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대신 기분 더러운
저에게는 십여 년째 계속 반복되는 악몽이 있습니다. 집 사람에게 얘기하면 그 정도 게 무슨 악몽 축에 드느냐고 농담으로 대꾸하지만 제게는 분명 악몽입니다. 어떨 때는 꿈을 꾸는 상황에서 제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을 인식하기 때문에 빨리 꿈을 깼으면 하고 일부러 온몸의 힘을 쥐어짜 보기도 했습니다. 물론 성공하지만 못했습니다만. 그런 악몽에서 깨고 나면 어찌나 다행인지 안도하면서도 불쾌한 기억으로 오전 내내 기분이 참 더럽습니다.
악몽은 두 종류입니다. 첫 번째는 제가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서 지각하는 꿈입니다. 주로 늦잠을 자서 등교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꿈은 시작됩니다. 열심히 달려서 교문이 보이는 데까지는 이르는데 그다음부터가 문제입니다. 교문이 저기 보이는 데 그때부터 발이 천근만근 움직이질 않습니다. 한 발 한 발 어떤 때는 두 팔로 하나씩 발을 들어 옮기면서까지 앞으로 전진하려고 하는 데 도대체 다리가 움직이질 않습니다. 고통스럽게, 겨우겨우 땀을 뻘뻘 흘리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억지로 발을 떼다 꿈에서 깹니다. 교문 앞에서 1교시 수업이 시작하는 종소리를 들으면 포기하고 그 자리에 쓰러지는 게 그 꿈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두 번째 꿈은 제가 대학 시절로 돌아가는 꿈인데 반드시 들어야 하는 과목의 강의실을 못 찾아 헤매는 꿈입니다. 꿈에서 저는 대학 4학년 마지막 학기로 돌아가는데 결석으로 학점이 모자라 졸업을 못할까 전전긍긍하는 상황에 몰립니다. 일이 있어서 수업을 빼먹는 게 아니고 바뀐 강의실을 찾지 못하여 강의 시간을 다 흘려보내고 맙니다. 꿈에서 저는 졸업을 못하면 이미 취직한 직장에는 뭐라고 얘기하나, 학점을 채우고 오도록 기다려 줄라나 걱정하면서 이 건물 저 건물, 이 강의실 저 강의실로 제 강의실을 찾아다닙니다. 끝내 실패하고 졸업도 취업도 다 포기하는 순간, 제가 들었어야 될 강의를 같이 신청했던 친구들이 수업을 마치고 웃으면서, 좌절해 있는 제 옆을 지나갑니다.
아마 그 시절 지각과 졸업 학점 미달에 대한 지나친 걱정이 트라우마로 남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타고난 범생이라 학창 시절 지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아침 자율학습까지 포함했어도 늦은 적이 딱 한 번 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졸업 학점 관리는 학과 사무실에서도 점검해주기 때문에 실제로 F를 맞지 않는 한 마지막 학기에서 학점 미달로 졸업을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수업 몇 번 빠졌다고 교수님들이 함부로 F를 주지는도 않지요. 벌어지지도 않을 상황에 대해 제가 무의식 속에서 쓸 데 없는 걱정을 하면 살아온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 아무래도 집 사람 표현대로 저는 걱정인형인가 봅니다.
2020년 9월 16일
묵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