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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용석 Oct 15. 2018

바울과 바나바는 왜 싸웠나?

2차 전도여행 직전에 일어난 바울과 바나바의 싸움

I. 들어가며: 성경에 담겨있는 이야기들

1. 싸움

  우리 참 많이 싸우면서 살아간다.  모르는 사람들 혹은 그다지 가깝지 않은 사람들과만 싸운다면, 그건 사실 크게 걱정할 문제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와 싸우는가?  가장 친한 사람들,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투고 싸운다.  어제까지 "사랑해, 보고 싶어"를 속삭이던 아름다운 한 쌍의 남녀가 오늘은 "네가 없어졌으면 좋겠어!!!"라고 서로에게 고함을 지른다.


  나도 마찬가지다.  가장 좋아하는 친구와 다투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다툰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감정이 상하는 순간이 오는데, 그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그대로 표현하게 되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다툼으로 나아가게 된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사랑하는 관계일수록 마음은 가깝게 느껴지고 나의 생각과 감정을 조금 더 자유롭게 표현하게 된다.  그래서 아무리 가까운 관계라 할지라도 다툼과 갈등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오히려 다툼과 갈등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먼 관계임을 의미할지도 모르겠다.


2. 성경에 있는 갈등과 다툼

  성경은 정말 흥미로운 책이다.  우리 삶은 시간∙공간∙인간으로 이루어지는데, 성경 전체에도 시간∙공간∙인간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개인∙가정∙나라라는 틀에서 살아가는데, 성경 전체에도 개인∙가정∙나라 이야기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특히, 앞서 말했던 '갈등과 다툼'이야기가 성경에는 가득하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은 우리 만큼이나 작은 것을 가지고 싸우고 다툰다.  성경을 읽으면서 위로를 받는 가장 큰 부분이다.  '나만 이렇게 부족한 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


  우리는 흔히 '바울'을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심지어 '바울 신학'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현대 대한민국 기독교계에서는 바울의 권위가 더욱더 견고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그 대단한 바울이 자신의 가장 가까운 동역자인 '바나바'와 싸웠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리고 그 싸움은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인 '성경'에 고스란히 적혀있다.


II. 바울과 바나바의 다툼

1. 배경

  바울과 바나바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가까운 동역자 관계다.  그 둘은 가까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 2년 동안 함께 전도여행을 하면서 매일을 붙어 다녔고, 매 맞고, 춥고, 배고픈 그 고통을 곁에서 함께 느껴가며 동고동락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전도여행에 다녀온 이후에도, 그 둘이 어떠한 것을 경험했고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역사하셨는지에 대해서 함께 간증한다.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간절한 목소리로 외친 그들의 간증과 믿음의 고백은 사도행전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들 중 하나이다.  


*바울과 바나바의 1차 전도여행에 대해서는 이 글을 보면 더 빠르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랬던 바울과 바나바가 다투게 된다.  이 두 믿음의 거장은 무엇으로 다투었을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생각?  하나님의 '의'에 대한 고찰?  모두 아니다.  이 둘은 2차 전도여행의 인원을 꾸리는 것에서 다투게 된다.  그들의 다툼을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의 글에 있었던 내용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1차 전도여행은 사실 3명으로 시작했었다.  바울, 바나바 그리고 마가 요한.  그러나, 전도여행이 너무나 힘들고 고단하여 마가 요한은 중간에 전도 여행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만다.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저희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행 13:13)


2. 바울과 바나바가 다투게 된 이야기(행 15:36-41)

  안디옥 교회를 안정적으로 만들고 나서, 사도 바울은 지난 1차 전도여행 때 다녀온 교회들에 대해 생각한다.  그 교회들은 잘 지내고 있을지, 혹시나 잘못된 가르침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을지, 지나친 핍박 속에 있지는 않을지... 수많은 고민들과 걱정들 끝에 사도 바울은 바나바에게 지난 1차 여행 때 다녀왔던 교회들을 다시금 방문하자고 말한다.  그렇게, 바울과 바나바는 2차 전도여행을 계획하기 시작한다.  1차 전도여행 이후 예루살렘 공의회를 통해 가시적인 긍정적 결과물이 나왔기 때문에, 2차 전도여행을 계획하는 그들의 마음은 기대감으로 한껏 부풀어 올라 있었을 것이다.


