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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묵묵 Sep 23. 2020

거꾸로 하는 재테크

가슴 아픈 재테크 흑역사

저는 재테크에 젬병입니다. 항상 관심이 많았고 이런저런 시도도 꽤 해봤으나 현시점에서 저의 재테크 결과를 점수로 매긴다면 100점 만점 중 70점에서 간드랑 간드랑 하는 것 같습니다. 제 보유자산을 주변인들과 비교하자면 많이 모자란다는 생각에 낙제점을 받은 것 같기도 하고, 정부에서 발표하는 통계치와 비교하면 평균 아래는 아니니 낙제는 면한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애매한 재테크 결과는 장기 전략의 부재 속에 근시안적인 접근으로 일관한 데다 냉정한 이성의 역할보다는 왔다 갔다 하는 감정에 휘말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부실한 재테크에 대해 스스로 변명을 해주자면 결혼하면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할 때, 워낙 없이 시작하여 초반에 재테크를 할 여력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 부모님 찬스로 다 쓰러져가기는 했지만 그래도 잠실에 있던 재개발 가능한 아파트를 2채 매입한 친구가 동참을 권했을 때, 저는 따라 할 수 없어 속만 쓰리기도 했었으니까요. 방울토마토 10번 구르는 것과 수박 1번 구르는 차이를 느꼈던 시절이었습니다. 보통의 소시민으로 과감한 재테크 전략을 구사하지 못하는 것은 저만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요즘에는 주변에 무모한 재테크로 손해를 본 사례들도 많은데 저는 그 정도는 아닌 걸 보면, 제가 재테크를 잘한 것은 아니더라도 아주 못한 것도 아닌 것 같다고 위안하며 살고 있습니다.


사실 성공할 기회는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세기가 바뀌는 즈음에 회사 주식을 잘 팔아 목돈을 마련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아내는 전세를 끼고 신도시에 아파트를 사놓자는 제안을 했었는데 제가 아내의 말을 강력하게 뿌리쳤습니다. 나중에 떵떵거리고 살게 해 주겠다는 사탕발림으로 아내를 달래 놓고 그 돈을 몽땅 들고 주식 투자에 뛰어들었습니다. 당시 증권사에서 근무하던 투자삼당사 친구와 함께 주식 단타거래를 했었는데 1년도 채 버티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다행히 원금은 겨우 건졌습니다. 이 처참했던 실패는 제가 주식시장을 완전히 떠나는 계기가 됐고, 아내로부터 '집 한 채를 주식투자로 날린 남편'이라는 영원한 바가지 주제를 얻었습니다.


집사람이 알뜰살뜰 월급을 잘 모은 덕에 집 장만은 했습니다. 하지만 경기도에 있던 그 아파트는 살기는 좋은 데 투자자산으로서 위치는 좋지 않았던지 가격이 오르지 않았습니다. 가격이 더 오를 것 같지 않으니 팔아버리자고 집사람과 합의를 했고 곧바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저희가 집을 팔자마자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갈팡질팡하며 아파트 가격을 마구 끌어올리는 게 아닙니까? 노무현 정권 때부터 부동산 시장을 팽창시켰던 민주당 정부의 무능을 믿고 부동산 시장에 남았어야 했는데 저희는 거꾸로 한 것입니다. 팔고 난 뒤 오르는 그 아파트의 가격에 한동안 아니 사실은 지금도 배가 아픕니다.


위의 아파트를 팔기 전에 사실은 서울에 아파트를 다시 한 채 사서 잠시나마 이름도 신비로운 다주택자가 됐었습니다. 이때 실수한 건 먼저 산 아파트를 팔 계획이 없었던 터라 대출을 피하고자 추가로 산 아파트는 소형 평수로 골랐던 것입니다. 나중에 직접 거주할 생각보다는 임대하기 쉽다는 것만 생각했었는데 경기도의 아파트를 팔고 나니 나중에 거주할 집이 애매해지고 말았습니다. 직접 들어가 살자니 좀 좁은 것 같고, 그렇다고 계속 세를 주고 저희는 전세 혹은 정권에서 얘기하는 대로 월세를 계속 살자니 늙어 부담일 것 같기 때문입니다. 가격도 그렇습니다. 많이 오르기는 했는데, 주변에 대형 평수 아파트 가격이 오르는 폭을 보니 대출을 받고 좀 더 큰 평수를 샀어도 대출금과 이자를 감당하기에 큰 부담이 아니었겠다는 아쉬움에 다시 또 배가 아파옵니다.


다시 시작했다가는 이혼당할 판이라 주식투자는 자신이 없고, 가격이 너무 오른 데다 다주택자에 대한 강력한 정부 규제 때문에 부동산 시장에 진입하기에 이제 늦은 것 같습니다. 금덩이를 사서 보관하기에는 제 간덩이가 작고, 펀드 투자를 하자니 사기꾼들이 하도 많아 불안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회사에서 잘리지 않고 최대한 오래 버티고, 있는 돈 안 까먹고, 딸내미를 잘 독립시키는 게 남아 있는 저의 재테크 과제가 될 것 같습니다. 하나 더 있네요. 뻘짓 하다가 황혼이혼을 안 당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겠네요. 바람피우다 걸려 재산 분할과 위자료로 재정 상태가 엉망인 사람들도 많은 모양이니까요.


2020년 9월 23일

묵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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