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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묵묵 May 12. 2020

그리스인 조르바

인생 최고의 책

억지로 들어간 대학에서 강의에는 흥미를 잃고 서클과 운동권 선배들 옆을 기웃거리던 1학년을 가까스로 마치고 휴학 중인 때였습니다. 세탁 바구니에 오래 처박아 둔 빨래처럼 잔뜩 구겨진 체 의욕도 없이, 낮에는 누웠다 밤이 되면 술집 사이를 배회하던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때, 검은 배경에 사람의 얼굴과 손, 그리고 촌스런 주황색 제목을 표지로 한 “그리스인 조르바”를 만났습니다. 그 날로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제가 숭배하는 작가가 되었고, 며칠 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라는 그의 묘비 문구를 가슴에 안고 그의 책들을 배낭에 넣고 남도 여행을 떠났습니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땅에서 보름 간을 카잔차키스를 온전히 즐기며 보내자는 젊은 날의 치기였습니다. 돈은 모자라고 몸은 피곤한 여행이었지만 그가 쏟아 내는 자유와, 우리와 비슷한 한의 정서가 한데 엉킨 이야기들에 무한히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스 크레타에서 태어난 카잔차키스는 어린 시절부터 지배자 터키의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와 독립전쟁을 겪으면서 자유에 대한 깊은 갈망을 갖게 된 사람입니다. 이런 갈망을 자신처럼 행동하지 않는 지식인을 화자로, 게오르규 조르바라는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해서 풀어낸 것이 바로 이 소설이었습니다. 소설은 서른다섯의 젊지만, 조르바의 표현 대로라면 머리가 덜 영근 “내”가 크레타 섬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던 술집에서 60이 넘었지만 활력이 넘치는 조르바를 만나는 시점에서 출발합니다.


책벌레인 “나”는 책과 종이 속에서 허송했던 삶을 떠나서 노동자, 농부 같은 단순한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 위해 크레타로 갈탄광 사업을 하러 갑니다. 이런 “나”에게 말과 행동에 거침이 없는 조르바는 "나"가 원했던 살아있는 동반자였습니다. “나”는 갈탄광 사업을 말아먹을 때까지 해변 오두막에서 조르바에게서 술과 음식, 여자를 다시 배웁니다. 학력이 없는 무지렁이 조르바의 말 한마디 한 마디는 책 속의 죽어 있는 인생들 속에서 헤매던 “나”의 가슴을 날카로운 비수처럼 후벼 팝니다. '”왜요” 라니, 하고 싶어서 하면 안 됩니까?’, ‘닥치는 대로 일합니다. 해본 일만 해가지고는 어디 성이 차겠소?’,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 단 말이요. 인간은 자유라는 거지’,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일 일어날 일도 고민하지 않습니다.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바로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지요.’ 조르바는 살아서 펄떡대는 자신의 자유로운 영혼을 보여줌으로써 죽어 있는 지식의 감옥에 갇혀 몸도 가누지 못하던 “나”를 구했습니다. 


살아 숨 쉬는 가슴과 걸러지지 않은 짐승 같은 언어를 쏟아 내는 입을 가진 사나이, 어머니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 조르바는 가식으로 얼룩진 사회의 우스꽝스러움을 한마디 말로써 단박에 깨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지식 대신 지혜가 있고, 머리 대신 몸으로 고민하고, 신 대신 삶을 믿습니다. 그는 침대에 누워서 조용히 기다리는 평범한 죽음 조차 거부합니다. 유언을 마치고는 침대에서 뛰어내려 창문가에서 먼 산을 바라보며 웃다가 울다가 창틀에 손톱을 박고 서서 죽음을 맞이 했던 것입니다. 죽음마저 그답습니다. 


나중에 영화화된 “그리스인 조르바”를 보고 나서 저는 많이 후회했습니다. 소설 속의 조르바는 툭 튀어나온 광대뼈에 바싹 말랐지만 생동감이 넘치고 목소리가 카랑카랑한 늙은 어부 같은 모습으로 상상되지만, 영화 속 안소니 퀸이 맡았던 조르바는 제 눈에 살도 좀 붙어 있고 눈도 목소리도 둔탁하게 그려졌습니다. 마지막에 사업이 망하고 “내”가 조르바로부터 춤을 배우는 장면에서도 안소니 퀸의 춤에 조르바의 자유와 활력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초부터 카잔차키스의 신화적인 묘사를 영화적으로 살려 내기에는 무리가 있었나 봅니다. 물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가 히트 쳤다 하고, 안소니 퀸도 그리스의 명예시민이 된 것을 보면 말입니다.


가끔씩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시 읽습니다. 저희 집에 있는 조르바는 종이가 누렇게 바래고 옛날 편집이라 눈도 편하지 않은 조잡한 1986년 판이지만, 표지만 봐도 설레는 제 마음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제가 조르바 같은 인생을 살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다만, 조르바 같은 사람을 만나기라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조르바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집에 있든, 회사에 있든 잔뜩 위축되어 수동적으로만 움직이고 있는 저를 쏘아보면서 ‘현재를 낭비하지 말고 신께서 허락한 인생을 있는 힘껏 즐기라’고 할 것 같습니다. 다만 한 순간이라도...


2020년 5월 12일

묵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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