  바나바가 말한다.  "우리 마가 요한도 데려갑시다."  그러자, 사도 바울이 대답한다.  "마가 요한은 1차 전도여행 도중에 우리와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하고 도중에 돌아간 사람인데, 어떻게 그런 사람을 2차 전도여행에 데려간단 말이오?"  아마 바나바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마가 요한이 첫 선교 때 실수를 했고, 그것이 우리에게 큰 상처로 남은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가 지난날 행동을 반성하고 다시 선교팀에 합류하겠다니 그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바울은 끝까지 자신의 의견을 꺾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미 한번 전도여행에서 동역자들에게 등을 돌려 돌아갔던 사람이오, 어찌 우리가 그 사람과 또다시 전도여행을 떠난단 말이오?  이건 애들 장난이 아니올시다"  바나바와 바울의 싸움은 이렇게 시작되지 않았을까?


  성경은 그들이 이 대화를 기점으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섰다'라고 말한다.  말 그대로 대판 싸운 것이다.  그 이유는 '팀원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행 15:37-38)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행 15:39-40)


  그래서 바울은 바나바와 각각 서로의 팀을 꾸려 2차 전도여행을 떠난다.  바나바는 마가 요한과 함께 여행을 떠났고, 바울은 "바울, 실라, 디모데, 누가(중간 합류, 추후 중요한 역할)"와 함께 여행을 진행한다.  

Paul and Barnabas Arguing


3. 그 이후 이야기(딤후 4:11)

  이후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히게 되는데, 자신의 마지막 편지인 '디모데후서'에서 마가 요한을 언급한다.  "마가 요한을 내게 데려오시게, 그가 내게 유익하오"라고 말이다.  이 장면은 마가 요한이 추후 바나바와 얼마나 멋지게 복음을 증거하고 전파했는지를 잘 알려주는 동시에, 바울 역시 자신의 젊은 시절 과오를 생각하며 마가 요한과의 갈등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게 손을 먼저 내미는 장면이다.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딤후 4:11)


  그런 바울의 기대에 부응하듯, 마가 요한은 신약의 4복음서 중 하나인 『마가복음』을 기록하며 그 누구보다 앞선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전파하는 순교자의 삶을 산다.

Paul In Prison—Rembrandt, 1627, Stuttgart, Staatsgalerie


III. 나오며: 바울과 바나바의 '두 가지 리더십'

  흔히 심리테스트나 성격 검사를 하면, '리더십'의 측면 혹은 '일'을 대하는 성격에 대해서 크게 두 가지 분류를 한다.  그것은 바로 1) 관계 중심적인 성격과 2) 업무 중심적인 성격이다.  '업무'를 받아 수행하거나 '단체'를 구성해서 일을 할 때에 크게 두 가지 성격의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그 구성원들과의 '관계'에 더 큰 비중을 가지고 일을 처리하는 사람과, 또 하나는 업무 자체의 달성과 효율에 집중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구분을 하는 것은 많은 사람이 이 둘 중 하나로 구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분류는 결코 무엇이 더 나은 것인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특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분류는 오늘의 이야기에도 적용될 수 있다.  바울은 업무 중심적, 바나바는 관계중심적으로 구분될 수 있을 것이다.


'관계 중심적'이십니까? 아니면 '업무 중심적'이십니까?


  100번 심리 검사를 하면, 나는 100번 다 "업무 중심적"이라는 결과를 받는다.  나는 과업이나 목표 지향적인 편으로 우리가 오늘 살펴본 이야기에 나오는 바울과 굉장히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  만약 오늘 이야기에서 내가 바울의 자리에 있었더라면, 나도 바울과 같은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그리곤 중도 포기했던 요한을 함께 데려가자는 바나바를 향해 이런 말을 내뱉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전도 여행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내게 있어서 '바나바'의 모습은 큰 교훈을 준다.  그 사람의 결과물(행함)보다 그 사람 자체의 가치(존재)를 바라보고 끝까지 믿어준 바나바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와 성향은 다르지만 바나바가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결정적으로 바나바의 그러한 믿음에 부응하여 마가 요한은 추후 기독교 선교사에 큰 획을 긋게 된다.  바나바가 중도 포기자였던 마가 요한을 끝까지 믿어주지 않았더라면 우리 손에 들려있는 성경에 『마가복음』은 빠져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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