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부터 당하기 싫었던 짓을 팀원들에게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곱씹을수록 저를 부끄럽게 만드는 조상님들의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주로 딸아이에게 섣부른 충고를 하고 나서 혹은 집 사람과 말다툼을 하고 나서 제 행동을 돌아볼 때가 이에 해당됩니다. 물론 직장생활에서도 전혀 해당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상사들 욕을 많이 하는 편이지만, 고개를 뒤로 돌려보면 저도 부하직원들, 후배들에게 욕먹을 짓을 한 적이 꽤 있으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가장 부끄러웠던 행동은 야단친다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직원들에게 소리를 지른 일입니다. 직장에서 직원들의 인격을 존중해야 되는 기본적인 매너나 공객적인 질책의 부정적 효과를 저도 익히 압니다. 하지만, 어쩌다 직원들이 제 감정을 지나치게 건드려 저도 모르게 사무실 전체에 들리도록 큰 소리를 낸 적들이 있습니다. 대화의 주제가 부정적인 때는 가급적 조용히 개인적인 공간에서 얘기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가끔씩 제 스스로 감정 통제를 못하고 흥분하면서 목소리를 높이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큰 소리로 질책 아니 정확히 표현하면 화를 낸 경우는 지금으로부터 6 년 전쯤 김 차장과의 일입니다.
김 차장은 저의 눈높이에서 볼 때 일을 성의 없이 했습니다. 전임 CEO의 대학 동창의 아들로서 경력직으로 채용된 특이한 케이스인데, 저는 그의 일에 대한 태도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주어진 일을 종합적으로 접근하지 않았고 위에서 시키는 좁은 범위에만 단편적으로 손을 대니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집중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거기에다 완벽한 마무리보다는 정시 퇴근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특히 중간보고 없이 데드라인에 가까스로 결과물을 내는 식으로 일을 하는 바람에 제가 일정 관리에 속을 많이 끓였습니다. 결과물의 보고도 제출 후 저의 피드백을 챙기기보다는 제가 화장실을 가는 등으로 자리를 비운 그 찰나에 이메일로 던져놓고 퇴근해버리는 바람에 제가 뒷목을 여러 번 잡았었습니다.
그런 그에게도 저는 처음에 사근사근 지적질을 했습니다. 제가 원하는 방식을 좋은 말로 설명하고 바뀌기를 기대했는데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같은 방식의 일처리와 보고 태도가 반복되자 저는 급기야 '일을 왜 이 따위로 하냐'라고 대놓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물론 그 후에도 그는 별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군대에서 얼차려를 받은 고문관이 바짝 얼어서 더 큰 고문관이 되는 것처럼 제 마음에 들지 않는 그의 일처리와 보고 태도는 계속됐습니다. 1년 간 같이 근무하면서 아마 서너 번은 사무실에서 큰 소리로 그를 질책했던 것 같습니다. 2 ~ 3회 정도 참다가 폭발하고 또 2 ~ 3회 정도 참다가 폭발하는 악순환의 연속이었습니다. 결국 제가 그 부서를 떠나면서 그와 헤어졌는데 마지막 순간까지도 서로 일하는 방식을 맞추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그에게도 그렇게 밖에 일할 수 없는 개인적인 사정과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제가 요구하는 사항을 제대로 이해 못했지만, 뻑하면 소리 지르는 저와 길게 대화할 수 없어서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전 그의 개인적인 사정을 물어본 적도 없었고, 모든 걸 털어놓고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수 있는 기회도 만들지 못했었네요. 두고두고 아니면 지금까지도 김 차장은 저에 대하여 좋지 않은 감정을 가졌을 것이고, 아마도 저는 그의 최악의 상사 3인 중의 하나일 게 분명합니다.
