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한 분만 빼고 나머지는 다...
운이 없었던 건지 생각해보면 저는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던 기억이 없습니다. 단 한 분만 빼고. 그분은 중2 때 담임인 국사 선생님입니다. 중3 말 진로를 고민하다 가정형편 때문에 상업고교로 진학하려던 제게 인문계를, 그리고 대학도 반드시 가라고 강력하게 권하시던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당시 진로상담을 책임지던 3학년 담임 선생님도 하지 않으신 말씀을 제게 해주셨습니다. '힘들지만 닥치면 어떻게든 된다. 그러니 미리 포기하지 마라'라고 하셨던 그분 말씀을 따랐던 덕에 오늘날의 제 인생이 있습니다.
나머지 선생님들을 생각하면 감사함보다 원망이 앞섭니다. 국민학교 4학년 때 체육이나 소풍을 위한 야외활동 짝꿍을 정하는 날 몸이 아파 빠지는 바람에 저는 1년 내내 짝꿍이 없었습니다. 소심한 데다 눈치를 많이 보던 성격의 저는 체육 시간마다 그리고 소풍 때마다 맨 뒤에 혼자 서 있는 게 죽기보다 싫었습니다. 그래서 1년 내내 체육시간마다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고 교실에 남겠다고 했는데 그 선생님은 제가 어디가 아픈지, 진짜 아픈지 단 한 번도 물어보지 않었습니다. 무관심의 극치였습니다.
음악 시간에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로 시작하는 '꽃밭에서'라는 노래를 가르치다 갑자기 아빠 없는 사람 손 들라고 했던 국민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꽃밭에서'가 아빠를 잃은 아이가 아빠를 그리워하며 부르는 노래라는 것을 가르쳐주려 했지만 아빠 없는 학생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어린 마음에 상처를 남긴 분입니다. 중간쯤 앉았다 저도 모르게 번쩍 손을 들었다 제가 다른 아이들의 불쌍한 눈빛을 고스란히 받게 만들었던 공감 능력이 떨어지던 분입니다.
중학교 때는 영어 감탄문 공식을 질문받았을 때 숫기 없는 제가 버벅대자 '돼지 같은 놈'이 그것도 모르냐고 욕하던 2학년 영어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그분은 시험을 보고 나면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들을 일으켜 세우고는 국민학교에 다니는 자기 딸보다 실력이 떨어진다고 대놓고 비웃었습니다. 수업시간 중 자잘한 실수를 한 학생들에게 툭하면 히스테릭하게 신경질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그때 겪은 공포로 저는 고등학교 때까지 영어를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가르친 게 아니라 학업을 포기하게 만든 나쁜 분입니다.
고등학교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고1 때 담임 선생님은 입학할 때 반에서 3등으로 들어왔는데 1학기가 끝나자 20등 밖으로 밀려난 저를 보고도 아무 소리 안 했습니다. 돈 많은 집 학생들, 부모님이 자주 찾아오던 학생들에게만 친절하게 말을 붙이던 속물 선생님이었습니다. 공부하라는 소리를 단 한 번도 안 하고 야자시간에 술 마시러 다니가 바빴던 고3 때 담임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대학을 정할 때도 충고나 조언은커녕 왜 그 대학, 그 학과를 골랐는지 묻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제가 내민 입학 원서에 도장만 찍어주던 그분은 고3 담임으로서 자격이 없었습니다. 당시 저는 집에 돈이 없어서, 어머니 혼자 고생하시는데 손 벌리기 죄송해서, 학력고사 성적과 관계없이 가장 싸게 다닐 수 있는 학교를 골랐었습니다. 이런 제게 이 분도 중2 때 선생님처럼 도전적인 충고를 한 마디 해줬으면 제 인생이 또 달라졌을 텐데요.
세상에는 좋은 선생님들이 훨씬 많았을 텐데 운이 없어 제가 못 만났었겠지요?
2020년 10월 17일
묵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