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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묵묵 Jul 22. 2020

호구이거나 착하거나

빌려준 돈을 돌려받지 못하는 심성

보통의 경우에 해당되는지 그 수준을 비교해보지는 못했지만, 짠돌이인 제게도 돈을 빌려달라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빌려줄 당시의 저에게는 제법 큰돈인 때도 있었지만 대개는 아쉽지만 없다고 큰일 날 액수는 아닌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제가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하는 심성이라, 돈을 빌려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대부분의 경우 거절하지 못하고 응하고 맙니다. 오히려 제 쪽에서 사정하여  금액을 깎아서 빌려주고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안위하는 편입니다. 불행이라면 빌려준 대부분의 돈을 돌려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제가 남에게 돈을 빌려본 적은 없습니다. 그럴 형편에 처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주변머리 없고 아쉬운 소리를 못하는 주제라 막상 돈을 빌려야 할 때는 참 곤란할 것 같다는 걱정을 미리 해보기도 합니다. 처자식이 굶고 있어서 또는 집에 큰일이 생겨 돈을 융통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더라도, 저는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달라는 소리를 차마 못할 것 같습니다. 그냥 죽고 말지...


여기서 제가 돈을 빌려준 사람들을 분류해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사업, 아니 정확히 얘기하자면 장사하는데 물건 값이 없다고 잠시만 융통해달라고 하는 케이스입니다. 제 동생 둘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자영업자들이 장사가 안 될 때 들어가는 돈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요, 길바닥에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인 줄 알면서도 혈육이기에 어쩔 수 없이 빌려줬습니다. 아직도 못 받고 있는데, 사는 형편이 크게 나아지지 않은 동생들이기에 근시일 내에 받을 생각은 없습니다. 물론 집사람은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있기는 하지만요.


두 번째는 생활비에 가까운 긴급 자금을 융통해달라는 케이스입니다. 사촌동생 하나와 또 다른 친동생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사촌동생은 신혼 초 운영하던 스튜디오가 잘 안 되자 집에 가져다 줄 생활비가 없다고 급하게 SOS를 청했습니다. 동생은 해외에서 벌이던 사업이 망하고 후일을 도모하고 있을 때 교통비가 없다고 급하게 연락하여 송금해줬습니다. 아! 이 건은 얼마 후에 돌려받았네요.


마지막 사례가 가장 문제인데 용처를 모르는데 빌려달라는 케이스입니다. 회사를 퇴사한 동료 한 사람이 어느 날부터 돈을 융통해달라는 연락을 집요하게 해왔습니다. 알고 보니 저뿐만 아니라 다른 동료들에게도 도움을 요청했었는데요. 해외에 있는데 급전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마음 약한 저도 망설일 만큼 액수가 컸습니다. 제가 송금하기를 주저하자 액수가 계속 줄어들더이다. 하도 졸라서 인연이다 생각하고 결국 조금 해주고 말았는데 알고 보니 도박 자금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당사자가 고백한 것은 아니고, 소문으로 들은 얘기라... 


가장 최근은 어제의 일입니다. 업무상 알게 된 지인 한 사람이 며칠 후 돈 들어올 때가 있는데 당장은 현금이 없으니 며칠만 융통해달라는 도움 요청이었습니다. '며칠 후 돈 들어올 때가 있다'라는 건 돈을 빌릴 때 차용하는 아주 흔한 레퍼토리이지요. 딱한 사정이 짐작되기는 하는데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아주 농후한 줄은 저도 잘 압니다. 그렇다고 거절하기에는 그의 딱한 사정이 마음에 걸리고, 나중에 그 서운한 얼굴을 대할 때 어색함과 미안함이 견딜 수 없을 것이 자명하여 고민이 됩니다. 돈을 빌려주고 돈을 잃든가, 거절하여 사람을 잃든가 둘 중의 하나인데 이 역으로 된 꽃놀이패는 대할 때마다 매번 고민이 되네요. 이번 요청도 분명히 거절하지 못할 텐데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 저 스스로도 궁금합니다. 꼭 남의 일 얘기하는 것 같지요? 아무래도 저는 착하기보다 호구인 것 같습니다.


2020년 7월 22일

묵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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