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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묵묵 May 09. 2020

야구와 꿈 이야기

네 명의 에이스 혹은 포기

저는 어릴 때부터 야구를  좋아했습니다실업야구 시절 나온 김일권 선수의 날쌘 도루와 김재박 선수의 화려한 수비이선희 선수의 멋진 투구 폼에 열광했었습니다. 1981 경북고와 봉황대기 고교야구 결승전에서  슬라이딩을 하다 박노준 선수가 다치고 결국 제가 응원했던 선린상고가 대역전패를 당했을  제가 얼마나 했던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1982년에 프로야구가 출범하 나서 저는 해태 타이거즈의 열렬한 팬이 되었습니다빨간 장갑의 마술사 김동엽 감독과 14명의 선수로 가난하게 출발한 타이거즈는 빨갛고 검은 유니폼 속에서 투지가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그야말로 화끈한 경기를 펼쳤습니다.


첫해 성적도 괜찮았습니다 적은 인원으로도 6  4위를 기록했습니다. 1루수와 투수를 겸하면서도 전반기에만 10승을 거두었던 김성한 선수홈런왕 김봉연 선수빨랐던 김일권 선수정교한 타격의 김종모 선수 등등 기라성 같은 선수가 많았지요저는 개인적으로 대학시절부터 오리궁둥이 김성한 선수를 좋아했습니다 다음 해부터 타이거즈는 한국 프로야구의 전설을 쌓아갔습니다선동렬조계현김정수이순철이종범이대진  굵직한 프랜차이즈 스타가 계속 합류하여 한국시리즈 9 우승그것도 불패 우승이라는 신화를 만들어 냈습니다해태에서 기아로 팔린 후에도 타이거즈는 2번이나 더 우승했지만이제는 투지와 열정을 잃어버린 그저 그런 팀이 되어버렸습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습니다타이거즈에는 꿈과 관련해서 얘기할  있는 4명의 선수가 있습니다

 

포기한 에이스 김진우

김진우 선수 잠재력이 대단한 투수였습니다. 2002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계약금 7억 원에 타이거즈에 입단한 김진우 선수 광주진흥고 시절부터 192센티의 키에 100kg 넘는 당당한 체구로 시속 150km대의 공을 꾸준히 던질  있었던 2 선동렬이었습니다첫 해 12승을 올리며한국시리즈 우승에 대한 갈망 속에서 에이스 부재에 목말라하던 타이거즈 팬들의 가슴을 들뜨게 했습니다


그러나그는 미완의 대기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2 차인 2003년에도 11승이라는 준수한 성적을 거뒀지만시즌 중에도 연습과  관리 대신 툭하면 숙소를 빠져나와 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악동짓을 했습니다급기야 나이트클럽에서 옆 테이블 손님들을 폭행하여 경찰에 연행되기까지 했습니다. 탁월했던 재능을 안타까워했던 주위 사람들에 의하여 사건은 무마되었고 다시 마운드에 섰지만, 그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계속 술로, 팀 이탈로, 불성실한 훈련으로 그는 타이거즈의 에이스라는 꿈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이탈과 복귀를 반복하며 늙어가던 그는 결국 평범한 공을 가진 선수가 되었고, 쓸쓸히 야구장을 떠났습니다.


쓰러진 에이스 “김상진”

김상진 선수 별명은 아기 호랑이였습니다. 1996 광주진흥고를 졸업하고 타이거즈에 합류한 김상진은 스물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대담한 피칭으로 타이거즈 투수진의  축을 담당했습니다시속 150km 넘는 강속구에 명품 슬라이더가 있었고포크볼과 체인지업  다양한 구질을 구사했습니다. 입단 첫해 이강철조계현이대진  쟁쟁한 선배들 틈에서 9승이라는 신인으로서는 주목할 만한 성적을 거둡니다


그는 계속 성장해 갔습니다. 1997 시즌에 다시 9승을 거두며 2  징크스를 벗어던지더니   LG와의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드디어 사고를 칩니다. 3승을 거둬 일찌감치 한국시리즈 우승을  앞에  김응룡 감독은 벼랑 끝에 몰려 독이 오른 LG  올리듯 신예 김상진 선수를 선발로 올렸고 그는 공격적인 피칭으로 9이닝 동안  2안타만 내주면서 한국시리즈 최연소 완투승을 거둡니다마지막 타자를 잡아내고 나  손을 높이 쳐들고 포효하는 그에게서 타이거즈 팬들은 새로운 에이스의 등장을 봤습니다그러나그것이 김상진 야구인생의 정점이었습니다


다음 해인 1998 전반기에 벌써 6승을 거두며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가던 김상진 선수는 9 19 OB전을 끝으로 다시는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습니다그의 마지막 경기  저도 잠실운동장에 있었는데  던지던 김상진 선수가 갑자기 교체되어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며칠  그가 위암 말기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뉴스를 듣게 되었습니다잔여 생명 3개월을 선고받은 그였지만반드시 암을 이기고 재기하겠다고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의지와는 달리 겨우 6개월을  살고 1999 6 10 세상을 떠났습니다팬들은 그를 잊 못하고 天上飛愛(하늘 위로 날려 보내는 사랑)이라는 팬클럽을 만들어 그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이어갔습니다영원한 아기 호랑이 김상진 선수는 타이거즈 팬들에게 쓰러진 꿈입니다

