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나 유리나 너무 깨끗하면 안 되는 법
르완다 사람들은 청소를 정말 열심히 하고 또 잘합니다. 아주 잘 닦여서, 있는 둥 없는 둥 투명한 거실 유리창 밖으로 건너편 마을을 내려다보다가 문득 제가 겪었던 유리창 사고 3건이 생각났습니다.
첫 번째는 어릴 때 목격했던 아찔했던 사고였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상도동 산동네에, 그것도 제일 꼭대기에 살았습니다. 저희 집 앞 길은 넓이가 2미터쯤 되어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노는, 골목 축구나 다방구 같은 놀이 장소였습니다. 길 한쪽은 쭉 이어진 집들의 담벼락이 있었으나 반대쪽은 담이 없이 바로 낭떠러지로 이어졌습니다. 산동네들이 그렇듯이 낭떠러지 밑에는 또 집들이 있었고, 길에서 밑에 있는 집들의 지붕까지 2 ~ 3 미터 높이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꽤 위험한 곳이었는데 당시는 위험한지도 모르고 뛰어다니며 놀았습니다.
어느 날 술래잡기를 하던 동네 꼬마가 술래를 피하려다 그만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떨어지면서 밑에 집 창 유리에 머리를 부딪혔습니다. 유리가 박살이 나면서 크게 베인 꼬마는 얼굴에서 피를 철철 흘렸습니다. 다행히 근처에 살고 있던 택시 운전사 아저씨가 급하게 연락을 받고 달려와 병원으로 꼬마를 이송했습니다. 팔이 부러졌고, 얼굴에 깊은 상처가 나기는 했지만, 그 녀석은 무사했습니다. 큰일 날 뻔했던 사고였습니다.
두 번째 사고는 둘째 고모부가 주인공이었던 운이 좋았던 케이스였습니다. 당시 제법 부자였던 고모부는 넓은 정원이 있는 집에서 사셨습니다. 정원을 향한 거실 유리문을 고모가 아주 깨끗하게 닦으신 어느 날이었습니다. 거실 소파에 앉아 계시던 고모부는 그 투명함 때문에 유리문이 열려있는 줄 아시고는 정원 쪽으로 고개를 내미시다가 그만 유리문 아래쪽을 들이받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세게 받으셨는지 유리문은 그 자리에서 박살이 났고 유리 파편들이 밑으로 쏟아져 내렸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유리문의 큰 파편들은 고모부의 목을 비켜갔고 고모부는 뒤통수와 목에 몇 군데가 찢어지는 수준의 부상을 당하셨습니다. 만일 큰 파편이 목을 정면으로 쳤으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는데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하마터면 무릎 꿇고 단두대 위에 목을 내민 것처럼 참수형을 당할 뻔하셨으니까요.
마지막은 사고라기보다는 몸개그에 가까운 사례로 제 신입사원 시절 팀장님과 함께 런던 출장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분은 여자 팀장님이셨는데 건강이 좋지 않았습니다. 특히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은 영 매가리가 없어서 옆에서 지켜보기에도 아슬아슬했습니다. 출장 중 한날 오전 일정을 마치고 둘이 피자집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던 길이었습니다. 당시 식당에는 카운터 앞으로 출입구가 있었고, 카운터 바로 뒤 공간은 창가 좌석으로 이어지는 복도였습니다.
팀장님은 출입문 대신 카운터 뒤 창가 좌석 쪽으로 걸어가셨습니다. 컨디션이 안 좋아 멍해 있었던 팀장님은 카운터 뒤쪽이 출입구인 줄 알았던 것입니다. 갈라져 출입구 쪽으로 나가던 저는 팀장님이 왜 그리로 가시나 궁금해하며 보고 있었는데, 구부정하게 걷던 팀장님은 식당 유리창을 이마로 그대로 받아버리셨습니다. 그리고는 뒤로 발라당 넘어지셨는데 어찌나 우습든지요. 다쳤냐고 묻고 일어서는 걸 도와드려야 했던 순간에, 저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큭큭대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이마에 혹이 난 외에 큰 부상은 아니었습니다만, 저에게 한 마디도 안 하고 눈만 흘겼던 걸 보면 그날 팀장님은 몹시 쪽팔렸던 것 같습니다.
유리창이나 유리문을 너무 깨끗하게 닦으면 안 되겠지요?
2020년 10월 14일
묵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