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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용석 Mar 30. 2020

법률가의 글쓰기(IRAC)와 3단논법

법 적용의 핵심은 '3단논법'

I. 서론: 법률가의 글쓰기

1. 미국 로스쿨에서 3년간 매일같이 들은 단어: "IRAC"

미국 로스쿨 3년을 다니면서 가장 충격을 받았던 일은 바로 1학년 1학기 첫 주, Legal Writing 시간에 일어났다.  난 어려서부터 나름대로 '글쓰기' 하나는 자신 있었다.  초·중·고등학교 시절 각종 글쓰기 대회에서 수상했던 것은 물론이고, 대학에서도 논문을 써서 수차례 수상한 바가 있을 만큼 그 자부심에는 나름대로의 근거가 있었다.  그러나 Legal Writing 첫 시간에 호기롭게 제출한 글쓰기(변론) 과제에서 20점 만점에 10점을 받으면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100점 만점으로 50점 밖에 안 되는 점수였고, 모든 학생들이 낮은 점수를 받은 것도 아니었다.  '아니, 내가 50점이라니...'  교수님은 내게 논리구조(IRAC)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나름대로 논리를 다 맞추어 썼고, 로스쿨에 들어갈 만큼 논리력을 갖췄다고 생각했는데 내 글에 논리구조가 없다니...


2. 미국 로스쿨이 가르치고자 하는 법률가의 글쓰기는 쉽지 않다

내 문제는 바로 법률 글쓰기에 필요한 구조 잡기에 있었다.  미국 법률가는 반드시 로스쿨에서 IRAC이라는 글쓰기 구조를 배운다.  그리고 로스쿨 3년간 Issue(쟁점), Rule(법률), Application(적용), Conclusion(결론)에 이르는 방식으로 글 쓸 것을 끊임없이 훈련받는다.  나 역시 로스쿨 3년 동안 1000번 이상은 "IRAC"이라는 단어를 교수님에게 들었던 것 같다.  


희한한 것은 그렇게 뛰어난 수학능력을 가진 학생들을 뽑아서 로스쿨 석사과정을 하는데도, 이 IRAC 글쓰기를 체화하는데 학생들에게 최소 6개월에서 길게 1년 이상이 걸린다는 점이었다.  보기보다 이것을 체득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3. 법률가의 글쓰기는 3단 논법의 이상적 발전

로스쿨을 졸업하고 나니, 그렇게 힘들었던 IRAC 글쓰기가 왜 나와 학생들에게 어렵게 느껴졌는지 그 핵심이 보인다.  바로 3단논법을 도출해내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 배우는 "모든 사람은 죽는다"로 시작하는 바로 그 3단논법 말이다.  우리가 흔히 쉽다고 생각하는 이 3단논법에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은 애를 먹었고, 또 지금도 애를 먹고 있는 것일까?


놀라운 사실은, 한국법을 공부해보면 우리 법에서도 변호사의 글쓰기를 할 때 이 3단논법이 적용된다는 것에 있다.  다른 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왜냐, 모든 나라의 판결은 3단논법에 그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자녀가 3단논법에 능한가?  그럼, 미래에 그 친구는 변호사가 될 자질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왜 그런지를 천천히, 그리고 쉽게 알아보자.


II. 삼단논법

1. 개요

도대체 3단논법이 무엇인가?  앞서 아주 간략하게 소개했지만, 3단논법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그것이 맞다.  1) "인간은 모두 죽는다"; 2)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 3)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로 대표되는 우리가 모두 아는 그 논리구조다.  이를 영어로 하면 'Law of Syllogism' 또는 그냥 'Syllogism'이라고 부른다.



2. 분석

3단논법의 구조를 분석해보면, 크게 1) 대전제; 2) 소전제; 3) 결론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서 말했던 소크라테스 이야기에 이를 구분 지어보자면, "인간은 모두 죽는다"는 대전제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는 소전제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는 결론이다.  대전제, 소전제, 결론으로 이어지는 완벽한 논리구조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모든 3단논법이 이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이 글에서는 다 설명하기도 부족하고, 또 필요하지도 않기 때문에 간략하게 소개만 하고 넘어가겠다.  우리가 지금까지 간략하게 본 것은 '정언적 삼단논법(categorical syllogism)'이며, 선언적 삼단논법(disjunctive syllogism); 가언적 삼단논법(hypothetical syllogism); 양도 논법(dilemma)등의 더 발전된 3단논법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핵심이자 기반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정언적 삼단논법이다.


