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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용석 Mar 05. 2018

서른즈음에

나이 서른에 시작하는 인턴

나이 서른에 학교를 다니고 있다. 한참 어린 후배가 한마디 말을 거든다. "오빠는 이제 서른즈음에 노래 못 부르겠네요, 서른 즈음이 아니라 '서른'이니까." 그렇다. 서른이라니!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대학을 입학한 지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또 로스쿨에 입학한 지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로스쿨 졸업반이 되었다. 어렸을 때, 잘 이해되지 않았던 김광석 씨의 노래 가사들이 하나씩 이해가 되는 나의 모습을 보며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든다.


성경의 인물들의 서른은 어떠했을까? 또한 성경에서는 나이 서른을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민수기에서 모세는 '회막'에서 일할 수 있는 레위 자손의 나이 기준을 30세 이상(30세-50세)으로 잡았다. '성막'과 '회막'은 구약의 제사법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였기 때문에 이는 의미가 있다. 즉 정신적으로 성숙하고 육체적으로 강건하여 회막의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는 나이를 30세 이상으로 본 것이다.


"곧 삼십세 이상으로 오십세까지 회막의 일을 하기 위하여 그 역사에 참가할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라"
(민수기 4:3)

"삼십세 이상으로 오십세까지 회막 봉사와 메는 일에 입참하여 일할만한 모든 자"
(민수기 4:47)


어려서부터 수많은 어려움에 직면했던 요셉은 나이 서른에 애굽에서 총리가 되어 이스라엘 민족을 '입애굽'시켰고 이를 통해 '민족'을 구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였던 다윗 역시 나이 서른에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다윗은 직후에 사울에 의해서 쫓겨다니며 수많은 수모와 고초를 당하며 가지고 있던 독기를 빼고 어깨에 들어가 있던 힘을 빼게 된다. 그렇게 '고통'에 대해 이해했던 다윗이기에 다른 이들을 위로할 수 있는 '시편'을 쓰게 된 것이 아닐까.


예수님은 나이 서른 즈음에 사역을 시작하신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는 바로 '누가'가 예수님이 가르침을 시작한 시점을 기재해 놓았기 때문이다. 30년이나 준비하시고, 단 3년간의 사역을 통해 모든 사람들을 불타는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하셨다. 그분은 기쁨을 위해 탄생하셨고, 내내 한 영혼을 사랑하셨으며, 또한 용서를 향한 열정으로 십자가에 달리셨다.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삽십세쯤 되시니라...”
(누가복음 3:23)


예수님을 비롯하여 수많은 성경의 인물들은 나이 서른에 하나님에 의해서 쓰였고, '장성한 자'로 인정받았음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유대인의 성년 기준은 '30세'라고 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의 인식은 어떨까? 공자가 한 이야기들 중에 특히 우리 일상에서 정말 많이 쓰이는 것이 바로 '나이'에 관한 이야기다. 그가 논어(論語) 위정(爲政) 편에서 말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사람들은 각각 15세, 30세, 40세, 50세, 60세, 70세에 단어를 붙여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중 나이 서른(30세)을 부르는 단어가 "이립(而立)"이라는 단어다. 이립은 나이 서른 즈음에 한 사람이 가정적으로, 또한 사회적으로 나아갈 모든 기반을 닦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나이 서른은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설 정도의 자격과 실력을 갖추는 시기이자 20대에 세운 뜻을 이루는 시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나는 나이 서른에 인턴을 시작했다. 미국 알라바마주(Alabama)에 위치한 알라바마 대법원(Alabama Supreme Court)에서 인턴으로 일을 한다. [인턴 문용석, 30세]라는 직함이 어색하기만 하다. 가정적으로, 사회적으로 나아갈 모든 기반을 닦는다는 서른에 돈 한푼 받지 못하는 인턴이라니... 한편으로는 마음이 착잡하기도 하다. 게다가 토종 한국인인 내가 이곳에서 어떤 것을 배울 수 있을지, 또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다만, 미국 로스쿨에 처음 입학하면서 나의 첫 노트에 써놨던 목표 하나를 이뤘다는 것에 참 감사하다. 미국 사법체계를 직접 몸으로 체험하는 것은 내가 바라고 꿈꾸었던 소망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Alabama Supreme Court

 

나는 대법원 9명의 판사님들 중 한 분의 밑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머무는 동안 미국의 사법체계를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고 직접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특히, 지금 알라바마주는 '판사 선거'가 한창인데 사법부의 주요 수장들을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통해 선출하는 사법 선거 시스템을 많이 배워오고 싶다. 이후 통일 대한민국에서 헌법을 개정할 때 내가 배우고 느낀 것들이 사용될 수 있길 바라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뿐이다.


요셉, 다윗, 예수님과 같이 아직은 '이립'하지 못한 나의 서른이다. 많은 연봉, 어디든 갈 수 있는 자가용, 사회적인 직함, 부모로부터의 완전한 독립, 결혼을 준비할 수 있는 안정적인 사회생활... 그 어떤것도 이루지 못했지만, 아직은 꿈꿀 수 있음에 감사하다. 내게 서른은 아직 꿈꾸는 나이다. 더 나은 대한민국 사법시스템을 만들어보고 싶고, 조금 더 정의가 없는 곳에 정의를 외쳐보고 싶다. 세계 유일한 분단 국가에서 평화를 노래하고 싶고, '법'이 어떻게 '사랑'일 수 있는지 하나님이 본래 계획하신대로 법을 사용해보고 싶다. 난 대한민국의 시민이면서, 동시에 하나님나라의 시민이다. 그래서 '법'을 배우고 '정의'를 배워서 조금 더 나은 '시민'이 되고 싶다. 본 문단의 두 번째 문장을 쓰면서 조금은 시무룩해졋지만, 아직은 이런 '꿈 이야기'를 할 수 있음에 마음 한켠 감사함이 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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