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오독되지 않을 이름을 위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제18회 방송영상과 졸업작 <수국> 박소현
더는 오독되지 않을 이름을 위해 For the name that will no longer be misled
이름 위로 오독의 기억이 쌓여갔다. 모또미. 자신을 부르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따라간다. 어디인지 잘 모르겠는 곳들, 더 이상 알 수 없어진 말이 있다. 영화는 흩어진 이름을 되짚으며 잊으려 애썼던 시간을 다시 떠올린다.
기억은 폐허의 땅 위에 꺼내진다. 초등학교가 자리했던 공간은 폐허가 됐다. 옛 학교의 잔재를 바라본다. 살아가기 위해 순응해야 했던 공간의 실체가 사라지고 기억 속 형상, 독해되지 않는 이미지로 남아 있다. 영화는 과거의 형상에 자신이 설명될 수 있을 가능성을 의존하는 대신 이를 누락시키는 쪽을 택한다. 카메라는 몇 순간을 제외하고서는 가만한 움직임을 유지한다. 보다 적극적으로 영화의 이야기를 제시하는 것은 이미지가 아닌 목소리다. 영화를 이루는 대부분의 목소리는 나레이션으로 화면 외부에서 들려온다. 영화는 목소리로 말해진다. 몸에 엉긴 목소리는 신체에 축적된 시간과 맥락을 피할 수 없다. 숨겨야 했던 마음을 풀어놓기 위해 목소리는 몸을 떼어내며, 그 위에 겹친 몸의 흔적을 허문다. 목소리가 나레이션으로 등장하며 몸을 벗어나는 첫 번째 시도를 보여주었다면, 그다음으로는 두 언어의 갈피에서 이동하며 무형의 맥락에서 탈피하고자 시도한다. 일본어와 한국어 두 언어 사이를 오가며 들려오는 어떤 문장은 언어로 해석되지만, 어떤 문장은 소리 그 자체로 자신을 드러내 해석되지 않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자신이 거부해야 했던 이름, 그 위로 뒤덮인 오독이 흐트러지게 한다. 타의로 생성된 규정에 대항이 시작된다. 영화는 관객에게 오독의 가능성을 되돌리며 공간과 목소리가 일치하지 않는 수 개의 숏을 만들어낸다. 보여주는 것들이 희미해지는 만큼 오독의 가능성은 커지지만, 외부에 부여되었던 권위는 힘을 잃었다. 어떤 판단으로도 몸이, 말이, 오독되지 않는 순간이 찾아온다.
비로소 목소리는 매이지 않는다. 목소리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다. 영화는 공백 위에 목소리가 울리도록 한다. 소속을 버린 채 부유하는 음성은 다시 말을 되찾는다. 자신조차도 오독 없이 바라볼 수 없었던 이름이 점점 뚜렷해진다. 그 자체로 들리는 이름, 모또미. 그 위로 어떤 오독도 행해지지 않는다. 이름은 다시 활자가 된다. 뚜렷하게 몸에 새겨진다. 이제 이름을 부른다. 히로야마 모또미.
The memory of misreading piled on top of the name. Motomi. She follows the voice of her grandmother calling her. There are places she is not sure of, words she no longer understands. The film retraces the scattered names and recalls a time we have tried to forget.
Memories are brought out on the ground of abandonment. The space where the elementary school was located is in ruins. We look at the remnants of the old school. The space that had to be conformed to in order to live has disappeared, and remains as a shape in memory, an unreadable image. Instead of relying on the possibility of explaining itself in the shapes of the past, the film chooses to leave them out. The camera remains still, except for a few moments. It is the voices, not the images, that more actively tell the story of the film. Most of the voices in the film come from offscreen in the form of narration. The film is told by the voice. Voices tangled in the body cannot escape the time and context accumulated in the body. In order to release the mind that had to be hidden, the voice detaches itself from the body, breaking down the traces of the body superimposed on it. If the first attempt to escape the body is shown by the voice's appearance as a narrator, the next attempt is to escape the intangible context by moving between two languages. Some of the sentences heard between Japanese and Korean are interpreted as language, while others reveal themselves as sound itself, creating moments of uninterpretability. The name that she had to reject, the misreading that has overtaken her, is disrupted. A rebellion against the rules created by otherness begins. The film returns the possibility of misreading to the viewer, creating several shots in which space and voice do not coincide. The possibility of misinterpretation increases as what is shown fades, but the authority that had been imposed from the outside has lost its power. The moment comes when the body, the words, and the misreading are not subject to any judgment.
Only then is the voice untethered. The voice is free from everything. The film allows the voice to echo over the white space. Floating without belonging, the voice regains speech. Names that even he could not look at without misreading become increasingly clear. A name that sounds like itself, Motomi. No misreading is done upon it. The name becomes lettered again. It is clearly etched into your body. Now the name is called. Hiroyama Moto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