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괴물>을 보고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세상이 왜 이따위로 돌아가는지 모르겠는 때, 내 생각과 상식의 선에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때, 나 빼고 모든 이들이 다 미쳐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 때.
알고 보니 나 또한 남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이었을 때.
나만 잘못된 기차 승차 홈에 앉아있었다든지, 나만 종점에 다다른 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있었다든지, 처음 타보는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나만 ‘국룰’을 몰랐다든지. 여러 상황이 있겠다.
내게는 기차가 와야 할 홈에 오지 않았던 바보들이 보였지만 그들의 눈에는 이상한 홈에 들어서는 바보가 보였을 테지.
내게는 종점도 아닌데 허겁지겁 짐을 챙기는 바보들이 보였지만 그들의 눈에는 도착한 버스에서 내릴 생각을 않는 멍청이가 보였을 테지.
내 눈에는 에스컬레이터에서 사람 눈치를 주는 서울깍쟁이들이 보였지만 그들의 눈에는 국룰을 지키지 않는 촌놈이 보였을 테지.
이를 깨달았을 때의 내가 얼마나 창피했는지 모른다. 기차가 지나고도 한참 시간이 흐른 뒤 역무원에게 잘못된 승차 홈에 있었다는 안내를 받고,
버스 기사에게 “안 내리고 뭐 하세요?”라는 말을 듣고, 나를 에스컬레이터 오른편으로 잡아끈 친구의 손을 신호로 부리나케 뛰어올라가는 사람들을 볼 때.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려 말조차 더듬게 된다. 나는 어쩜 그리 외눈박이처럼 세상을 보고 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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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은 세상의 모든 외눈박이들을 철저하게 꼬집는 영화다. 같은 사건을 각자의 외눈만으로 바라보게 되면 얼마나 왜곡과 곡해가 벌어지는지를 조명한다. 감독은 그 예시로 현실에 있을법한 예시들을 이어붙였는데, 이는 현실감 넘치는 허구의 에피소드를 만들어낸다.
이 서술 방식의 힘은 고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에서도 그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해당 도서에서는 한국 여성으로서 겪을 수 있는 모든 고초를 한 인물의 인생에 녹여낸다. 고로 사건 각각의 요소는 현실감 넘치지만, 그걸 모아놓은 이야기 자체는 허구가 되어 현실과 허구의 세계를 자유로이 넘나든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대한민국에 파란을 가져올 정도의 파급력을 지녔다.
스포일러 없이 할 수 있는 리뷰는 여기까지. 아래부터는 스토리와 장면, 다양한 요소들을 이야기하며 메시지를 톺아보고자 한다. 결말을 제외한 이야기의 전개 정도, 약 스포일러가 있을 예정이다.
/ 스토리
이 영화를 쉽게 보기 위해서는 영화의 전개를 따라가는 ‘플롯’이 아닌 사건의 전개를 시간 순으로 나열하는 ‘스토리’를 먼저 살펴보는 게 리뷰를 통한 작품 보기에는 좋은 방법일 듯싶다.
우선, 주인공의 학급 친구 ‘유리’라는 아이는 가정폭력과 학교폭력을 당하는 채로 살아가고 있다.
주인공 ‘미나토’는 유리와 친해지고 싶지만, 학급의 힘센 무리들이 유리와 친하게 지내면 괴롭히기에 섣불리 친하게 지낼 수 없다. 둘은 방과 후 뒷산에서라든지 비밀기지라든지 학급 아이들이 지켜보지 않는 은밀한 곳에서는 친하게 지낸다. 학급에서는 데면데면한 채로 지내는, 그런 이중적인 생활로.
날이 갈수록 유리에 대한 괴롭힘이 심해지자, 미나토는 일진들이 유리를 괴롭히는 상황에 교실을 때려 부수는 등 저항을 해본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이었고, 외려 ‘유리를 좋아하냐? 그럼 키스해’같은 괴롭힘을 떠안게 된다.
이후 미나토는 자신에게 뻗친 괴롭힘의 마수를 벗어나고자 나서서 유리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두 아이의 담임, ‘호리’는 이 사실을 알 턱이 없다. 그가 지켜본 것은 미나토가 교실을 때려 부순 일과, 미나토가 유리를 두들겨 팬 일뿐이다.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호리는 이를 ‘미나토가 유리를 괴롭히는 학교폭력 건’이라고 인식하게 되고, 이 방향으로 문제들을 해결해나가고자 한다.
하지만 학교와 교장은 일을 키우지 말고 조용하게 처리하라는 지시만 내려올 뿐이다. 교육청 감사에 걸리지 않는 것이 최우선이기에.
그래서 학교는 학부모가 찾아오더라도 사과를 시키고, 문제를 삼더라도 교사 개인의 책임으로 무마시키고자 한다.
싱글맘으로 아이를 키우는 미나토의 엄마 ‘시오리’는 이 모든 상황을 알지 못한다. 그녀가 아는 것이라고는 아들이 학교에서 자주 다쳐서 돌아오고, 물병에 흙이 담겨 있거나 머리카락을 갑자기 자른다거나 하는 이상행동을 보인다는 것뿐이다.
