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음 그리고 타자의 마음
우리는 필연적으로 타자와 함께 살아간다. 그 타자는 마음을 가진다.
그 아무리 정의를 구하고, 공의를 구하고, 법치주의 하에서 적법을 추구하고, 논리의 완성을 이루며 도덕과 윤리를 비롯한 수많은 좋은 가치를 지킨다 하더라도, 나와 뜻이 다른 사람 바로 그 한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어찌 그것이 가치있다고 하겠는가
한사람 한사람의 마음을 얻고 그들과 함께 마음을 나누며 걸어가는 것 보다 그 어떤 무엇이 중요하고 소중한가.
내가 원하는 사람의 마음 하나도 얻지 못한다면, 어찌 다른 많은 이들의 사랑과 마음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겠는가.
마음은 어떤 것일까?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의 삶의 많은 움직임은 사실 '마음'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본능에 의한 움직임을 제외하고(배고픈 마음이 드는 것은 아니니까), 또한 '강제'에 의한 움직임을 제외하면(불가항력적인 강제), 우리의 선택은 '마음'에서 시작된다. 사실상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시작된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속담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우주 저 멀리있는 달과 화성을 탐사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과 힉스분자를 알아내었지만 아직까지 사람의 마음은 알아내지 못한 것은 바로 마음의 어려움을 증명해주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또,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는 표현 역시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는게 아닐까?(물론 남자의 마음도 마찬가지지만)
인간의 마음이 이렇다는 것은 이미 예전부터 기록되어왔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가장 오랜 역사를 기록한 책; 성경에서 이러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의 마음이 뱀에게 빼앗겨 금지된 선악과를 먹었던 것,
구약에서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갈팡질팡 하며 제사장 나라 계획들을 망쳤던 것,
신약에서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며 3년을 지냈던 제자들이 십자가 사건 이후로 마음이 번민하여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던 것,
결국 모든 것은 '마음'에서 시작되어왔다.
사랑도, 눈물도, 변화도, 혁명도 사실 다 마음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좋은 것 뿐만 아니라 배신과 타락 그리고 죄 역시도 그렇다.
내 마음은 어떤가? 사실 나는 내 자신을 제일 부족하고 악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자신이 괴수중의 괴수라는 사도 바울의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나이며, 그 괴수의 시작도 근원도 내 마음이다.
그래도 앞으로는 내 마음을 다른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알 수 있게 진정성과 진실함으로 나아가고 싶다.
예수가 쓰신 새 언약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다. 그것을 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크리스찬들은 이 사회의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게 아닐까?
하나님께도 그리고 만나는 이웃(타자)들에게도 마음의 진정과 진실함으로 향하고 싶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시작된다
마음이 변하면, 모든 것이 변한다
플라톤의 말처럼, 마음은 현실을 만들고 우리는 마음을 바꿈으로 현실을 바꿔간다. Why not change the world?의 가장 근원적인 답은 '마음'이 아닐까?
예수님이 품었던 '한 영혼 사랑'의 마음을 품고 싶다. 그래서 나의 현실도, 우리의 현실도 조금더 따뜻하게 바꾸고 싶다. 오늘도 그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