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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묵묵 Nov 21. 2020

착한 사람보다 나쁜 사람이 더 많을까?

방송사의 저녁 뉴스를 보다가 문득 이 세상에 착한 사람이 더 많을까 아니면 나쁜 사람이 더 많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뉴스에는 상상하기도 싫을 만큼 나쁜 짓을 하는 인간들도 나오는 동시에 제 평소 행실을 부끄럽게 만드는 따뜻한 선행의 주인공들도 많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꼼꼼히 세어볼 수는 없지만 두 경우를 알리는 뉴스거리가 떨어지지 않는 것을 보면 양쪽 편 다 많은 것 같습니다.


수재나 화재 같은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어김없이 기부금과 자원봉사자가 행렬을 이룹니다. 기부금을 가지고 사기극을 벌이는 못된 인간들이 있음을 알면서도 재해마다 매번 억대 혹은 십억 대의 기부금이 쌓이는 것을 보면 착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통사고가 났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자기 옷 버리는 것도 모르고 심지어 고속도로 같이 위험한 현장에서 스스로의 목숨까지 걸면서 사고를 당한 이웃을 돕기 위하여 나서는 의인들이 있습니다.


직접 나서지는 못하지만 재해나 사고가 났을 때 자기 일처럼 걱정하고 우울해하는 사람들도 주변에 흔합니다. 질서를 안 지키는 사람들보다 지키는 사람들이 더 많고, 길이나 식당에서 주운 물건을 주인에게 돌려주기 위하여 자기 시간과 차비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도 착한 쪽에 속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 자신도 술을 마시고 집에 가다가 지갑을 길에 흘렸었는데, 천 원짜리 한 장 잃어버리지 않고 다음날 오전에 찾은 경험이 있습니다. 이래 보면 착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살인과 패륜 범죄의 뉴스를 듣다 보면 세상에는 나쁜 인간들 역시 지나치게 많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타인의 가정과 인생을 파괴하는 극악무도한 범죄자들, 교묘한 수법으로 넋을 빼어 노인들의 평생 모은 재산을 훔치는 보이스피싱 사기꾼들, 어려운 살림 속 이웃들의 몇 푼 안 되는 돈까지 노리는 도둑들, 아이들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나쁜 어른들 소식은 뉴스에서 빠진 적이 없습니다.  

  

갑자기 화려한 유명인이 되는 일반인에게 쉽사리 추문과 범죄 경력, 미투, 빚투가 따라붙는 것을 보면 드러나지 않지만 착하게 살지 않는 평범함 사람들이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술에 취한 채 밤길에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과 묻지마 범죄로 사회를 극도로 불안하게 만드는 정신병자들이 길거리마다 넙칩니다. 자영업자들을 극한으로 몰아세우는 진상 손님들과 약자에 육체적 혹은 언어적 폭력을 가하고도 뻔뻔한 질이 나쁜 인간들도 흔하디 흔합니다. 데이트 폭력도 있고, 가정 폭력도 있네요.


어느 쪽이 더 많은지 제 머리로는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네요. 어느 쪽이 더 많은지 가릴 수 없는 것은 어쩌면 세상에는 착한 사람의 수와 나쁜 사람의 수가 비슷한 수로 존재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착한 사람이 더 많다고 믿고 싶습니다. 성선설은 아니더라도 세상에는 자기 이익을 위하여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보다는 같이 살기 위하여 도움을 주고, 눈 앞의 편의를 위하여 사회적으로 합의된 룰을 깨기보다는 사회의 견고한 유지를 위하여 불편을 감수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믿고 싶습니다. 반대로라면 하루 종일 범죄와 나쁜 사람들의 손길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전전긍긍하는 고통의 삶이 당연시될 테니까요. 분명 착한 사람이 더 많을 것입니다. 

  

2020년 11월 21일

묵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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