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부탁해

밴쿠버 여행기 01

by 신테판

얼마 전 회사에서 동료들과 재미로 단돈 990원짜리 유료사주를 보았다. 거기서 말하길 나는 정교하게 조각된 명품 소나무라 한다. 형상을 유지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다듬고 인내해 온 흔적이 있다며 스스로를 조각하는 칼날을 내려놓고 숨 쉴 구멍을 만들어 주는 것이 최고의 개운법이랬다. 가끔 일의 관성이 너무 익숙해져 휴가를 잊는 경우가 있다. 사실 회사는 나 없이도 너무 잘 돌아가고, 그래야만 하는데 가끔 나는 내가 있어야 한다는 착각을 하곤 한다. 이런 생각이 고착화될 때쯤 이번 여행이 내 운을 전환해 주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이번 여행은 준비하는 기간부터 주변에서 많은 응원을 받았다. 회사 동료들도 그동안 힘들었으니 가서 푹 쉬고, 잘 잊고 오라고. 동료의 휴가를 권해주는 조직에 속한 것도 새삼 기뻤고, 또한 그간 열심히 살아왔다는 것을 인정받은 기분이라 좋았다. 내게 남겨진 사람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준비하는 기간부터 마음이 따뜻했다.


명품 소나무가 잘 자라려면 수(water)와 목(wood)의 기운이 가장 필요하다고 한다. 동시에 내겐 건조함과 금 기운이 강해서 이를 잠재워줄 물과 나무가 절실하단다. 지역적으로는 북동쪽이 좋다며 나의 힐링 여행지로 숲과 호수가 어우러진 캐나다와 북유럽을 추천했다. 사주팔자에서도 추천하는 캐나다는 이번 상실 극복 여행지로 아주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숲과 호수의 나라답게 밴쿠버 공항 조형물에는 분수와 물이 흐르고 있었고, 명품 소나무의 입국을 격하게 환영해 주었다. 이 도시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담백하고 조용했다. 엄청 화려하지도, 엄청 차분하지도 않은, 그래서 어쩌면 강렬한 인상은 주지 못하더라도 은은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호수의 물을 얼린 구슬 같은 느낌이랄까.


밴쿠버에서 며칠은 친구네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친구네 동네는 다운타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첫날은 늦은 오후에 도착하기도 해서 친구네 동네를 구경하며 밴쿠버의 로컬한 맛을 먼저 보기로 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단순한 도로와 길가에도 이색적인 풍경에 감탄하며 카메라를 들이대며 다녔다. 여행은 누군가의 일상적인 공간에 새로움과 특별함을 더하는 마법을 부린다.

동네를 구경하던 중 어느 고양이를 찾는 전단지를 보았다. 순간 고양이를 잃어버린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 상상이 되고, 집을 나온 고양이의 심정도 안타깝게 느껴졌다. 자식 같은 고양이를 잃고 얼마나 슬퍼했을지, 먼 지구 반대편으로부터 찾아온 이방인이지만 온 마음으로 공감했다.


사실 나는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어릴 때 살았던 동네에 길고양이들이 많았는데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고 밤에 갑자기 튀어나오는 등 선입견을 가지게 되어 친숙하지 못했다. 그런데 전 연인을 통해 고양이의 매력을 알게 되었고, 함께 고양이를 돌보게 되었다. 심지어 나중엔 유기묘를 같이 입양하기도 했는데 그녀는 나에게 자식 같은 존재였고, 지금도 사무치게 그립고 보고 싶다. 이별 후에 고양이들이 꿈에 자주 찾아와 주기도 했다. 최근 꿈에서는 고양이가 좋아하던 목덜미를 내가 만져 주던 꿈을 꾸었는데, 그 촉감이 너무나 실감 나서 실제로 만난 줄 알았다. 그래서 한동안 후유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안녕, 야옹이들 잘 지내지? 내가 집으로 가는 발소리를 듣고 현관으로 오던 너희들. 내가 문을 열면 잽싸게 도망갔다가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냥! 대답하며 내 곁으로 와서 엉덩이를 붙이고 골골송을 불러주던 너희들. 내가 이별의 과정이서 펑펑 울 때도 옆에 와서 만져달라고 하던 너희들. 이제는 너희의 얼굴을 볼 수도, 소리를 들을 수도 없음을 알았는지 내 꿈에 찾아와 준 너희들. 꿈에서 너를 쓰다듬던 촉감이 아직도 선명해서 내가 아직 살아있음을 알게 해 주었어. 너희들도 내가 갑자기 사라지고 나서 궁금해했을 거 같은데, 많이 슬퍼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도 엄마랑 친구들이랑 행복하게 잘 지내야 해?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빠는 너희를 정말 많이 사랑하고, 많이 그리워하고 있단다. 머나먼 밴쿠버에서도 너희를 많이 보고 싶어 하는 아빠의 마음이 닿기를 바라며.


장기 기억이라는 건 정말 무섭다. 가슴속 깊게 닫혔던 서랍이 열리면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밴쿠버의 어느 동네에서 Missing Cat을 보는 순간 잊고 지냈던 과거 서사가 주르륵 펼쳐지듯 말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아픔 없이 서랍을 스스로 열어 볼 수 있을 때까지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