III. 법의 적용

1. 개요

여기까지 글을 읽으셨다면, 이제 여러분은 아니 3단논법은 알겠는데 도대체 뭐가 '법'이랑 상관이 있다는 건지가 궁금하실 것이다.  우리에겐 수많은 법이 있지만, 그중 가장 두꺼운 책을 자랑하는 법이 무엇인지를 묻는다면 그건 단언컨대 '민법'일 것이다.  그 민법 교과서를 쓴 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법의 적용이란...3단논법으로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다"라고 말이다.

법의 적용이란 구체적인 생활관계에 법규를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즉, 추상적인 법규를 대전제로 하고 구체적인 생활관계를 소전제로 하여 3단논법으로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다.  이러한 법의 적용을 하려면 먼저 대전제인 법규의 내용을 확정하는 것이 필요하며, 그것이 앞에서 본 법의 해석이다.  다음에는 구체적인 생활관계가 법규가 추상적으로 정하는 요건을 구비하였는지 검토하여야 한다.  이를 사실 인정이라고 한다.  사실 인정의 결과 요건이 구비되었다고 인정되면 법규에서 정한 법률 효과가 주어진다.  송덕수, 『신민법강의』, 22쪽.


송덕수 교수는 법의 적용을 "추상적인 법규범을 대전제로 하고 구체적인 생활관계를 소전제로 하여 3단논법으로 법적인 판단으로서의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모든 법교육이 법을 아는 것과 더불어 그 법을 구체적인 생활관계에 적용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고 했을 때,  그 핵심이 바로 3단논법이라는 것이다.  앞서 소크라테스 사례를 통해 3단논법을 소개했었다.  1) "인간은 모두 죽는다"(=대전제); 2)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소전제); 3)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결론)로 이어지는 논리구조가 바로 3단논법이다.  놀랍게도 모든 법률 글쓰기와 변론 그리고 판결은 이 논리구조를 그 골자로 하고 있다.  미국법과 한국법을 살펴보는 것을 통해 이를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2. 미국법의 3단논법

앞서 미국 로스쿨에서 3년간 배운 것 중 가장 주요한 것이 IRAC이라 말한 바 있다.  그럼, 먼저 IRAC 분석을 통해 미국법이 3단논법을 어떻게 적용시키는지를 보자.  예를 들어, 살인죄를 가지고 사례를 만들어보자.


A는 평소 B를 안 좋게 생각하고 있었고, 기회가 되면 죽여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A는 B가 매일 아침 11시에 햄버거를 사러 온다는 것을 기억해두었다가 햄버거를 사고 나오는 동선에서 그를 죽여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대로 실행하여 B를 죽였다.


A가 B를 계획을 실행하여 죽였다


미국의 Common Law에서 Murder(살인)은 "unlawful killing of another human being with malice aforethought"이며, 그중에서도 '1급 살인(1st degree murder)'은 "intentional, deliberate and premeditated unlawful killing of another human being"으로 규정된다.  이를 IRAC의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다.


1. Issue: Whether A committed crime?(Whether A committed first degree murder?)  A는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인죄를 저질렀는가?)

2. Rule: First degree murder is an intentional, deliberate and premeditated unlawful killing of another human being  (1급 살인은 다른 사람에 대해 고의를 갖고 사전 계획하에 이루어진 불법적인 살해다.)

3. Application: (1) A는 평소에 B를 안 좋게 생각하고 있었고 (동기); (2) 기회가 되면 죽여야겠다는 다짐을 했다(의도); (3) A는 B의 아침 동선을 확인하고 범행을 계획했다(사전 계획); (4) B를 죽임(불법적 살해)

4. Conclusion: In conclusion, A committed first degree murder because all the elements of the first degree murder are satisfied.  (A의 행동이 일급살인의 모든 요건을 충족하기 때문에, A는 1급살인을 저질렀다.)


위 과정은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 뼈대만 보자면 아주 간단한 3단논법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라는 대전제는 '1급 살인의 요건'이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라는 소전제는, 'A가 이런저런 행동들(1급 살인의 요건에 해당하는)을 행하였다'가 된다.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라는 결론은 'A는 1급 살인을 저질렀다'가 된다.  간단한 3단논법이지 아니한가?


그 어떤 소장도, 그 어떤 판결문도 모두 이 구조를 갖추고 있다.  복잡한 사실관계에 따라서, 조금 더 복잡한지 간단한지의 차이가 날 뿐이다.   하나의 케이스에 다뤄야 할 쟁점(issue)의 개수에 따라서 IRAC의 개수도 정해진다.


