻게 그들을 '존재'에서 '존재자'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우리에겐 큰 싸움이 있다! 진정으로 피 튀기며 싸워야 할 싸움이 있다! 그러나 작지만 피가 흩뿌려지는 싸움도 존재한다. 내가 오늘 어떤 차를 타는지, 어떤 집에 사는지, 통장 잔고가 어떻게 되는지, 나를 사람들이 어떤 호칭으로 부르게 되는지와 같은 것들... '나'에 집중된 이익들.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너 자신에게 집중해"라고 끊임없이 말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작은 싸움들에 얽매여 있을  없다. 지금 당장은 지는 것 같지만, 우리는 단지 큰 싸움을 위해 준비할 뿐이다.


김지와 조준이 외딴곳에서 가졌던 10년의 세미나가 곧바로 세상의 빛을 본 것이 아니라 세종대왕을 통해 조선의 백성들에게 희망이 되었던 것처럼...


사사로운 일들에 싸움을 할 것인가, 아니면 사사로운 일들은 접어두고 큰 싸움에 집중하며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임하게 하는 싸움에 나갈 것인가?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이사야 61장 1절-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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