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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묵묵 Jun 21. 2020

나 때문에 생긴 코로나바이러스

극한의 이기주의 혹은 착각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이곳 르완다에 내려진 사회와 생활 봉쇄조치가 길어지면서 저는 제 입을 탓하고 있습니다. '입이 방정이지'하면서 말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전 세계인의 고통이 마치 저 때문에 생긴 게 아닌가 하는 자책으로 입을 함부로 놀린 제 자신을 원망하고 싶은 심정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분들이 들으시면 말도 안 되는 얼토당토않고 허무맹랑한 걱정이라고 웃으시겠지만, 제 입장에서는 나름 근거가 있는 기우입니다. 제가 코로나바이러스 창궐에 대해 제 책임을 생각하는 근거는 이를 테면 이런 것들입니다.


작년 말부터 저는 아파서 푹 쉬는 상상을 자주 했습니다. 회사에서 스트레스받는 일이 많은데 길게 휴가를 낼 형편도 못되고, 휴가를 내더라도 머리에서 일이 떠나지 않으면 쉬나 마나라 아예 아파서 누워버리는 걸 상상해 본 겁니다. 말라리아에라도 걸려서 며칠 입원하고 이후 회복을 위해 또 며칠 누워서 요양을 하면 몸과 마음에 쌓인 피로를 풀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기 싫어진 날에는 일주일에 삼사일만 일하는 법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서울 가는 휴가를 아껴 두어야 하기 때문에 아무 때나 휴가를 쓸 수 없기에 강제로 출근 못하게 하는 경우를 상상한 것입니다.

 

현지 직원들이나 주주들과 싸우다 보면 본의 아니게 이 놈의 회사 망하든 말든 상관 않겠다고 입 빠른 소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새가 빠지라 일하는 데 나아질 기미는 안 보이고 닥쳐올 위험만 자꾸 보이는 데다, 딴지 거는 놈들은 왜 이리 많은지요. 도와줘야 할 인간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나 몰라라 하고 옆에서 훈수 두는 얄미로운 인간들은 많고요. 그래서 저는 한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대충대충 일하다 가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치밀어 오르곤 했습니다. 어차피 여기 르완다에 뼈를 묻을 게 아닌데 알아주지도 않을 일에 저 혼자 스트레스받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또 저는 르완다 정부의 도로 통제에 대해서도 짜증을 많이 냈습니다. 귀빈 차량이 지나가면 예고도 없이 도로를 몇십 분이나 막아 버립니다. 이럴 때는 도로에서 무작정 대기해야 되는데 언제 풀릴지도 모르고 우회할 도로도 없이 갇히게 되니 짜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또 이 사람들은 컨벤션센터에 국제행사가 있으면 그 앞을 걸어 다니지도 못하게 보행자 통제를 합니다. 평소 차가 다니지 않는 널따란 컨벤션센터 앞 길을 느긋하게 걸어서 출퇴근하는 저의 소소한 재미를, 잠재적 테러리스트 취급으로 빼앗아 버리는 것입니다. 막힌 도로 위 차량에 갇혀 있을 때나, 컨벤션센터 앞이 막혀 밑 길로 돌아가야 할 때 저는 제 불편을 해소하고자 르완다 정부가 주력 산업으로 줄기차게 밀어붙이는 국제행사들이 다 없어지라고 저주를 퍼붓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보니 코로나바이러스로 저의 모든 상상 혹은 소원이 현실이 됐습니다. 정부의 강제 재택근무 정책에 더해 확진자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불안감 때문에 일주일에 3일 정도만 회사에 나갑니다. 말라리아에 걸리지도 휴가를 내지도 않았는데 쉬엄쉬엄 근무하는 환경이 저절로 확보됐습니다. 직원들이 대부분 재택근무를 하니 일에 진척이 없고, 고객사 방문이 어려우니 실적이 점점 개판이 되어 갑니다. 회사가 망하든 말든 나는 모른다 했더니 이대로 가다가는 진짜 회사가 문을 닫을 판입니다. 저를 불편하게 한다고 이 놈의 국제행사들이 다 취소되라고 저주를 퍼부었더니 아시다시피 전 세계인의 해외여행이 불가능하게 되어 모든 국제행사들이 진짜 취소되고 말았습니다. 이들이 그렇게 고대하던 제26차 영연방 정상회의도 무기 연기됐습니다. 왜 르완다가 영연방 소속인지 슬쩍 비웃었었는데, 막상 취소되고 보니 이 행사를 코빠 뜨리고 기다리던 공문원들이 불쌍해졌습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자 저는 제가 믿는 신이 '이놈! 니 소원대로 해줄 테니 한 번 겪어봐라'하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제 입방정에 전 세계 인류가 바이러스로 사망의 고통에 처해 있고, 경제는 온통 엉망이 됐고, 사람들은 집 밖을 잘 나서지도 못하는 극심한 불편에 빠지게 된 것이라 미안한 일입니다. 앞으로 입 조심하며 살아야겠지요? 그러나 저러나 코로나바이러스 백신과 치료제가 빨리 나와 이 꼼짝달싹 못하는 고통에서 모두가 하루빨리 해방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바이러스에 걸려 죽든, 굶어 죽든, 굶어 죽어가는 강도들에게 맞아 죽 든 할 판이니까요. 만일 바이러스의 공포가 저의 입방정 때문에 제가 믿는 신이 내리신 벌이라면, 이로부터 해방되는 소원도 이루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2020년 6월 21일

묵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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