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용석 Feb 26. 2018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할 수 있을까?

MBTI 검사를 하면, 반드시 사람마다 두각을 나타내는 분야가 존재한다. 난 E(외향적) 성향과 P(계획적) 성향이 아주 극도로 높은 편이었다.


이 두 가지 성향을 조합해 보면, 나는 반드시 계획을 하고 무엇인가에 뛰어드는 것을 즐기며, 그때그때 갑자기 진행되는 일에도 순간순간 적당한 계획을 통해 큰 그림을 그려놓는다.


오늘 아침, 5년 만에 외국으로 발길을 향했다. 미국 알라바마 주 대법원에서 잠시나마 일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쁜 마음에 짐을 싸고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비행기를 예매하고, 또 후속 비행기를 예매하고 렌트카 예약을 끝냈다.


그러나 한국을 떠나 중국을 경유해 뉴욕으로 가는 나의 비행기는 미국 동부 폭설로 인해 결항되었고, 5일이라는 시간을 기다리라는 일방적 통보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머리를 써서 날아간 중국 다른 지방 '심천'에서 LA로 가는 비행기는 비자 문제로 다시 엎어졌다. 꼼짝없이 베이징에서 며칠을 보내야 했고, 덕분에 약속된 일 시작 일정도 차질을 겪게 되었다. 미국에서 연결 편 항공은 돈을 내고 타지 못하게 되었고, 렌트카 계약금도 날리게 되었다.


계획이 완전히 틀어졌다.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데 '설상가상'이라는 말이 바로 지금 나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에서 조용히 생각에 빠졌다.

욥의 이야기와 다윗의 이야기, 그리고 수많은 성경의 인물들이 떠올랐다. 성경에 수많은 인물들은 모두들 하나님에 의해서 자신의 계획이 무너지는 경험을 한 거 같다. 그래서 모세나 여호수아 등은 오히려 계획을 세우기 전에 하나님께 모든 것을 묻지 않았을까 싶다.


욥의 계획은 산산조각 났고, 그는 타오르는 분노와 깊은 좌절감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했다. 나도 그럴 수 있을까?


베이징 공항에서 나와 비슷한 처지의 한 크리스찬 청년과 단출한 예배를 드렸다. 감사할 것들을 하나씩 찾아봤다. 내 옆에 사람도 한 명 들어갈만한 짐이 있었다. 잃어버리지 않았구나! 감사하다. 베이징의 1월은 정말 춥지만, 내 옷이 따뜻했다. 공항 구급대에 갈 만큼 다치거나 아프지 않았다. 며칠 후면 미국에 갈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주일 학교에서 불렀던 노래를 떠올려본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해요" 다시금 생각해보지만 저 가사는 정말 어렵고 무거운 가사임에 틀림없다.


무작정 감사하진 못했을지 모르나, '이번 일정의 시작에 하나님께서 이러한 것들을 통해 깨닫게 하고 싶으신 것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나서는 이를 깨달을 수 있기를 바라는 생각 속에 중국에서의 또 하루를 마친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른즈음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