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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출근하니 산뜻하구나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았던, 퍼스널 스페이스

by 카마

날씨가 좋은 봄과 가을에는 걸어서 회사에 간다. 선선한 바람이 불면 평소보다 조금 더 서둘러 나온다. 30-40분 정도면 거뜬하다.


두 팔로 휘적휘적 바람을 세며 걷는다. 아무도 걸리는 사람이 없다. 좋아하는 음악을 이어폰으로 들으면서 겨드랑이 사이로 기분 좋게 스며드는 바람을 만끽한다. 시원한 바람을 그대로 맞으면서 걸으니 스트레스도, 고민 걱정도 바람에 실려 날아가는 기분이 든다.


예전에는 팔 한 번 제대로 펴고 걸을 수 없었다. 버스에서는 손잡이를 놓치지 않으려고 꽉 붙잡고 있어야 했고, 지하철에서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움츠려 있어야 했다. 내가 팔을 뻗으면 누군가에게 꼭 부딪혔다.


이제는 내가 원하는 만큼 팔을 흔들 수 있다. 보폭을 크게 걸을 수도 있고, 천천히 걸을 수도 있다. 내 마음대로다.


소음과 부대낌에서 해방

그동안의 출근길은 온갖 소음과 냄새, 원치 않는 촉감으로 가득했다. 지하철 안 땀 냄새, 누군가의 독한 향수 냄새, 아침을 못 먹고 온 사람의 입 냄새. 옆 사람의 가방이 내 허리를 찌르고, 우산이 뒤꿈치를 파고들어 찌르고, 앞뒤에서 누군가 밀어댔다. 시끄러운 지하철 소음과 이따금 들리는 서로 싸우는 소리까지.


나도 모르게 아침마다 촉각이 곤두서고 예민해져 있던 건 어쩌면 출근길의 소음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회사까지 걸어가면서 들리는 건 새소리, 바람소리, 자동차 소리. 코로 들이마시는 건 깨끗한 공기다. 일찍 문을 연 카페에서 흘러나어는 원두 볶는 냄새, 빵집에서 나는 고소한 냄새가 기분을 좋게 만든다.


퍼스널 스페이스의 자유

무엇보다도 가장 큰 변화는 퍼스널 스페이스(내 주변 약 1m 정도. 다른 사람이 침범하면 불편을 느끼는 나만의 심리적·물리적 공간)이 생긴 것이다. 내가 걷는 길거리 속. 반경 1m 정도는 오롯이 내 공간이다. 누군가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 나만의 숨 쉴 공간.


9-6(나인 투 식스). 다들 똑같은 업무 시간 속에서 특정 아침 시간대 사람들이 급격하게 몰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복잡다단한 출근길 대중교통 속. 그 안에 선 개인은 항상 누군가와 붙어 있어야 했다. 앞사람 등짝과 채 10센티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서 버텨야 했다. 옆 사람의 어깨와 내 어깨가 계속 부딪혔다. 개인적인 공간이란 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하늘도 넓고, 길도 넓다.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온전히 나의 것이다. 심호흡을 해도, 노래를 흥얼거려도 누구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크게 기지개를 켜도 괜찮다.


출근길이 이렇게 기분 좋을 수 있다니, 처음 알게된 일이다.


출근길 올려다 본 하늘
잠깐 멈춰 서서 길가에 핀 꽃을 담는 여유 부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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