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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옥띠 Apr 18. 2023

내 고향이 좋아


“아, 아니요. 집은 여수고 대학은 서울에서 나왔고 시험을 여기로 봤어요. 여기가 합격 컷이 낮아서 빨리 붙으려고요."

“아, 여수가 의외로 사투리 안 심해요. 엄마가 서울 사람이라서 서울말 배웠고 사투리 안 좋아해서 학교 다닐 때도 안 쓰려고 노력했어요.”


처음 만나는 사람들한테 매번 하는 말들.

그렇다. 나는 저 멀리 남쪽에서 자랐다.

처음엔 지방이니, 시골이니, 사투리니 하는 말에 익숙지 않았다. 괜히 기분 나빠서 받아치기도 했다.

“제 집 시내고요, 아파트 살고요. 바다 보러 가려면 저도 한참 차 타고 가야 하고요. 굴 못 먹고 해산물 별로 안 좋아해요. 저 고기 좋아해요.” “아, 그리고 백화점만 없지. 아니다, 이번에 롯데몰 생겼고요! 영화관, 이마트 다른 건 다 있어요. 그리고 백화점도 30분만 차 타고 가면 다 있어요!”

“여수’시’에요, 시! 군 아니에요! 그러니까 시골 아니에요!!!”


나의 고향을 듣곤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어머 어머 저 거기 가봤어요!' 하며 목소리 한 톤 올라가며 반갑게 맞이해주는 사람, 쭈뼛거리며 핸드폰을 꺼내 최근에 거기 다녀왔다며 사진을 보여주는 사람, 두 손을 흔들면서 여수 밤바다 노래를 불러주는 사람까지.

가끔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스럽기도 하다. 머쓱해서 그저 웃음을 지어 보일 뿐.


‘나 진짜 시골 사람인가? 이렇게까지 반응이 나오다니..’


“엄마, 여수가 그렇게 시골이야?”

“시골이긴 하지. 엄마 결혼해서 왔을 때는 던킨도너츠도 없었어. 서울 가는 교통 편이 불편해서 항상 비행기 타고 다녔는데. 기억 안 나?”


기억.. 난다. 롯데리아 생겨서 줄 서서 먹었던 기억, 수학여행 때 옆자리 친구가 서울 처음 가본다고 해서 충격받았던 기억, 친구들이 왜 자꾸 말 앞머리에 있냐, 그 뭐냐, 추임새를 붙여라 의아했던 기억, 그래놓고 나도 모르게 말할 때 있냐로 시작해서 깜짝 놀랐던 기억.. 참으로 시골스러운 기억들이 난다.


한때 이런저런 이유로 고향을 싫어했던 적도 있었다.

나를 시골 사람이라고 취급해서, 백화점 있냐고 놀리는 대학 친구들을 한 대 때려주고 싶어서.

서울에서 살았으면 어땠을까 상상해본 적도, 부모님한테 엄마 아빠는 도시에서 자랐으면서 나는 왜 시골에서 자라게 했냐며 원망의 목소리를 낸 적도 있었다.  


그렇게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를 한 지 벌써 7년이 되었다.

도시에서 살아보니 고향에는 지하철도 없고 버스는 10시면 끊기고 확실히 시골이긴 하더라.

그래서 이제 더 이상 시골이라는 단어에 발끈하지 않기로 했다. 시골임을 인정했달까.

도시에서 격주로 본가를 내려가는 지금, 관광지가 되어버려 갈 때마다 변하는 고향이 애틋해졌고 오히려 시골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게 됐다.


부모님이 계신 곳, 나를 반겨주는 곳, 옛 추억이 묻어있는 곳, 고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곳이 좋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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