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묵묵 Sep 19. 2020

직장생활에서 남은 후회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직장 생활에 대해 얘기하려면 꼰대짓하는 것 같아 계면쩍습니다. 말을 하지 않아도 회사에 다니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쓸데없는 잔소리를 하는 것 같고 직장에 오래 다닌, 나이 먹은 티를 내는 것 같아 그렇습니다. 그래도 저의 직장생활에 대해 한 마디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누구를 가르치려 하기보다는 반면교사의 입장에서라고 하겠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입장의 젊은 층이라면 혹시라도 저처럼 하지 말라는 뜻이고, 저 스스로도 그러지 말 걸 하는 후회하는 마음에서 적어 내려가겠습니다.


저는 내일 해도 되는 일을 굳이 오늘 하겠다고 매일 야근하고 주말에 출근하고 그랬습니다. 저 혼자만 그랬다면 지 잘 난 맛이려니 하겠지만, 저와 달리 칼퇴근하는 후배들에게 눈치도 주고 그랬습니다. 물론 대놓고 밤에 남거나 주말에 나오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니고, 오늘 나는 밤새워야겠네', '주말에도 출근했더니 월요일이 더  피곤해'라고 심리적 압박을 가해서 마음 약한 후배들을 밤늦게까지 붙잡아놓고는 했습니다. 요즘 같이 주 40시간이 정착된 다음에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때는 퇴근 시간이 되면 몰려가 저녁을 먹고 한두 시간 더 일하다 가거나 토요일에 나와 반은 놀고 반은 일하던 게 제 또래의 관행이었거든요.


저는 해마다 대부분의 연차 휴가를 반납했습니다. 엄밀하게 얘기하자면 반납이 아니라 버린 것입니다. 안 쓴다고 회사가 보상해주는 것도 아닌데 남겼다가 연말에 자동 소멸되게 만들었습니다. 잘해야 반이나 썼을까요? 연차휴가를 쓰지 않을 핑계야 많았습니다. 출장도 가야 했고, 중요한 보고도 있었고, 휴가를 갔다 오면 일도 많이 밀릴 걱정에 주저하다 보니 휴가를 가는 의사결정은 어렵고 포기는 빨랐지요. 가족들의 눈치 때문에 여름휴가로 4 ~ 5일 쓰거나 술을 많이 마신 등으로 몸이 몹시 좋지 않은 등의 이유 외에는 연차 휴가를 거의 쓰지 않는 게 버릇이 됐습니다. 덕분에 어머니를 모시고 여행 간 것도 몇 번 되지 않고, 가족 여행에는 마누라와 딸만 보낸 적이 많았습니다. 급기야 마누라한테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데 혼자 회사 눈치만 보는 미련 곰탱이라고 단단히 찍히고 말았습니다.


자주 다녔던 해외 출장에 대해서도 후회의 연속이었습니다. 부서의 출장 예산을 절약한다고, 또 이동시간을 아낀다고 저렴하고 파트너 사무실과 가까운 호텔만 찾아다녔습니다. 이런 짠돌이 예약 덕분에 같이 갔던 직원들이 호텔의 부실한 아침 식사를 포기한 적도 있었습니다. 출장 중 남는 시간도 요긴하게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공식 일정이 끝나면 귀국편 비행기를 탈 때까지 남는 시간을 쇼핑이나 출장지를 둘러보는 데 쓸 수도 있었는데 전혀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직원들을 붙들고 출장보고서를 쓰고 귀국해서 할 일들을 미리 정리하면서 남는 시간도 알뜰하게 업무에 투입했었지요. 미련한 짓이었습니다. 빡빡한 출장 기간 동안 고생한 직원들을 좀 자유롭게 풀어줘도 일처리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는데 참 바보 같았습니다.


쓰다 보니 스스로 열 받네요. 꼭 그렇게 빡빡하게 살지 않아도 괜찮았었는데요. 인생은 빨리 달렸다 천천히 달렸다 페이스를 조절해야 되는 마라톤이었는데, 그걸 모르고 옆을 쳐다봐서는 안 되는 100미터 경주처럼 살았었나 봅니다. 그렇다고 남들보다 더 빨리, 더 멀리 가지도 못했는데요. 이제라도 여유를 찾아야겠습니다. 혹시 남은 게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2020년 9월 19일

묵묵

작가의 이전글 끝없이 반복되는 악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