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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묵묵 Sep 26. 2020

궁상맞은 최씨 이야기

근검절약인 것 같기도 하고

저와 친한 최씨는 사는 게 좀 궁상맞습니다. 불필요한 낭비 없이 알뜰살뜰 절약하고자 하는 건 이해할 수 있는데 지켜보기에 안쓰러울 때도 있습니다. 본인도 주변의 시선을 알지만, 별로 고칠 생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본인이 좋다고 하니 뭐라 하기는 어렵지만, 그도 자신을 위해 쓰면서 소확행의 즐거움도 누리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계속 아등바등 살다 가기에는 세상에 즐길 게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그는 브랜드 옷이나 신발이 거의 없습니다. 저가 브랜드나 할인마트에서 산 듣보잡 상표의 옷들을 입고 다닙니다. 그 옷들을 대부분 10년씩은 입고 다니는 것 같습니다. 넥타이도 꽤 오래된 것 같고, 손수건도 만만치 않게 오래 쓰고 있습니다. 사우나에 같이 갔다가 그가 심지어 등 쪽에 구멍이 난 하얀 러닝셔츠나 뒤꿈치가 다 닳아 살이 보이는 검은 양말을 신을 걸 보기도 했습니다. 이발도 머리를 바싹 밀다시피 하는 동네 블루클럽이 단골이라 21세기 개명 천지에 이발소 로션 냄새를 풍기기도 합니다.


같이 카페에 가면 누가 내든 상관 않고 항상 제일 위에 있는 아메리카노만 고릅니다. 요즘 핫한 라떼나 기분이 끌끌할 때는 달달한 카푸치노도 좋은 데 말입니다. 축하할 일이 있어 한 턱 쏜다고 해서 따라가 보면 회나 소고기를 산 준 적은 없고 잘해야 돼지갈비 혹은 삼겹살이 전부입니다. 들어보면 회사에서도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무조건 구내식당에 가서 5천 원짜리로 점심을 해결한다고 합니다.


이제 연봉도 제법 되고, 모아놓은 돈도 없는 게 아닌 양반이 나이에 맞지 않게 차도 소형을 몰고 다닙니다. 자주 못 가서 운동이 되지 않는다는 핑계로 골프는 아예 입문도 하지 않았습니다. 야근으로 피곤할 때도 택시를 부르는 대신 늦은 밤 지하철 역으로 꾸역꾸역 걸어내려 갑니다. 해외여행을 자주 다니는 것도 아니고, 문화생활도 도서관에서 책 빌려 읽는 게 거의 전부입니다. 물론 책이나 잡지도 거의 사지 않고 매번 빌려봅니다.


그는 자식이 여럿이라 학비가 많이 드는 평편도 아닙니다. 장인 장모께서 이미 돌아가셨고 홀로 계신 어머니도 주택과 국민연금으로 노후 준비에 별 신경 써드릴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본인을 위해 좀 쓰면서 살아도 된다고 해도 그는 그저 배시시 웃기만 합니다. 대신 그는 좋은 물건에 별로 욕심이 없고, 고급지지 않은 음식에도 충분히 입이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또 주변의 시선보다는 자신의 편함이 우선이라고 합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만족할 만한 생활이니 바꿀 생각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와 내기를 걸었습니다. 죽기 전에 분명히 후회할 거라고... 아끼고 아껴서 죽으면서 외동딸에게 더 많은 재산을 물려주면 흐뭇할 수 있겠지만, 살면서 더 좋은 것들을 선택하지 않은 데 대해서는 여한이 남을 거라고... 누가 내기에서 이길까요? 화려한 재미없이 알뜰살뜰 살다 가지만 결코 후회는 않을 거라는 그가 이길까요 아니면 적당히 즐길 줄도 알아야 한다고 충고한 제가 이길까요?


2020년 9월 26일

묵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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