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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저주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영원한 저주를

by 연만두

1.

구김살 없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마 다방면에서 반타작 이상은 하며 살고 싶었던 오랜 소망의 발현이겠지. 그러나 세상을 살며 깨달은 사실은 오십 분야에서 모두 상위의 오 할이 되려면 전체의 일 할은 되어야 한다는 통계뿐이었다.

결핍이 없길 바랐다. 결핍이 있더라도 이를 인정하고 노력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인정이 되고 노력이 된다면 결핍이 아니라는 사실을 불청객처럼 맞이했다. 긁히지 않길 바라 들이민 가슴에는 딱쟁이도 못 앉도록 상처가 났다. 단단해졌다 생각해 들이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좋아요를 받고 싶었다. 나를 ‘좋아요’하는 일은 나를 ‘싫어요’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주커버그는 싫어요 버튼을 없앴는데, 나는 비어있는 빨간 하트가 ‘싫어요’로 보였다. ‘좋아요’를 누르며 나를 싫어할 수 있는 사람을 나는 알게 되었다. ‘좋아요’를 누르지 않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2.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는 게 용감한 일이라 생각했다. 세상은 좋아하는 걸 좋아하지 나를 좋아할 이유는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세상이 좋아하는 나의 내가 되었다. 다행일지 유감일지 그게 불행하진 않다, 나는 좋은 게 좋았다. 좋아할 만한 내가 되어 나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 나는 좋은 내가 좋았다.

좋은 사람이 되면 사랑받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사랑하지 못한다. 외사랑은 사랑의 하위 범주고, 사랑은 양간의 외사랑이 짝지어질 때 비로소 사랑이라 부를 수 있다. 나는 빈 공간에 외사랑만 던질 줄 아는 소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아직 좋은 사람이 아닌가? 모르겠다. 나는 좋은 사람 같다. 좋은 사람인 나는 사랑하지 못한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좋다. 사랑하지 못하는 내가 싫다.

사랑이 없어 불행한 내가 싫다. 사랑 없이도 행복하고 싶다. 고작 그깟 염화나트륨만 못한 사랑 때문에 불행을 느끼는 내가 싫다. 지지리도 못생긴 걔는 그렇게 예쁜 애랑 사귀던데, 땅딸막한 걔는 약혼을 했다던데, 지지리도 멍청한 걔는 사랑 없이도 행복하던데. 죄 없는 그들을 미워하는 내가 싫다. 좋은 게 좋은 나인데, 나는 싫은 사람이 된 내가 싫다. 나는 싫은 내가 싫어졌다.

좋은 사람이 된 게 싫지 않으나 좋은 사람이 된 나는 싫다. 좋은 사람이 되고 나니 그토록 싫었던 결핍 덩어리가 된 것 같아서 싫다. 아들, 친구, 애인, 학생, 청년, 소시민, 노동자, 작가, 크리에이터, 인간, 나는 무엇에서 좋은 사람이 되었나.

사랑하지 못하는 나는 나는 좋은 사람이 맞을까?

3.


삶의 이유를 묻는 친구에게 나는 사랑이라 답했다. 친구, 가족, 애인에게 ‘사랑하는’일이 살아가는 이유 같다고. 사랑하지 못하는 나는 살아가지 못하는 건가. 내가 살아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나.

내가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시. 사랑받고 싶은 내 결핍이 나를 사랑받지 못하게 만든다. 사랑받고 싶어 좋은 사람이 되었더니 사랑받지 못한다. 나는 사랑받고 싶어 좋은 사람이 되었는데 사랑받지 못해 내가 싫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어 싫은 사람이 되었다.

남들이 좋아하는 내가 있다. 나는 그곳에 늘 가닿지 못한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닌 좋은 사람만 될 뿐이다. 나는 결국 좋은 사람인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 이유를 또다시 찾게 된다. 죽기보다 싫었던 콤플렉스를 찾게 된다. 내가 키가 작나, 내가 못생겼나, 내가 뚱뚱한가, 내가 냄새가 나나, 내가 피부가 별로인가, 내가 용감하지 않나, 내가 속이 좁나, 내가 더럽나, 내가 남자답지 않나, 내가 이기적인가, 내가, 내가, 내가, 내가. 누가 뭐래도 나만이 지울 수 있는 상처만 남는다.

내가 자존감이 바닥인가. 그래서 사랑받지 못하나. 그래서 좋은 사람이 아닌가.

어제 내가 죽었다. 아니면 오늘, 모르겠다.

4.

나는

잘 알지도 못하는 시를 가르치고

잘 살지도 못하는 인생을 살고

잘 하지도 못하는 연애를 상담하고

잘 알지도 못하는 인간을 아는척하고

잘 하지도 못하는 사랑을 하려 한다.

인간은 왜 사랑을 하려고 할까. 나는 사랑 없이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 없이 살아가고 싶은데. 사랑 없이 살 수 있을까. 사랑 없이 행복하고 싶다. 늘 실패만 하는 사랑을 원하고 싶지도 않다.

오즈의 마법사에게 심장을 빼앗긴 양철 로봇은 왜 슬퍼했을까. 사랑의 저주를 마법사가 거두어주었는데, 양철 로봇은 사랑하지 않고 존립할 수 있을 텐데. 구태여 마법의 숲을 지나 마법사를 찾은 이유가 뭘까.

나에게 사랑을 거두어줄 마법사가 있다면 나는 대가로 내 사랑을 바치고 싶다. 내가 미래에 할 수 있는 사랑까지 모두 가져가서 나를 무미건조하게 말려주었으면. 나를 아무 의미 없는 돌멩이 하나로 만들어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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