싸움을 말리려는 호리 선생님의 팔에 맞아 코가 다쳐서 온 미나토. 미나토는 엄마 시오리에게 ‘호리 선생님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이야기만을 전한다. 이에 시오리는 ‘폭력 교사 사건이다’라는 인식을 갖게 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일 학교로 찾아간다.
학교는 진상 규명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학부모에게 무조건 사과만을 내세우며, 사과가 아닌 진상을 요구하는 학부모에게 해당 교사의 퇴직으로 화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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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는 위와 같을진대, 플롯은 위의 역순으로 전개된다. 각 인물들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보여주고, 쇼트를 끊은 뒤 다른 인물들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아들이 학교에서 의문의 사고로 자꾸만 다쳐서 돌아오고, 이에 대해 함구하는 아들을 걱정하는 싱글맘 ‘시오리’. 아들 미나토는 ‘호리 선생님 때문이다’는 말만 남긴다. 그녀는 학교에 찾아가 진상 규명을 요구하지만 학교는 무의미한 사과만을 반복할 뿐이다.
그녀는 확신한다. 폭력 교사의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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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리 아들 미나토의 담임인 ‘호리’는 미나토가 학급을 때려 부수고, 이내 동급생 유리를 폭행하는 사건을 목격한다. 호리의 입장에서 명백한 미나토의 학교폭력 가해, 이를 말리려다가 실수로 미나토의 코피를 터트린다.
그런데 미나토의 엄마는 아들의 잘못은 생각 않고 자꾸만 학교에 찾아와
‘우리 애는 왜 코피가 났죠?’
를 물어댄다.
학교는 문제 삼지 말고 무조건 사과하라 지시하지, 학교폭력 가해자의 어머니는 폭력 행사를 하다가 다친 아들의 상처를 규명하라지, 결국 호리는 지시에 의한 사과의 책임으로 선생직을 빼앗기기까지 한다.
호리는 확신한다.
‘시오리는 지 애만 중요한 과보호 싱글맘, 맘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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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토는 조용한 아이였다. 우연히 선생님 심부름을 함께 갔다가 나눠 받은 과자로 유리와 친해지기 전까지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미나토는 유리와 친해지지만 그를 괴롭히는 일진 무리들과도 적대할 수는 없다. 그에 대한 반항으로 일진들이 유리를 괴롭히는 순간 교실을 박살 내기도 하고, 소심한 반항을 해보기도 한다. 당연히 이는 역부족, 외려 자신까지 괴롭힘을 당하려고 하자 유리에게 직접 폭력을 행사한다.
그 와중 담임 호리는 자신을 유리와 화해시키려고 하지 않나, 엄마는 자신이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 아니냐고 뚱딴지같은 질문이나 하질 않나, 누구도 믿을만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미나토는 굳게 믿는다.
‘어른은 아는 것도 없고 믿을 게 못 된다.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말하지도, 의지하지도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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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최종장. 위의 모든 사건이 전개된 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유리의 가정폭력 사실과, 이에 대한 미나토의 반응까지…
시오리(엄마)가 호리(담임)와 서로 폭력 교사와 맘충이라고 오해하고 있던 것, 미나토(아들, 주인공)이 어른을 신뢰하지 못했던 것. 그 모든 오해들이 뒤섞여 휘몰아친다.
그 끝이 어떻게 되는지는, 혹여 영화를 보게 될지 모르는 그대에게 남겨놓고 싶다. 한 가지 귀띔만 하자면, 아주 희망찬 비극 혹은 비관적인 희극이다.
각각의 시점에서 볼 때 세상은 온갖 곡해와 질곡으로 가득 차있다. 학생을 두들겨패는 폭력 교사, 학폭 가해 아이를 두둔하는 맘충 학부모, 문제를 해결할 생각조차 없는 선생과 부모.
그리고 그들의 오해가 한 데 모이게 될 때, 고속도로의 유령 정체 같은 끔찍한 문제가 발생하고야 만다.
그 촌극을 보고 있노라면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나오기까지 한다. 미나토가 사실대로 이야기했다면, 유리가 가정폭력과 학교폭력을 이야기했다면, 호리가 사건을 잘 파악했다면, 시오리가 침착했다면, 학교가 무조건 사과를 종용하지 않았다면.
그 하나의 if라도 이루어졌다면 ‘괴물’도, <괴물>도 없었을 텐데.
그 생각을 하고 있자니, 그보다도 더 사소한 일조차 나의 시선만을 굳게 믿어 민폐를 끼쳤던 일들이 떠오르며 슬며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그 낯부끄러움 속에서 깨달았다. 외눈박이를 부끄러워하라는, 외눈박이의 문제점을 꼬집는 이 영화의 메시지를.
더불어, 이 영화는 영상미와 음악도 정말 뛰어나다. 영화를 직관적으로 이해하지 못했을 때에도 영상미와 음악만은 극찬을 했을 정도다.
또한 사카모토 류이치의 유작이 된 이 영화의 OST, <Aqua>를 들으며 그를 기린다.
이상,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