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두려움
떠난다는 것은 본래 있던 곳에서 그곳이 아닌 곳으로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금 더 깊이 이야기하면, 공간의 차원에서 변화를 겪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언제나 공간에 머무른다. 그렇지 않은 인간은 없다. 그 공간의 통계를 내어 보았을 때, 주로 머무르는 곳을 우린 '집'이라고 한다.(회사에서의 시간이 더 많다면... 그건 참 슬픈 일이다)
우리가 '떠남'이라는 단어를 쓸 때에는, 앞서 논의한 '집'의 공간을 바꾼다는 의미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집 밖에 친구를 보러 가는 것을 떠난다고 이야기 하지 않기 때문이다.
'떠남'은 두려움을 동반한다. 익숙한 공간에서 낯선 공간으로 가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경험이기 때문이다. 떠남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가운데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없다.
떠남은 새로운 출발이며 시작이 될 수 있기에 희망이다. 그러나 한편, 두려움이며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떨어짐이다.
'떠남'의 첫 시작은 누구였을까? 가장 오래된 책 성경에서 그 인물을 찾을 수 있다.
창세기 12장 1-5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아브라함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집을 떠났다. 본토 친척 아비 집으로부터 자신의 결정으로 멀어진 것이다.
얼마나 두려웠을까.. 얼마나 걱정했을까.. 75세의 나이는 새로운 시작에 어울리지 않기에 그 걱정과 두렴은 배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의 조상'이라 부르는 아브라함은 '믿음'을 갖고 떠났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땅으로 가면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을 주신다는 그 약속과 복의 근원이 되게하신다는 말씀을 붙잡았다.
내게 주신 약속을 믿으며 오늘 나도 내 발걸음을 내딛는다.
"내일의 집은 오늘의 집이 아니리라. 그러나 오늘 나의 하나님은 변함없이 동일하게 내일의 내 하나님이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