신 과장에게도 미안합니다. 신 과장은 제가 해외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 팀원이었는데 주니어로 합류했습니다. 해외출장 중에 신 과장은 프로젝트 지원을 위하여 외부에서 합류한 자문사와 협업하는 데 애로사항이 많았습니다. 노련한 자문사 쪽 인력들이 자신네들의 방식을 고수하고 이런저런 핑계로 신 과장의 통제에서 슬쩍슬쩍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신 과장은 자문사들과 협업하는 고충을 사석에서 PM인 제게 털어놨습니다. 프로젝트 전반에 걸친 이런저런 중대한 문제와 촉박한 일정 때문에 신경이 곤두선 있던 저는 신 과장의 고충을 대단한 일로 여기지 않았고, 오히려 '그만한 것도 혼자 해결 못하냐'라고 짜증을 냈습니다.
저의 반응에 당혹스러워진 신 과장이 울먹울먹 하는 표정을 보고야 제가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말 안 듣는 자문사 인력들에게 한 마디 해서 신 과장을 도와주던가 아니면 최소한 신 과장의 고충에 공감하는 위로로 격려하고 힘을 줬어야 됐었는데요. 그래도 제가 실수한 건 그때 한 번뿐이었는지, 아니면 신 과장의 마음이 넓은 건지 다행히 아직도 연락하고 지냅니다.
제가 실수한 또 한 사람 김 과장은 여성이었습니다. 어린 자녀가 있었고, 매일 야근하는 남편 때문에 퇴근을 정시에 해야 되는 친구였습니다. 평소에는 저도 정시 퇴근을 보장해주는 편이었는데, 어느 날은 그게 안됐습니다. 제 일정 상 오후에 마무리하려고 했던 일이 퇴근 시간까지 좀 애매한 결과로 남은 겁니다. 결과물을 제출하고 제 눈치를 보던 김 과장은 제 반응이 늦자 과감하게 퇴근했습니다. 하지만, 남아서 보고서를 리뷰하던 저는 맨날 하듯이 개선할 부분을 찾아냈습니다. 어차피 실무자나 보고 받을 임원 모두가 퇴근했으니 참았다가 그다음 날 아침에 얘기해도 큰일 날 일은 아니었는데 저는 당장 전화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운전 중 전화를 받은 김 과장에게 개선할 부분을 뒤적뒤적 지적질을 해댔습니다. 얘기하다 보니 저는 남아있고 실무 담당자는 집에 가는 상황이 못마땅했던지 제 말투가 신경질적으로 변했던 것 같습니다.
저의 지적질을 듣던 김 과장은 바로 차를 회사로 돌렸습니다. 돌아와서 김 과장은 일을 마무리하고 늦게 퇴근했지요. 아차 싶었던 저는 그 밤에 아이는 어떻게 했는지 차마 묻지 못했습니다. 급하게 친정엄마를 모셨을 수도 있고 옆집에 부탁하느라 애를 먹었을 수도 있었는데 김 과장은 웃는 얼굴로 수정된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미소를 잊지 않았습니다. 진짜 미소였는지 아니면 저에 대한 비웃음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웃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못가 김 과장은 회사를 떠났습니다. 더 좋은 대우와 더 나은 근무환경을 챙겨 떠난 김 과장의 퇴사 이유 중의 하나가 제가 아니길 바랐습니다. 사과는 못했지만, 정말 미안했거든요. 다행히 제가 퇴사 원인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퇴사하고 연락이 와서 둘이 같이 식사를 한 적이 있었으니까요.
이제 저는 르완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현지 직원들에게 소리 지르지 않고 웃는 얼굴로 상냥히 대화하려고, 서로 존중하는 인격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습니다. 물론 쉽지는 않습니다. 불쑥불쑥 지멋대로 튀어나오는 감정이라는 놈을 제어하기는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거든요. 감정의 등락에 휘말리지 않고 여유와 평화로운 대인관계 속에서 살고 일할 수 있게 되려면 나이를 얼마나 더 먹어야 될까요? 그 평화의 경지에 이르려면 아직도 요원한 것 같아 부끄럽기만 한 나날입니다.
2020년 9월 12일
묵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