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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묵묵 May 07. 2020

올챙이 시절이 그리운 개구리

꼰대와 선배 사이에서

언젠가 유튜브에서 직장생활의 쓴맛, 신맛 때문에 고생하는 신입사원 얘기를 다룬 동영상을 봤습니다. 동영상 속 신입사원의 눈에 비친 상사들, 선배들은 그야말로 귀찮은 잔소리꾼들이었습니다. 어떤 선배는 얘기 안 해도 뻔히 다 알만한 내용들을 꺼내어 시시콜콜하게 간섭합니다. 다른 선배는 일 처리 때문에 부장님에게 한 소리 들은 신입사원에게 커피 마시는 휴게실에서 그 얘기를 다시 꺼내어 신입사원의 기를 죽입니다.


저는 꼰대 같은 선배들 때문에 마음고생하는 동영상 속 신입사원을 보다가, 이해 못 할 상사들과 선배들 때문에 고생했던 저의 신입사원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우스꽝스럽게 그려진 선배들을 보면서는 몇몇 제가 겪은 선배들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신입 시절 저는 당장 처리해야 하는 급한 일도 아니었고, 위로 보고해야 하는 중요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퇴근하지 않고 뭉그적대는 부장님과 선배님들이 참 싫었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여자 친구와 데이트도 해야 되고, 친구와 술도 한 잔 해야 되고, 그도 저도 아니면 집에 일찍 가서 축 늘어져 있고 싶은데 이 양반들은 도대체 퇴근할 생각을 않는 겁니다


자주 있었던 회식도 싫었지요. 이건 하루의 피로를 풀고 새로운 내일을 다짐하는 생산적인 자리가 아니라, 회사에서 못다 한 회의의 연속이었거든요. 주제는 온통 업무 얘기 아니면 회사 얘기뿐이고 끝에는 꼭 잔소리가 이어 나오게 마련이니까요. 부장님, 선배님들의 잔소리와 심지어 뒷담화까지 듣다 보면 술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종래는 이 소주가 친구들과 항상 즐겁게 마시던 그 소주와 같은 소주 인지도 헷갈릴 지경이 됩니다.


저는 보고서를 수십 번 고치는 부장님도 싫었습니다. 처음에 몇 번 고칠 때는 전체적인 방향도 고쳐 잡고 논리적 전개에서 빠진 부분을 보강하거나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 시기를 지나면 보고서 속 어휘나 모양새를 다듬는 수준이 지루하게 반복될 때가 많았거든요. 더 심한 것은 이래저래 고치다 보면 며칠 전 버전으로 보고서가 돌아갈 때가 있다는 겁니다. 이럴 때는 짜증이 온몸을 휘감아 부장님의 뒤통수라도 한 대 치고 싶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렇게 신입사원의 입장에서 동영상 속의 상사들, 선배들을 비웃는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이상하게도 제가 어느새 못난 그 상사들과 선배들의 변명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 상사도 사정이 있었고, 저 선배도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신입이 '너무 과장해서 반응하는 거 아니야?' 하면서 말입니다. 상사와 선배들에게도 지나친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상대의 의도와 상황을 모르면서 신입사원이 과장하여 그들을 나쁜 상사와 선배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신입사원에게는 유일한 상사이지만 저 부장님도 따로 자기 상사가 있어 눈치를 봐야 합니다. 또 남아 있는 업무의 부담을 집에까지 가지고 가지 않으려고 야을 통해 진도를 좀 더 빼려는 부장님의 심정을 신입이 이해 못할 수도 있습니다. 보고서를 자꾸 빠는 일 역시 토끼를 잡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호랑이와 같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이건 회사에서 주어진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직장인의 열정적인 자세라 좋게 봐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보고서를 많이 고치다 보면 분석과 기안 능력이 좋아지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회식 자리의 잔소리도 신입사원들을 세심하게 챙겨주고 싶은 선배님들의 애정 어린 관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듣기 싫었어도 엄마의 잔소리가 사랑이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회식 때 직장 동료들끼리 회사 얘기를 빼놓고 뭔 다른 할 얘기가 있겠습니까? 회식 장소로 출발할 때야 부장님이나 선배님들도 업무 얘기 말고 다른 재미난 얘기를 주제로 회식을 이끌고 싶었을 겁니다. 하지만, 주중에는 하루 종일 회사에 붙들려 있고, 주말에는 애 보느라 정신없는, 나이 먹어가는 직장인들에게 회식 자리를 즐겁게 할 대화 주제가 마땅하게 있을까요?


이렇게 일일이 핑계를 대면서 저도 나이를 먹은 티를 내고 말았네요. 신입 시절의 제가 가졌던 불만을 지금 제가 하나하나 선배의 입장에서 궁색한 답을 달다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 글을 계기로 신입 시절을 되돌아보다 보니 분명한 것은 하나 있습니다. 비록 회사 생활에 불만이 많았고, 보기 싫은 선배님들이 있었어도 그 시절이 그립다는 것 말입니다. 회사에서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었고, 저 보기 싫은 꼰대들과는 달리 잔소리 없이 후배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는 좋은 선배가 될 것이라는 자신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제가 젊었습니다. 요술을 부려서 만일 그때 그 젊은 신입사원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야 저는 그 모든 불만들과 보기 싫은 선배님들을 한 트럭으로 가져가 붓는다 해도 참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20년 5월 7일
묵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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