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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묵묵 May 06. 2020

몰랐지만 아찔했던 순간들

무심코 지나친 내 인생의 사고들


살다 보면 우리 인생에는 별의별 일들이 다 벌어집니다. 그 일들은 때로는 기쁘거나 즐겁기도 하고, 때로는 슬프거나 가슴 아프기도 합니다. 제게는 시간이 많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사고들이 몇 있습니다. 그 사고들을 제가 잊지 못하는 이유는 그 사고들이 제 인생에 있어서 큰 위기일 수도 있었겠다는 뒤늦은 철렁함에 가슴을 쓸어내리고는 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막상 그 사고들을 겪었을 때는 무심코 넘겨서 제게서 쉽게 멀어졌지만,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도 가끔씩 되새김되는 사고들입니다.   

첫 번째 사고는 국민학교 1학년 때 일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서울 전농동에 있는 배봉 국민학교를 다녔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학교들이 그랬듯이 배봉 국민학교도 산을 깎아지었기 때문에 학교 정문에서 운동장으로 올라가는 길에, 또 건물과 건물 사이에 높은 계단들이 있었습니다. 지금 가보면야 몇 칸 되지 않는 작은 계단이겠으나 당시 1학년인 제가 밑에서 올려다볼 때는 아주 까마득하고 거대한 계단들이었습니다.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저는 미술시간을 위하여 어깨를 가로질러 화판을 메고 학교에 갔습니다. 당시 화판은 겉에는 예쁜 그림이 그려져 있었지만, 한 겹의 얇은 헝겊만 벗겨내면 베니아 판때기에 불과한 조잡한 물건이었습니다. 수업이 다 끝나고 집에 간다는 기쁜 마음에 들떠 계단을 내려오던 저는 그만 계단에서 미끄러져 굴러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구르면서 저는 움푹 파이도록 화판에 오른쪽 볼을 베었습니다. 마침 곁에 있던 선생님이 피가 철철 흐르는 저를 양호실에 데려다주셨습니다. 양호 선생님의 지혈과 빨간약 치료를 받은 저는 엉엉 울면서 집으로 갔습니다.

당시 저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부모님과 떨어져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살았었는데 다친 저를 보고 두 분은 많이 놀라셨습니다. 학교 갈 때는 멀쩡했던 장손이 볼따구가 찢어졌다고 큰 반창고를 붙이고 돌아왔으니 말입니다. 돈을 구할 수 없었던지 저는 병원에는 가지 못했고, 대신 집에서 할머니의 된장 치료를 한 번 더 받았습니다. 다행히 볼의 상처는 곧 아물었지만,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도 아주 옅은 색의 흔적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제가 이 사고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은 만일 그때 계단을 구르다, 볼이 아니라 눈을 화판에 찍혔으면 실명할 수도 있었고, 만일 목을 찍혔다면 죽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때문입니다.

두 번째 사건은 제가 국민학교 5학년 때 일입니다. 당시 저희 집은 상도동 주택가 골목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동네 친구네 집에 갔다 그 집 옥상에서 놀았습니다. 옥상에는 작은 창고가 있었고 저와 친구들은 그 창고 위에서 옥상 바닥으로 뛰어내리는 위험한 놀이를 했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남자애들이란 참 위험한지도 모르고 천방지축 날뛰는 존재들인가 봅니다. 누가 멀리 뛰나 하는 내기가 붙었었는데 저는 친구들보다 더 멀리 뛰려다가 좀 떨어진 곳에 쌓여 있던 판자까지 날아가고 말았습니다.


아뿔싸! 뾰족한 부분이 위로 나오도록 못이 박힌 판자가 있었는데 제가 그 못을 발바닥으로 그대로 밟아버렸습니다. 발바닥 한가운데 살이 있는 부분으로 못을 밟았는데 그만 못이 발등까지 뚫고 나와버렸습니다. 엉겁결에 못을 빼고 겁이 난 저는 울면서 집으로 달렸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또 된장을 발라주셨지요. 이 때도 병원 갈 돈이 없었나 봅니다. 사실 놀라기는 했어도 많이 아프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천만다행으로 발바닥으로 들어온 못이 뼈나 힘줄이나 혈관을 다 비켜간 때문이었습니다. 만일 살짝만 비켜서 발가락 쪽이나 발뒤꿈치 쪽으로 못을 밟았으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했던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세 번째 사건은 르완다에 처음 왔던 2015년의 일입니다. 부임 초기에 전임자로부터 업무 인수를 위해서 파악할 일도 많았고 밀려 급하게 처리해야 되는 일들도 많아서 사무실에서 밤을 새우다시피 했었습니다. 아프리카 모기가 무서운 줄 모르고 겨우 구멍이 숭숭 난 방충망이 설치된 사무실에서 밤마다 살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근무한 지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몹시 춥고 떨리고 머리도 배도 살살 아팠습니다. 흔할 몸살 감기겠거니 생각하고 옷을 여러 겹 껴입고서 바쁜 오전 일과를 정상적으로 처리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오한이 계속되자 저는 하는 수 없이 점심때쯤 감기약을 받으러 근처 병원에를 갔습니다. 


그러데 이게 웬일입니까? 제게 말라리아 진단이 떨어진 것입니다. 미련하게도 저는 제가 말라리아 모기에 물린 줄도 몰랐던 거죠. 그 자리에서 당장 입원했고 3박 4일 입원 치료를 받고서야 말라리아로부터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르완다에는 말라리아인 줄 모르고 참고 있다가 치료 시기를 놓쳐서 죽는 현지인들이 많았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저는 까무러치도록 놀랐습니다. 제가 만일 한국에서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그러하듯이 이 정도 감기쯤이야 하면서 참고 계속 일을 했었다면 죽었을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참고로 전 세계 사망원인 1위는 아직도 말라리아입니다.


세 사고들 모두 벌어졌던 당시에는 별일 아닌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제가 장애인이 되거나 아니면 죽을 수도 있었던 큰 사고들
이었습니다. 큰 고통 없이, 아무런 장애나 후유증도 남김없이 지나갈 수 있었던 것은 천우신조라 하겠습니다. 그런 행운이 제게 아직 남아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그런 일들이 또 벌어지더라도 위 사고들 때처럼, 다시 심각한 건지도 모르고 쉽게 지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2020년 5월 6일

묵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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