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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테판 Jun 27. 2020

상실된 죄의식과 인간 파멸 <인간수업>

드라마 <인간수업> 리와인드


인간수업 Extracurricular, 2020

한국 / 드라마

연출 : 김진민

각본 : 진한새

출연 : 김동희 정다빈 박주현 남윤수


(스포일러 포함)

18세 청소년들의 잘못된 선택과 파멸의 과정을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인간수업>. <인간수업>은 그동안 한국 드라마에서 금기시되어 오던 소재를 노골적으로 다루면서 화재성은 물론 작품성에 대한 고민한 흔적까지 보여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도 자유로운 땅 넷플릭스에서 꽃 피운 신선한 한국 드라마라 더욱 반가웠다.


일단 재미있다. 거기에 현재 가장 뜨거운 이슈인 청소년 성범죄를 다룬다. 누구나 알고는 있지만 드러내지 않던 인간의 추악한 부분을 드라마는 솔직하게 보여준다. 청소년 성범죄 특히 조건만남이라는 예민하고도 금기시되어 왔던 소재를 가지고도 가해자를 미화한다거나 피해자를 모욕하는 수준의 표현 없이 다루려 노력했고, 너무 심각하거나 진지해지지 않도록 가장 악질적인 캐릭터 ‘대열’에 코믹한 요소를 설정해 환기를 제공하는 점도 인상적이다. 또한, 현재 사회의 상황에 맞게 구시대적인 방법이 아닌 4차 산업혁명에 맞는 범죄 형식을 다루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게다가 민감할 수 있는 소재를 조심스러워하는 제작사의 노력이 여럿 보인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존재하는데 그것은 내러티브 안에서 해결되지 못하고 넘어가는 요소들이 다소 보인다는 것이다. 가령, 조건만남을 하는 여성들이나 연습생에 대한 마무리가 지어지지 않은 점, 복선처럼 깔려있던 ‘규리’에게 추파를 던지는 기획사 사장 등 드라마 안에서 떡밥을 마구 던져 놓고 마무리되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다소 존재한다. 물론 드라마가 모든 것을 설명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유 없이 등장하는 캐릭터나 대사는 없을수록 좋다. 그들의 등장만큼이나 적절한 역할의 마무리가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10개의 에피소드 안에 모두 담아낸다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고, <인간수업>은 드라마가 주로 다루는 사건에만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드라마이기 때문에 갖게 되는 우연성과 주인공들에게만 관대하게 적용되는 생존성도 살짝 불편하게 했다.


제목은 <인간수업>이다. 인간을 배우는 수업일까. 아니면 인간을 대상으로 한 수업일까. 수업이란 교육활동으로 교수자와 학습자가 만나 학습을 촉진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학습자 혼자서 할 수도 있는 학습이라는 의미에서 조금 더 나아가 교육을 제공하는 자와 받는 자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인간수업>에서는 각자의 선택에서 오는 상황을 통해 수업을 주고받는다. 인물들이 교복을 입었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수업을 받고 있지 않다. 담임 ‘진우’가 학생 ‘지수’와 ‘민희’를 통해 학습을 할 수도 있고, ‘지수’와 ‘규리’는 서로에게 가르침을 주기도 한다. 또한, 상황과 인간이 교수-학습자가 되어 스스로 가르침을 얻게 되기도 한다. <인간수업>에서는 서로를 통해 인간을 수업하고 있다.

여러 인물 중에 각자 포커싱하는 인물이 다를 것이다. 이처럼 우리 욕망의 모습도 다양하다. 이러한 인물들을 공통적으로 아우르는 한 가지는 바로 죄의식의 상실이다. 누구는 남들처럼 공부하고, 대학 가서 평범하게 살고 싶어 하고, 누구는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하고, 누구는 원하는 것을 가지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들의 욕망은 잘못된 죄의식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죄의식이다. 인간은 죄를 짓지만 잘못을 뉘우칠 줄도 안다. 죄의식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다. 누구나 욕망을 꿈꿀 수 있다. 그러나 그 방법이 잘못되었을 뿐, 삐뚤어진 죄의식은 파멸로 향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수’가 ‘규리’는 사업을 장난으로 했다는 말에 ‘민희’가 분노를 표출한 장면이 가장 안타깝고, 씁쓸하게 느껴졌다.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메타포는 소라게다. 주인공의 심리와 처한 상황 등을 적재적소에 잘 활용한 소재다. 소라게는 복부가 특히 취약한데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소라 껍데기나 굴 등의 껍데기로 보호한다. 그리고 자신의 몸 크기에 맞게 껍데기를 바꾸어 가는 특징이 있다. 또한, 원하는 껍데기를 위해 서로 경쟁하고 죽이기까지 한다. 이러한 소라게는 ‘지수’와 많이 닮아 있다. 느릿느릿하고 야행성인 소라게처럼 ‘지수’는 평소에 튀지 않고, 밤에 본격적인 활동을 한다. 또한 그들은 연약한 부분을 숨기기 위해 단단하고 알맞은 크기의 껍데기를 찾는다. 너무 작아도 커도 안 된다. ‘지수’는 평범함을 위해 튀지 않는 껍데기를 항상 찾는다. 하지만 새로운 만남으로 인해 몸에 맞지 않는 껍데기를 갖게 되고 결국 자신의 가장 취약한 복부를 드러내고 만다. 그리하여 엔딩에서 ‘기태’에게 복부를 찔리며 위기에 처하고 만다. 소라게에게 가장 약했던, 그리고 ‘지수’에게도 자신을 지켜줄 껍데기가 없어지자 가장 약한 복부를 찔려 쓰러지고 만다.

