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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라는 아날로그가 5차산업혁명을 살아내는 법

by 연만두

1.


국문학과 교수님, 그러니까 우리 과 교수님과 MT에서 잔을 맞부딪친 일이 있었다. 아직 학교에 적응도 하지 못했고 동기 후배들도 어색했기에 친구를 사귀고자 참석한 얼렁뚱땅 MT, 유독 엄하게 생기신 교수님은 눅눅해진 종이컵에 반절은 넘게 소주를 채우시고는 건배사를 읊으셨다.

"여러분과 이 자리에서 함께 술잔을 기울이게 되어 기쁩니다. 여러분과 잔을 마주치는 이 순간, 웃고 떠드는 순간이 모두 하나의 문학입니다. 여러분과 문학 한 페이지를 쓸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자, 문학합시다."

그야말로 낭만이 없으면 시체인 우리 과였기에, 이 문장은 은박 돗자리에 둘러앉아 서로의 발꼬랑내를 맡고 있던 우리네 가슴에 큰 울림을 주었다. 이날의 '문학'이란 추억과 기억, 즐거움, 행복 같은 단어들의 언저리에 자리한 뜻이었겠지.

우리는 그날 즐겁게 '문학'을 했다. 이날의 기억 또한 하나의 즐거운 문학, 추억이 되어 벌써 일 년도 더 지난 지금 나의 글감이 된다. 문득 그 존재를 깨달으면 가슴께를 저리게 하는 울림, 바쁜 날에도 웃음을 짓게 하는 힘, 가쁜 숨에도 괜찮다고 말하게 해주는 힘, 추억. 추억은 내가 할 때도 누군가 나에게 할 때도 동일한 저림을 준다.

2.


고등학교 시절 친하게 지낸 후배가 있다. 나보다 한 살 어려서는 내가 회장으로 있는 동아리에 들어와 그 1년간 급격하게 친해진 후배. 서로 대학 지역이 갈리며 마주칠 일이 없어지자 자연히 연락이 뜸해졌던 후배. 며칠 전은 그 후배의 생일이었다. 지난 나의 생일에 안부와 선물을 받았던 때 이후로 처음 보내는 연락이었다. 나는 요즘 난리인 한강의 책을 보내며 안부를 물었고, 후배는 사는 이야기를 조금 곁들여 답장을 보냈다. 후배는 내 책 선물을 어머니께도 자랑했다며 너스레를 떨었고, 나는 자연스레 어머님의 안부도 여쭈었다. 너 수능 본 날 데리러 간다고 뵀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게 벌써 3년 전이라고.

아, 그랬지.

추억해 보니 그랬다. 나는 후배의 수능날, 여지없이 수능 한파가 흩날리는 밤에 교문을 지켰었다. 봉명, 운호, 산남, 어디였나 학교는 기억이 안 나지만 진입로가 얼어 어머님의 차가 교문을 넘기 힘들어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그런 일도 있었지. 돌이켜보니 그 후배와의 추억도 꽤나 켜켜이 쌓여있었다.

우리는 고등학교 때 친분을 꾸준히 이어, 나와 그 아이가 성인이 되었던 3~4년 전에 급격히 가까워졌었다. 그때 우리는 동아리의 선대 회장이었던 선배와 함께였고, 종종 만나 술을 마시러 다녔다.

풋내기였던 스무 살 때 내가 한강변에 드러누워 버린 일도 있었다. 그들이 내 핸드폰 곳곳에 연락을 돌려 나를 집에 실어 날라줬었지. 어찌나 부끄러웠는지 나는 그들과 절연 결심하고 장문의 사과와 함께 잠적하기도 했었다.

술집에서 선배의 전남친이자 당시 내 친구였던 이와 함께 술을 마셨던 일도 있고, 후배가 헤어진 남자 때문에 힘들다며 엉엉 울었던 일도 있었다.

사건 사고도 많고 감정의 기복이 있어서 늘 불안해 보였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기는 했던 신기한 아이. 걱정이 되면서도 늘 혼자 잘 해내니까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던 아이. 그런 후배였지 참. 추억해 보니 그랬다.



3.


복학 직후 한참 고달팠던 학교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던 동생이 있었다. 머리숱이 참 적었던, 우마무스메라는 게임을 참 좋아했던 동생. 지금은 공시를 준비하겠다며 자퇴 후 김해로 내려가 버려 아마 경조사 없이는 보기 힘들겠지만, 명맥이 유지되던 단톡방을 통해 종종 소식을 듣곤 하던 동생이었다.

SNS를 통해 종종 소식 주고받던 동생이 어제 문득 물어왔다.

"형, 라이트노벨은 소설이라고 봐야 할까요?"

"재미를 주는 콘텐츠라는 측면에서는 '소설'이라는 분류로 부를 수야 있겠다만, '소설'과 '이야기'를 '시대정신의 포함 유무'로 규정짓는 학계에서라면 소설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아. 라이트노벨이 장르적 발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흥미 본위가 이어진다면 소설로 보기 힘들기는 하겠지."

라는 대화로 시작한 국문학도 둘의 문학 논쟁은 한 시간을 이어졌고, 우리는 내친김에 게임까지 함께 잔뜩 했다.

연이은 게임에 지쳐 누운 침대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얘는 나한테 왜 연락했을까?'

문학에 대해 물어볼 사람이 주변에 없지 않을 테다. 그럼에도 나를 콕 집어 문학에 대해 묻고 게임을 같이 하자며 이야기 한 바는, 그 역시 나를 추억해 주었기 때문이겠지. 그는 추억했을 때 나를 떠올린 거고, 추억에 남은 나는 책의 이미지가 묻어있는 사람이었나 보다.


4.


너무 바삐 이별하느라 못 나눈 인사들을 이제야 건넸나. 서랍에 넣어둔 작은 저녁들을 이제야 주섬주섬 꺼내어 돌보았나. 나는 그들 덕분에 저린 가슴을 사다가 잔뜩 끌어안을 수 있었다. 나를 추억해 준 이, 내가 추억할 수 있는 이 모두에게 고마운 날이다. 내가 추억할 수 있도록 여전히 소중한 내 곁을 지켜주는 일도, 나를 추억하여 멀어진 내게 연락을 보내준 일도 퍽 어려운 일임을 잘 안다.

뉴미디어 시대에 아날로그를 죄다 잃어버렸다지만, 가닿지 않는 존재를 사랑할 수 없다는 본질만은 잃어버리지 못한 인간의 비극을 거슬러주는 이들. 나는 그들 덕분에 추억이라는 아날로그 세상에서 살아간다. OTT가 발달하여 그 커다란 방송국이 죽어가고, AI가 성장하여 구글이라는 공룡이 죽어가며, 어느 나라에서는 석유를 태우는 차의 생산이 중단까지 되어버린 세상에서도, 나는 여전히 편지 같은 마음을 주고받는 세상에 살 수 있다.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담은 마음을 알파고 대신 은서와 한서에게 받는다.

가능하다면 더 이상 편지를 주고받을 수 없는 세상에서도 나는 편지를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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