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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묵묵 Jul 18. 2020

내 인생의 입방정 실수들

후회하고 또 후회해야 주워 담을 수 없었던

솔직하고 자기비판적으로 평가를 하자면, 저는 성격이 진중하지 못하고 경박스러운 편입니다. 두 번 생각하고 말해야 할 때 아무 생각 없이 바로 뱉어버리는 말들이 많고, 하지 말아야 하는 얘기를 오히려 과감하게 전달하는 경우도 있으며, 힘든 뒷감당을 감안하지 않고 말을 꺼내어 나중에 수습하느라 애를 먹는 실수도 많습니다. 한마디로 제 입이 방정입니다. 특히 대인관계에서 해로운 말들을 입 밖에 내어 곤란을 겪은 경우가 많습니다. 자질구레한 말실수들은 셀 수도 없이 많았는데,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겪은 말실수 중 큰 것만 골라봐도 세 번은 되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 큰 실수는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같은 반이고 저희 집에서 1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아 가까워진 친구가 있었습니다. 둘 다 취미가 비슷하여 탁구장으로 야구연습장으로 항상 붙어 다녔으며, 서로의 집도 자주 방문하며 친하게 지냈습니다. 한 번은 고모들이 할머니를 뵈러 와있는 가운데 그 친구도 저희 집에 놀러 왔습니다. 친구가 가고 난 뒤에 고모들 중 한 분이 가장 친한 친구냐고 물으시더니 그렇다고 하자 한마디를 붙이셨습니다. '꼭 소도둑놈 같이 생겼다.'


그냥 저 혼자 웃고 넘어가거나 무슨 얼굴 평이냐고 대꾸하고 끝날 일이었는데요. 저는 그 말을 다음 날 친구에게 옮겼습니다. '야! 우리 고모가 그러시는데 너 꼭 소도둑놈처럼 생겼대'. 그 친구가 그렇게 불같이 화를 내는 걸 그날 처음 봤습니다. 그냥 웃자고 한 얘기인데 그 친구가 그렇게 심각하게 반응할 줄은 저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아마 외모 콤플렉스가 있었던지, 화를 내고 가버린 친구는 저를 점점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예 절교하자고 들었으면 제가 사과하고 마음을 풀어주려는 시도를 했을 텐데 친구가 조금씩 조금씩 거리를 두며 멀어져 갔기에 3학년에 올라가면서 반이 갈리고 나서는 아예 보지도 않는 사이가 되어버렸습니다. 아무 생각 없는 입방정으로 친한 친구를 잃었습니다.


두 번째 실수는 사회에 나와서 열린 고등학교 반 동창회 때 일입니다.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이 모여 동창회를 발족시켰고 정기모임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 모임 때 다짐했던 것과는 다르게 참석자 수가 계속 줄었습니다. 어느 날 따로 만난 술자리에서 한 친구가 활성화되지 않는 동창회 모임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그 친구의 주장은 회장이 역할을 제대로 못하니 모임이 계속 죽어가는 거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회장과도 친하고 바쁜 와중의 회장의 노력을 잘 아는 저였기에 그 자리에서 동조하지는 않았습니다. 문제는 얼마 후 회장 하던 친구와 따로 만났던 자리에서였습니다. 저라는 입이 싼 인간이 그만 회장의 흉을 본 그 친구의 말을 아무 생각 없이 회장에게 고대로 전해버린 것입니다. 저는 말을 하다 말고 아차 싶었지만, 이미 주워 담을 수 없는 쏟아진 물이었습니다. 회장은 섭섭했는지 그 친구에게 욕을 퍼붓다 지쳐 결국에는 다 때려치운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저는 회장의 말을 이제 어쩔 수 없이 그 친구에게 전해야 했습니다. 두 친구는 그 후 얼굴을 보지 않는 사이가 됐습니다. 저 때문에, 저의 입방정 때문에...


저의 세 번째 입방정 실수는 할머니와 어머니 사이에서 저질러졌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생활전선에 나서야 했던 어머니를 대신하여 할머니가 저를 키우셨습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따로 살았고, 밤늦게까지 일하시느라 거의 얼굴 보기 힘들었던 어머니보다 할머니와 지내는 시간이 많았던 저는 할머니에 대해 각별한 애정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무심코 아내에게 '얼마나 더 사실지 모르니 할머니께 더 잘해드려야지. 어머니는 나중에 효도할 기회가 있겠지' 했는데 이 말을 어머니가 들으셨습니다. 어머니는 많이 서운하셨던 모양입니다. 저에게 크게 화를 내셨고, '인연을 끊자'라고까지 하셨습니다.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어서 겨우 용서를 받기는 했습니다만, 어머니는 서운한 마음을 그 후로도 오랫동안 간직하셨나 봅니다. 몇 년이나 지난 나중에 그 얘기를 다시 꺼내셨던 것을 보면 말입니다. 입방정 한 번에 고아가 될 뻔했습니다.


세 번의 큰 실수를 겪은 후 이제는 말조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차라리 말을 안 하고 후회하는 게 낫지, 괜히 입방정을 떨다가 인연을 잃는 일을 두 번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그래도 저는 자질구레한 말실수를 아직도 많이 하는 편입니다. 나이를 먹어가도 입의 신중함이 별로 나아지는 기미가 없으니, 차라리 제 입에 자동 필터가 하나 달렸으면 좋겠습니다. 하지 말아야 될 말을 미리 입력해놓고 비슷한 말이 나올 것 같으면 아예 원천 봉쇄하는 자동 필터가 어디 없을까요?


2020년 7월 18일

묵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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