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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로잉업 Feb 07. 2024

아들의 졸업식

네가 주인공이야!


아들이 중학교를 졸업했다. 

초등학교 졸업식은 코로나가 무서웠던 때라 공식행사 없이 학교에 가서 가족끼리 사진만 찍고 끝났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데, 정말로 그 시간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중학교 입학할 때도 하얀 마스크를 엄중하게 착용했고, 얼마 안 되는 시간을 들쭉날쭉 등교를 하며 일학년을 마쳤다.


첫 단추부터 제대로 끼워지지 않아서일까. 

아이는 학교 생활을 유난히 재미없어했다. 탄력성이라고는 1도 없는 교복바지를 매일 입어야 하는 시간들이 아이에게는 고통이었다. 본격적인 한국식 교육의 매운맛을 보여주는 중학교 생활, 그것도 동물의 세계와 비슷하다는 남자 중학교 시절을 아이는 견뎌내야 했었다.  


사람의 경험치는 딱 1인분이다. 

내가 해 본 경험 외에는 얻어 듣고, 어깨너머로 보고, 상상으로 생각할 뿐이지, 몸소 경험할 수 있는 감각과 생각은 예외 없이 각자의 몫뿐이다. 내가 경험했던 학창 시절과 아들의 학교생활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나에게는 학교는 설레고 즐겁고 배움이 있는 곳이었는데, 아들에게는 지겹고 딱딱하고 자유롭지 않은 곳이었다.

그 간극을 이성으로 따라잡기에는 한계가 있어 난 아이와의 대화에서 번번이 좌절하기도 했다. 그렇게 3년의 시간 동안 나도 아이에게도 적응이 필요했다. 





졸업식 현장에서 묘한 기분을 느꼈다. 세상은 이리도 많이 변했고, 나와 아이는 30년도 넘는 시간차를 두고 경험하는데 졸업식의 분위기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 장면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내빈 인사 말씀까지. 얼마나 익숙한 진행인지 나는 잠시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는 기분까지 들었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데, 왜 가슴이 웅장해지며, 애국가 제창을 하는데 느껴지는 전율은 현재의 감격인지 몸이 기억하는 자동반응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호명되어 상을 받으러 나가는 아이들의 당당하고 반듯한 발걸음에서 나의 어린 시절의 모습이 오버랩이 되었다. 한 번도 주인공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던 초중고 졸업식. 아들은 그 느낌을 알지 못할 것이다. 상을 받으러 단상에 올라가는 아이들에게 열심히 박수를 보내면서 한편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객석의 아이는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을까 혼자 짐작도 했다.  


졸업식 공식 행사가 끝나고 만난 아들의 표정에선 얼른 이 공간과 시간을 끝내고 뻣뻣하고 몸에 엉거주춤 걸쳐진 교복을 벗어던지고 싶어 하는 것이 역력히 느껴졌다. 학창 시절의 즐거움은 좋은 성적표를 받았을 때의 성취감, 선생님의 칭찬, 그 시간을 함께 하는 친구들과의 관계들에서 오는 것이라 믿었던 철저한 엄마 시점에서 보니 안타까움과 속상함이 잠깐 올라왔다. 그렇게 졸업식을 끝낸 아들은 좋아하는 매운 곱빼기 짬뽕 한 그릇에 비로소 환한 얼굴이 되었다. 

 




난 모범생이지 않은 우리 아이들을 보며 간혹 해방감을 느낀다. 모범생이라는 틀에 딱 맞게 자란 나는 그 틀을 깨기 위해 지금도 애쓰고 있지 않나. 좌충우돌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두 번째 성장기를 보내는 기분이다. 첫 번째는 선생님과 부모님이 원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냈으니 두 번째 성장기는 불안정하지만 자유로운 또 다른 역할을 해 봐도 괜찮지 않은가. 아이들은 나에게 세상의 다른 면을 보게 해 준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이런 감정도 있다고요.' 다듬어진 분재처럼 더 이상 자라지 못할 뻔했던 나는 아이들 덕분에 옭아맨 철사줄로부터 삐지고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아들은 중학교를 졸업했다. 3년이란 시간 동안 아이는 꽤나 애를 썼을 것이다.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도 고지식한 엄마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감정 때문에 속도 많이 상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함께 성장하고 있다. 아이는 조금씩 다듬어지고, 나는 조금 더 풀어헤쳐지고 있다. 졸업식 현장에서 하마터면 사랑하는 우리 아들을 들러리로 만들 뻔했다. 어제 졸업식의 주인공은 우리 아들이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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