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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묵묵 May 05. 2020

재택근무하면 반은 논다

코로나바이러스와 준비 안된 재택근무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전 세계가 멈춰있다시피 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여기 르완다에서는 정부가 의료 환경이 열악한 자국의 사정을 감안하여 발생 초기부터 적극적인 확진자 동선추적 검사와 봉쇄조치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두 차례 연장으로 전 국민이 5월 19일까지 Lock-down 즉 강제적인 전 국민 이동제한 명령 속에 살고 있습니다. 지난 일요일(5.3)까지는 아예 은행 방문이나 식료품 구매와 같은 필수 행위를 위한 외출조차 경찰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했지만, 그나마 월요일부터 조금 완화되어 아침 5시부터 저녁 8시까지는 마음 놓고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단, 공적 공간에서는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하는 게 원칙입니다. 이런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 덕택에 가장 못 사는 아프리카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주변국들에 비해 확진자 증가가 상대적으로 눈에 덜 뜨이는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정부의 이동제한 명령으로 모든 공공기관과 민간 회사들도 직원들의 재택근무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시급한 정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인력은 아예 정부 승인을 받은 지정된 차량을 이용해야 하고, 자금 지출이나 조달, 창고 관리 등 업무상 반드시 물리적인 출근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직원들은 요일을 정해 교대로 출근하고 있습니다. 그 외 직원들은 자기 집에서 원격으로 재택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이들의 주된 이동수단인 모토 택시(오토바이 택시)가 운행 금지되고, 버스도 사회적 거리두기 조건을 준수하기가 어려워 운행이 사실상 중지된 상태라 자기 차량이 없는 직원들은 회사의 차량 지원 없이는 출퇴근이 불가능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업무는 전화와 와츠앱, 이메일 그리고 새로 나온 Zoom이라는 무료 화상회의 솔루션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눈치 빠른 분들은 이 글을 읽다가 이상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자기네 회사의 일을 얘기하면서 제가 '있다고 한다'라는 제삼자적 관점의 표현을 차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가 제삼자의 입장에서 얘기하는 것은 아니고 직원들이 집에서 근무를 하는지 노는지 모르지도 않습니다. 그냥 대부분의 직원들이 재택근무를 핑계로 논다고 얘기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전반적인 업무 진행 상황을 지켜봐야 되는 제 관점에서 얘기하자면, 재택근무로 업무의 생산성이 떨어지는 게 아니고 아예 재택근무자의 반은 논다고 봅니다. 일에 진전이 없고 모든 업무가 느리게, 느리게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답답하여 직원들에게 업무 처리가 안 되는 이유를 물어보면 역시 아프리카 최빈국 르완다다운 애교스러운 변명들이 많습니다. '회사 이메일 시스템에 접속할 수 없다'거나 '인터넷이 안된다'라는 이유는 그나마 들어줄 만합니다. 가장 갑갑하면서 의심스러운 이유는 '집에 전기가 잘 안 들어온다'라는 것인데, 전기가 안 들어오니 스마트폰도 사용할 수 없고, 랩탑도 쓸 수 없고 당연히 인터넷은 불가능합니다. 전기 없이 평소에는 어떻게 살았을까요? 저희 회사 직원만 이런 사정에 있는 게 아니라 거래처와 대리점 직원들까지 이 모양이니 업무가 제대로 돌아갈 리가 만무합니다. 처음에는 신경질을 내고 닦달하기를 반복하다가 시간이 지나도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니 저도 이제 마음이 무뎌져서 그러려니 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급하여 독촉하거나 뭐라고 야단을 해도 업무에는 진전 없이 저만 피곤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니까요.


물론 직원들이 업무를 처리하기 힘든 이유로 갖다 댄 변명들이 진실인지 여부를 제가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 확인하겠다고 직원들 몰래 불시에 집으로 찾아가기도 어렵지만, 그보다 제가 직원들의 말을 믿지 못하여 집에까지 확인하러 좇아간 악독 상사는 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는 수 없지만, 그저 직원들의 핑계가 진실이겠거니 믿어주고 빨리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국가 봉쇄의 상황이 종료되어 모두의 정상 출근이 가능해지기를 바라는 수밖에 도리가 없겠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어떨까요? 전기는 빵빵하고 인터넷도 뻥뻥하고 회사 시스템은 제 집처럼 편안하게 드나들 수 있는 이 동네 최상급의 재택근무 환경에 살고 있는 저도 '반은 논다'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집에서 직접 회사 일을 해보니 사실 반은 노는 생활이 저절로 벌어지게 됩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밤새 누워있던 침대 옆에서, 방금 전에 밥 먹은 식탁 옆에서 아무도 지켜보는 이 없이 혼자 일하는데 왜 눕고 싶고 왜 딴짓하고 싶은 욕구가 안 생기겠습니까? 또 하루 종일 집에 있으니 평상시에는 자주 하지도 않던 친구와 가족에게 연락할 일이 왜 그리 자꾸 생기고, 내년에는 뭐하고 그 후년에는 뭐하나 하는 나의 인생에 대한 고민은 왜 끊임없이 밀려드는지 드는지 모르겠습니다. 


다행이라면 이번에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강제로 시행해본 덕분에 앞으로 제가 재택근무를 하거나 직원들에게 시키면 절대로 안 되겠다는 요상한 통찰은 하나 건졌다는 점입니다. 어이없게도 빨리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국가적으로 아니 전 세계적으로 진정이 되어 회사에 정상 출근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회사에 출근하고 싶어 지다니 이건 분명 정상이 아닙니다. 아무래도 제가 코로나바이러스는 아니지만 어떤 다른 이상한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음이 분명합니다.


2020년 5월 5일

묵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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