처음 넷플릭스에 공개되었을 때만 해도 제목이 주는 모호함과 더불어 다소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의 라인업으로 의아함을 샀다. 그러나 단 1화를 보고 그 의심은 사라졌다. 오히려 배우의 마스크가 신선하기 때문에 극에 오롯이 몰입할 수 있었고, 인지도가 다소 약하다고 해서 연기력에 문제가 있지도 않았다. 오히려 주연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했다. 배우 이름 자체의 브랜드가 아닌 드라마 자체의 콘텐츠와 연기력으로 승부를 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수업>을 시작으로 신예들을 계속해서 발굴해나가는 콘텐츠들이 생겨나길 기대한다.


드라마의 결말을 여러 설정으로 촬영했고, 결국 열린 결말이 대중들에게 공개되었다. ‘지수’의 핏자국을 따라간 ‘해경’은 처참한 광경을 목격한다. 그러나 그녀가 ‘지수’와 ‘규리’를 보았는지는 알 수 없다. ‘지수’가 마지막에 누군가를 응시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해경’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 ‘지수’와 ‘규리’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지만 ‘지수’의 눈빛이 바로 우리를 보기도 한다. ‘지수’가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그를 보고 있는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들은 계속해서 선택할 것이고, 그 선택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 주변에 혹은 내 안에 지수가 있었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떠한 죄의식과 선택, 책임 속에 살고 있는지 드라마는 우리에게 질문한다.


‘해경’ 캐릭터를 보면 조엘 코엔의 영화 <파고>의 주인공 ‘마지’가 생각난다. 캐릭터뿐만 아니라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파고>를 연출한 조엘 코엔의 배우자는 ‘마지’ 역을 분한 프란시스 맥도맨드다. <인간수업>의 연출을 맡으신 김진민 PD의 배우자도 ‘해경’ 역을 맡은 김여진 배우다. 각 감독들이 연기자인 배우자를 통해 영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사건을 해결하려는 정의로운 경찰, 비극적이고 안타까운 결말로 흘러가는 사건을 우리는 ‘마지’와 ‘해경’을 통해 바라본다는 점이 참 흥미롭다.

<파고> 마지, <인간수업> 해경

드라마를 보는 내내 우리도 딜레마를 겪는다. 분명 주인공의 악한 행위들을 알지만 어느새 그들이 생존하기를 바라는 아이러니함을 느낀다. 자칫 가해자와 범죄를 미화할 수 있다. 드라마에서 중요한 역할 중에 하나인 담임과 경찰 ‘해경’이 조금 더 적극적이고 정의롭게 나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세상이 정의롭고 선하게 돌아가지 않듯 어쩌면 두 인물의 애매모호함 까지도 인간의 모습이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지수와 규리의 로맨스를 불발시킴으로써 드라마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인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파멸에 집중하게 한다. 보는 이들도 주인공에게 감정적으로 동화되지 않고, 오롯이 그들의 선택과 파멸의 과정을 볼 수 있다.

    

우리 인간은 서로 배움을 주고받는다. 또한, 선택의 연속에서 스스로 책임을 지며 살아간다. 그것이 어떠한 이유에서든 악은 그 자체로 정당화할 수 없음을 드라마를 통해 배운다. 결국 죄의식의 상실은 인간을 파멸의 길로 안내한다. 앞으로 <인간수업>을 시작으로 우리 인간의 껍데기 안, 깊은 곳에 있는 이야기를 당당히 드러내고, 우리를 직관할 수 있도록 하는 작품이 지속적으로 제작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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