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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묵묵 Jun 18. 2020

기껏 동물 수준의 삶이네

하루 종일 먹을 것에 대해 고민하다 보면

르완다에 살면서 먹을 것을 가지고 제가 이렇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매끼 매끼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것과, 먹고 싶은 음식이나 맛있는 음식을 못 먹어서 짜증 난다고 카톡 건너편 아내에게 하소연하는 게 요즘 저의 주요 일과가 됐습니다. 어쩌다 이리됐는지 하루 종일 먹는 데 대한 고민이 떠나지 않으니, 먹고 자고 싸는 일만 하는 동물의 삶과 제 것이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에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물론 제 딴에는 먹을 것에 대한 고민을 줄여보고자 나름의 식단을 정해놓고 규칙적으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아침에는 삶은 고구마나 잼 바른 식빵에 스크램불 또는 달걀 프라이, 저녁에는 밥과 국이나 찌개와 냉장고 속의 반찬 서너 가지로 고정입니다. 반찬은 아내가 해주고 간 게 바닥이나 요즘에는 제가 모양이라도 그럴싸하게 만든 반찬들로 무생채나 오징어 볶음, 맛살 튀김, 감자볶음 같은 것들이 주류를 이룹니다. 가장 고민이 많은 점심 메뉴는 요일별로 정해져 있습니다. 월요일은 불닭볶음면 소스로 만든 스파게티, 화요일은 한국 라면 스프와 인도네시아면으로 만든 라면, 수요일은 외식, 목요일은 1+1 피자, 금요일은 당일 냉장고 속에 있는 야채를 다 때려 넣은 카레 볶음밥, 주말에는 다시 외식이 거의 고정된 순서로 돌아갑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식사를 준비하는 일과 먹어치우는 일은 제게는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고역입니다.


사실 저는 아내의 표현대로 하자면 '미맹' 수준의 행복한 미각을 보유한 남자로서 그동안 먹을 것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나 해외출장 중에서 대했던 음식들은 웬만하면 맛있거나 최소한 먹을만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입맛도 저렴하여 서울에서 선호하던 점심 메뉴도 순댓국, 뼈해장국, 짬뽕, 장어탕, 김치찌개 같은 것들로 사무실이나 거래처 근처에서 잘한다는 집 하나 찾기가 식은 죽 먹기의 메뉴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점심 메뉴를 고민하는 사람들을 이해 못했고 오히려 불쌍히 여기고는 했습니다. 하지만, 르완다에 와서 살면서 특히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아내가 반찬을 만들어 주러 오지 못하게 되면서 모든 게 바뀌었습니다. 갑자기 먹을게 없어졌고, 식사 시간이 다가오면 무엇을 먹을지를 고민해야 되는 처지에 놓인 것입니다. 제 요리실력은 도무지 늘 기미가 안 보이는 데다, 더 큰 문제는 제 입맛을 확실하게 만족시켜 주는 식당 음식을 찾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저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식당의 문제는 제가 살고 있는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에 3개나 있는, 한식 메뉴를 제공하는 식당들에게 있다고 단언합니다. 제가 한식 메뉴를 제공하는 식당이라 표현한데 대해 식당 주인들이 들으면 섭섭해하시겠지만, 제 입맛에는 한식당이라 표현하기에는 애매한 구석이 있는 식당들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첫 번째 A식당은 한식당보다는 일식당에 가깝습니다. 식기도 그럴듯하고 데코레이션이 뛰어난 반면, 양념이 밍밍하여 제가 좋아하는 한식 특유의 얼큰하거나 짜고 매운맛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두 번째 B식당은 개업 초기에는 제법 한식에 가까운 맛을 냈는데 점점 선발 A 식당을 따라가며 일식화 되어 가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맛의 편차가 커서 어떨 때는 진짜 한식 같다가 어쩔 때는 도저히 먹을 수 없는 희한한 맛의 음식을 내오기도 합니다. 세 번째 C식당은 메뉴가 가장 한식 같은데 2%가 아니라 한 30%씩 부족합니다. 짜고 맵고 달기는 한데 그냥 '맛'은 없습니다. 


음식들이 이렇게 부실하게 된 데는 현지인 주방장의 경험 탓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진짜 한식의 맛을 모르고 한국에 와본 적도 없는 현지인 주방장이 한국인 사장이 알려준 레시피대로 만드는 음식이 진짜 한식처럼 될 확률은 희박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현지식은 양념이 발달하지 않아 바나나를 찌거나 콩을 삶거나 고기를 굽는 식으로 고기와 야채의 본연의 맛을 그대로 들어내는 방식이라 한식과는 조리법에서 크게 차이가 나는데, 그 차이를 현지인 주방장들이 상상력만으로 극복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한식을 향한 어쩔 수 없는 갈망과 세 식당 주인들과 잘 아는 편이라 자주 가기는 하는데 먹고 나면 한국의 음식들이, 집사람이 해준 음식들이 바로 생각나서 울컥해집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대안이 이들 한식 메뉴를 제공하는 식당에 가서 음식을 주문할 때는 '삘리삘리'를 넣어 맵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불어로 고추를 뜻하는 삘리삘리는 모든 음식을 화끈하게 만들어 주는데, 경험상 일단 맵기만 하면 음식이 맛없어 지기가 어렵기 때문에 식당에 갈 때마다 매번 이 짓을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종식되어 아내가 합류하는 날까지는 이 모양으로 버텨야 되는데 이처럼 처절한 동물의 삶이 너무 길어질까 걱정입니다.  


2020년 6월 18일

묵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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