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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복 3시간 출근길이 15분이 되었다

강남역 출근 직장인의 짠맛과 단맛

by 카마

정적을 가르는 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새벽 6시. 강남으로 출퇴근한 지도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깜깜한 새벽에 일어나서 씻고, 간단한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집 밖으로 향한다. 지도앱에 뜨는 버스 도착예정시간을 보면서 서두른다. 지금 오는 버스를 타야 한다. 반드시!


버스 x3번 환승의 여정

내가 살던 곳은 종점과 가까운 곳이라 출근길 버스가 한적하다는 장점이 있다. 버스를 타고 혜화역에서 다른 버스로 갈아탄 다음, DDP에서 내려 다시 강남 가는 버스로 갈아타면 회사다.


어깨가 약해서 간단한 가방도 남들보다 쉽게 무거워한다. (20대 때 맥도날드에서 감튀 튀기는 일을 하다가 어깨를 좀 다쳤다) 어떻게 하면 최대한 오래 ‘앉아서’ 갈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이렇게 버스를 3번 갈아타고 가는 루트를 발견한 거다. 비몽사몽한 얼굴로 버스를 타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정신없이 졸고 있는 몇몇 사람들 틈에 앉아 한강 다리를 지나간다.


칼퇴를 해도 집에 오면

저녁 8시가 되어 있다.

강남 사무실에서 바쁘게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출발한다. 6시 정각에 땡! 하고 출발해도 집에 도착하면 7시 30분이 훌쩍 넘는다. 운이 나쁘면 8시가 다 된다.


집으로 갈 땐 지하철을 탄다. 강남에서 2호선 상행으로 타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4호선으로 갈아탄다. 붐비는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 앞에 선 아저씨가 입은 셔츠의 씨실과 날실이 엮인 모양까지도 들여다보이는 거리다. 아무리 거리를 두려 해도 좌우 양옆에서 밀려드는 인파로 어쩔 수 없이 닿게 된다. 가뜩이나 키가 작은 나는 숨이 막힌다. 손잡이라도 잡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닿지 않는다. 사람들 사이에 끼여서 버틴다.


동역사 환승통로에서는 언제부턴가 기다려서 사람들을 좀 보낸 다음 맨 끝에서 내려가는 습관이 생겼다. 우르르 밀려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혹시나 사고 날까 무서운 마음이 생겨서다. ‘후, 오늘도 안전하게 살아남았다.’ 다 내려오면 언제나 안도감이 든다.


집에 도착하니 벌써 깜깜한 밤이다. 운동을 다녀오거나 밥을 먹으면 순삭. 다시 자고 눈을 뜨면 새벽 6시.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이사를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이사를 했다. 회사 근처 월세집으로. 출근 날, 아침 8시 30분에 집에서 나왔다. 늦었다고 생각했는데 회사를 오니 오히려 시간이 남아 있었다. 출근시간을 셈해보니 고작 15분.


매일 1시간을 훌쩍 넘기던 고된 출근길이 15분이 되다니. 믿을 수 없는 속도였다. 마치 마법의 포털을 열어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느껴졌다. 퇴근길엔 집에 도착했는데도 아직 하늘엔 해가 떠 있었다. 기운도 팔팔하게 남아있었다. 이상했다.


이제 이 시간으로 뭘 할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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