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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묵묵 Jun 07. 2020

이런 게 과대망상증이었겠지

직장동료로 만났던 과대망상증 환자

저는 정신이 온전치 않은 사람들은 일부러 정신병원에나 가야 만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들은 제게서 멀리 있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 어려운 입사 프로세스를 뚫었는지 모르겠지만, 정신 체계에 문제가 생긴, 쉽게 말하자면 제정신이 아닌 직원을 제가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30대 후반의 전문적인 스펙을 갖춘 커리어우먼이었습니다. 자격증, 전 직장 경력, 일에 대한 태도 측면에서는 크게 나무랄 데가 없는,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직장인이었습니다. 그녀에게 단 한 가지 흠이 있었다면 바로 망상증을 앓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게 과대망상인지 피해망상인지 구분하기는 힘들지만, 가끔씩 터져 나오는 그녀의 황당한 주장에 온 부서가 발칵 뒤집어지고는 했었습니다. 바로 옆에서 겪었던, 당시에는 기가 막히고 황당하기 그지없었으나 지금은 술자리에서 씹기 좋은 에피소드가 된 그녀의 망상이 섞인 주장을 추억해봅니다.


세계 최대 인터넷 검색도구 운영회사인 구글이 몸에 장착하는 웨어러블 컴퓨터 시리즈의 하나로 개발한 구글 글라스라는 게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세련된 안경이지만 CPU와 메모리 장치를 갖춘 고급 컴퓨터입니다. 황당하게도 그녀는 이 구글 글라스가 자신을 감시하기 위해서 개발된 장치라고 주장했습니다. 자기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직장과 길거리에서 구글 글라스로 자신을 지켜보면서 수집한 데이터를 구글의 중앙 컴퓨터에 보낸다고 주장했습니다. 왜? 이유는 본인도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믿기 힘들지만, 구글에서 아무런 힘이 없는 개인을 감시하는 황당한 일이 왜 자신한테 벌어지는지 그 이유를 도대체 알 수 없다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되려 하소연하고는 했습니다.


어느 날은 자기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의 등에 누군가 자신을 감시하기 위하여 칩을 심어 놨다고 주장했습니다. 누군가 집 안에 있는 자신을 위성으로 감시할 수 없게 되자 집 안에 몰래 침입하여 강아지의 등에 감시용 칩을 심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칩으로 자신의 집안 동선을 감시하고 음성을 녹음하기까지 한다는 황당한 주장을 눈빛 하나 흔들림 없이 조리 있게 얘기하는 것을 한참 듣고 나서는 저도 모르게 '혹시 사실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녀의 주장이 망상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은 TV CF의 남자 주인공들이 하는 대사가 모두 자기를 향한 것이라는 주장에서부터였습니다. 그녀는 어떻게 TV에 나와서 '예쁘다', '아름답다'라고 전 국민 앞에서 자기의 외모를 대놓고 희롱할 수 있냐고 주변 사람들에게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급기야는 해당 CF를 내보낸 회사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그녀가 뭔 얘기를 해도 '혹시 그녀의 주장이 사실이 아닐까' 하는 흔들림이 제게서 없어졌습니다.


그녀 옆에서 아기나 아이 얘기를 하는 것은 절대적인 금기였습니다. ‘아기가 예쁘다’는 둥 ‘키우기 너무 힘들다’는 둥 하는 얘기가 들리기만 해도 미혼인 자기에게 아기가 있다는 뒷담화를 하느냐고 따져 들었습니다. 아기가 있다고 소문내다가 부서원인 자기가 결혼을 못하게 되면 누가 책임질 거냐고 따지는 데는 저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습니다. 또 그녀 옆에서는 기침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일부러 다른 사람이 듣도록 큰 소리로 기침을 함으로써 자기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문을 내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냐고 따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심지어 그녀는 기침하는 직원에게 병원 진단서를 요구하기까지 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대꾸하면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라'며 기침한 사람의 비합리적인 '사고'를 비판했습니다.


옆에서 아무리 좋게 얘기해주고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으니 의심할 필요가 없다고 달래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사람들 특히 직장 동료나 길을 가는 모르는 사람들이 당신한테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고 수차례 얘기해줘도 그녀는 이를 믿지 않았고, 정신 질환이 걱정되니 병원 치료를 받아보라고 조심스럽게 권유했다가 명예훼손이라면서 고소한다고 면전에서 되치기를 당했습니다. 그 비상식적인 일이 하필이면 왜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지 본인도 도무지 알 수 없어 괴로운데 직장 동료라는 사람들이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미친 사람으로 몰고 간다고 원망하는 데야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지경이니 부서원들은 다들 그녀를 달래기나 상대하기를 포기했고, 괜히 근처에 있다가 봉변이나 당하지 않을까 하여 그녀를 피해 다녔습니다. 결국 그 비상식적인 (?) 전방위 감시와 희롱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그녀는 퇴사를 했고, 그녀에게는 미안하지만 부서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녀는 분명 환자였습니다. 아마 지금까지도 그녀는 주변의 치료 권유를 절대로 받지 않았을 것이고 이리저리 직장을 전전하며 감시받는 (?) 불행한 삶을 이어가고 있을 것 같습니다. 그녀는 온 정신으로 살기에는 너무 힘든 세상이라 환자가 되었을까요? 아니면 진짜로 그런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이해하기 힘든 것이 점점 많아지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2020년 6월 7일

묵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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