 

쟁취한 에이스 윤석민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녹색 다이아몬드를 뜨겁게 달구었던 한국 야구대표팀에 타이거즈의 윤석민 선수 있었습니다류현진 선수 김광현 선수만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롱릴리프와 셋업맨마무리  포지션을 가리지 않고 전천후 출격한 운석민 선수는 2 1세이브라는 좋은 성적으로 한국의 금메달 획득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그러나그가 처음부터 올림픽 국가대표에 뽑혔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해 리그에서 12승으로 다승 부문 1방어율 2(2.47), 탈삼진 3(95)라는 출중한 성적을 올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표팀에 선발되지 못했던 윤석민 선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감독이 원하면 사이드암으로라도 피칭폼을 바꾸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임으로써 선수 교체 마감 시한을 며칠 앞두고 가까스로 두산의 임태훈 선수를 대신하여 올림픽에 나갈  있었습니다그는 사실 타이거즈의 프랜차이즈 출신이 아니었고, 수도권 팀들의 외면 속에 2005 2 지명을 통하여 타이거즈에 입단한 보통 선수였습니다그러나, 꾸준한 노력과 의지로 성장하여 타이거즈의 에이스라는 꿈을 쟁취한 선수였습니다.  

 

영원한 에이스 이대진

타이거즈 팬들은 이대진이라는 이름 만으로도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물론 코치가 아닌 선수 이대진만을 얘기합니다. 1993 타이거즈에 입단한 이대진 선수는 첫해 10승을 거두며 에이스 후보로 떠오릅니다이대진 선수는 글자 그대로  같은 강속구를 던졌습니다마음먹고 던지면 스트라이크존 한복판이라도 타자들이 움찔할 만큼 대단한 돌직구가 그의 주무기였습니다1994 7, 1995 14, 1996 16, 1997 17승을 거두며 타이거즈의 에이스가  그를 팬들은 “Ace of Ace”라는 극존칭으로 불렀습니다. 국민 투수라는 선동렬 선수에게도 붙이지 않았던 별명입니다. 1998 5 14 그는 “Ace of Ace” 명칭에 걸맞은 신화를 만들어냈습니다당시 태평양 유니콘스와의 경기에서 10 타자 연속 탈삼진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수립한 것입니다. 


그런 그도 결국 쓰러졌습니다. 1997 해태 타이거즈에게 마지막 우승을 안긴 후에도 계속해서 강속구를 뿌려대던 그의 어깨가 고장 난 것입니다. 1999 시즌  전지훈련에서 찾아온 어깨 부상은 그를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트렸습니다재활과 부상다시 재활과 부상이 길고 지루하게 반복되었지만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타자로 전향하기도 하였지만 돌아와 타이거즈의 마운드에 오르는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2007 4 7 부상의 터널을 빠져나와 처음 부상이 찾아온  8 만에 그는 다시 타이거즈의 선발로 마운드에 섰습니다. LG와의 시즌 2차전 1 말에 마운드에 오른 돌아온 에이스에게 팬들은 눈물이 앞을 가리는 가운데   개의 노란 종이비행기를 날렸습니다 이상 타자를 윽박지르는 강속구를 던질  없었던 그는 커브와 체인지업절묘한 컨트롤로 4 만에 선발승을 따냈습니다그가 던지는  하나하나는 그대로 전설이 되었고 승리투수 요건을 갖추 마운드를 내려가는 이대진의 뒷모습에 팬들은 눈물을 흘렸습니다집에서 TV로 중계를 보던 저도 아내와 딸 몰래 연신 눈물을 닦아 내야 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돌아왔고 그 해 6승을 따냈습니다. 타이거즈의 “V10”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하여 몸이 부서지는 날까지 마운드에 섰던 그는 어떠한 고통과 난관에도 꿈을 놓치지 않는 에이스였습니다.


올해 한국 프로야구 리그가 이번 어린이날에 시작됐습니다. 그라운드에는 각 팀의 에이스를 꿈꾸며 긴 겨울 동안의 전지훈련을 알차게 마치고 돌아온 선수들로 가득합니다. 끊임없는 노력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가졌던 재능이 에이스를 보장한다면, 아무도 꿈을 이루기 위해 혹독한 훈련을 견디지 않을 것입니다. 꿈은 지금 취해 있는 현실이 아니라 이상향의 미래이고, 꿈은 이미 서있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달려가야 하는 그 길 끝에 있습니다. 올 한 해 타이거즈의 야구가 보여줄 희로애락을 즐기는 꿈이, 에이스를 꿈꾸는 선수들의 용기 있는 도전을 지켜보는 행복한 꿈이 이제 시작됩니다.    


2020년 5월 9일

묵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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