3. 한국법의 3단논법

모든 법이 그러하다는 것을 더 설명하기 위해, 한국법에서도 똑같은 것을 적용해보자.  이번엔 한글이니 조금 더 어려운 사례로 넘어가자.


제4회 변호사시험 제1문

甲은 자기 소유의 아파트를 A에게 6억 원에 매도하고 계약금 6,000만 원을 받은 후, A로부터 잔금을 지급받으면서 A가 착오로 1,000만 원권 자기앞수표 1장을 더 교부하자 甲은 현장에서 A가 준 수표를 세어보고 1,000만 원이 더 지급된 것임을 알았음에도 이를 A에게 돌려주지 않았다.  甲의 죄책은?
I. 논점
  본 사안은 A의 착오로 초과 지급된 금액을 甲이 그것을 알면서도 받은 것이 부작위에 의한 사기죄가 성립하는가의 문제이다.  이는 甲에게 A의 착오를 제거할 보증인적 지위, 즉 고지의무의 여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판82도3079에 따르면, 甲에게 사기죄가 성립할 경우 甲이 초과수령한 1,000만 원을 A에게 돌려주지 않은 것은 사기죄의 불가벌적 사후행위일 뿐이고 별도의 횡령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II. 초과지급되는 매매잔금을 수령한 경우 고지의무 유무
  이와 관련하여 신의칙상의 고지의무를 이유로 사기죄가 성립한다는 적극설, 그리고 점유이탈물횡령죄가 성립한다는 소극설이 대립한다.  판례는 대판2003도31에서 잔금초과인 정을 안 매도인에게 신의칙상의 고지의무가 있으므로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하며 적극설을 취하고 있다.
  만약 매도인이 초과지급 사실을 고지하였다면 매수인이 초과지급을 하지 않았을 것이 경험칙상 명백하기 때문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매도인은 매수인의 착오를 제거해야 할 신의칙상 고지의무를 가진다.

III. 사안의 해결
甲이 매수인 A의 착오로 1,000만 원이 초과 지급된다는 것을 알면서 1,000만 원을 수령한 것은 부작위에 의한 사기죄가 성립한다.  그러나, 소극설에 따르면 甲은 점유이타물횡령죄의 죄책만을 진다.


실제 변호사시험 문제를 가져왔기 때문에, 앞서 잠깐 생각해서 만들어낸 미국법의 사례보다 조금 더 복잡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간단하다.  1) 인간은 죽는다; 2)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 3) 소크라테스는 죽는다의 논리구조와 동일하게 1) 신의칙상 고지의무를 어겼다면 적극설에 따르면 사기죄가 성립하고, 소극설에 따르면 점유이탈물횡령죄가 성립한다; 2) 매도인이 자신의 초과지급 사실을 고지받았다면 초과지급을 안 했을 것이 경험칙상 명백하기 때문에, 甲은 신의칙상 고지의무를 가지고, 이를 어겼다; 3) 적극설에 따르면 甲은 사기죄가 성립하고, 소극설에 따르면 甲은 점유이타물횡령죄가 성립한다.


    어려워 보이지만, 골격을 잡으면 정언적 3단논법이다.  이는 이러한 시험 문제의 답으로만이 아니라, 판례, 변론요지서, 공소장 등등 모든 법률문서에서 동일하게 나타난다.


IV. 결어

세상에서 가장 정교한 논리를 구사해야 하는 직업이 바로 법률가일 것이다.  법정에서는 감정을 배제하고, 철저하게 이성과 논리로서 실체진실을 밝히고 그 실체진실을 법 앞에 적용시키기 때문이다.  그러한 법률가들에게 가장 많이 쓰이고 또 가장 보편적인 무기가 바로 3단논법이다.  이미 말했듯, 거의 모든 법률문서들과 주장들은 조금 더 복잡함과 덜 복잡함의 차이만 있을 뿐 3단논법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우리네 인간이 살아가는 일상에서는 생각보다 그다지 복잡한 논리가 필요하지 않다.  또한, 논리가 필요 없는 일들이 절반 이상이다.  그러나, 일상의 세계에서 딱 한 걸음을 떼어 법률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모든 것은 논리가 필요하다.  미국 로스쿨 법률 글쓰기 강의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이야기는 "모든 문장의 마침표를 찍을 때, 그 문장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법 조항, 판례, 학설들을 같이 적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나의 머리에서 스스로 창작되어 나온 것이 아니라 어떠한 법 혹은 어떠한 판례에 기반하여 그러한 주장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커버 사진 출처: https://www.msba.org/product/so-you-want-to-be-a-law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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