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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옥띠 May 11. 2023

공간이 주는 위로

제주 한달살이 중 책방에서

제주에서 흠뻑 빠진 곳이 있다면 다름 아닌 책방이다. 에메랄드빛 바다, 오션뷰 카페, 작고 높은 오름보다도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다. 전국 방방곡곡 어디든 갈 수 있는 서점이지만 왜일까.

유독 제주에 모여있는 곳이라 생각해서 처음에는 독립서점을 찾아다녔다.

책 표지에 사장님의 추천글이 담긴 메모지가 붙어 있는 곳도 있었고 아로마 향이 짙게 나서 들어가자마자 포근해지는 곳도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장님이 있는 곳도 있었다. 찬찬히 구경을 하다 보면 당연히 마음이 가는 책이 있기 마련. 그러나 여행 분위기에 휩쓸려 하는 소비는 아무래도 후회할 때가 많았다. 소품샵에서 산 귀여운 선물들이, 독립서점에서 구매한 책들이 그랬다. 그래도 제주 특유의 느낌이 좋았다. 친절한 사장님과 제주스럽게 꾸며 좋은 공간이 매번 그곳으로 발길을 향하게 만들었다.


책도 구경하고 싶고, 진득하게 앉아서 독서도 하고 싶고, 읽다가 별로면 다른 책으로 바꾸어 읽고도 싶고 게다가 커피까지 있으면 좋을 텐데 어디 없을까? 생각하다가 찾은 곳이 여기다. 여느 도서관 못지않게 책들이 가득하고, 눈이 가는 에세이 책들, 푹신한 소파와 LP에서 나오는 음악소리 그리고 달지 않게 내 입맛에 딱 맞는 에이드까지. 가장 좋아하는 건 이곳에서의 느림과 여유다. 주문할 때도 소곤소곤, 걸을 때는 사뿐사뿐 모든 행동들이 조심스럽다. 어느 누구도 서두르지 않는다. 느긋하다. 그래서 심장박동 수도 느려지는 것만 같다. 나른해져 깜빡 졸기도 할 정도로. 매번 계획을 세우고 빠름이 익숙한 나와 정반대라 괜히 이곳에 더 마음이 가나 보다.


카페나 식당에 가면 주문하기도 전에 일단 자리부터 잡고 보는 나는 성격이 급한 탓에 늘 느긋한 사람이 부러웠고 지금도 여전하다. 타고난 성향 같기도 하지만 나와는 완전히 결이 다른, 나보다 몇 단계는 높은 성숙한 사람인 것 같달까. 나도 여유롭고 느긋한 사람이 돼보겠다며 천천히~ 느리게~를 줄곧 외치지만 이 정도면 소리 없는 아우성인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래서 이곳이 좋나 보다. 나와는 다르게 느리게 흘러가는 이 책방에서 위로받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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