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착 걱정 없는 극한날씨 출근길
365일 맑은 날씨라면 세상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다이나믹 코리아는 그렇지 않고 매년 극한 날씨가 펼쳐진다.
특히 폭우나 폭설이 내리면, 멀리서 출퇴근하는 통근러에게는 더욱 큰 문제가 생긴다. 눈이 너무 내려서 길이 끊기거나, 폭우로 다리가 잠기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평소 1시간 30분 출근길이 2시간, 3시간으로 순식간에 늘어나는 것이다.
작년 겨울 폭설 때의 일이다. 새벽부터 눈이 펑펑 내렸다. 하지만 출근은 해야 했다. 재택근무가 어려운 업무였으니까. 지하철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람들이 넘쳐났다. 아마 모든 사람이 똑같이 생각했던 것 같다. ‘버스타긴 어려우니 지하철 타자‘
하지만 다들 똑같이 생각했던 게 문제였을까. 지하철은 오지 않았다. 아니, 오더라도 탈 수 없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지만 이미 만차. 문은 닫혔고 다음 지하철을 기다려야 했다.
플랫폼은 점점 더워졌다. 한겨울인데 땀이 났다. 사람들이 계속 쌓였다. 빠지는 사람은 없이 들어오는 사람만 있었다. 숨이 푹푹 막혔다. 목도 말랐다.
스피커에서 기계음성이 들렸다. “역내가 매우 혼잡하니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른 교통수단? 없는데. 버스도 눈 때문에 느려서 못 타고. 강남까지 택시는 잡을 수나 있나.
오랜 기다림 끝에 겨우 탄 지하철도 거북이와 다를 게 없었고, 각 역마다 사람들이 계속 밀려들었다. 숨쉬기가 힘들었다.
극한 날씨가 되면 가까운 곳에 집이 있다는 게 무척이나 감사해진다. 무엇보다도 '선택지'가 있다는 것이 큰 안심이 된다. 지하철이 안 오면 버스를 타면 되고, 버스가 안 되면 걸어서라도 갈 수 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그냥 지하철에서 나와서 걸어서 집으로 갔다. 비가 세게 내리고 있었지만 우산을 쓰고 걸었다. 평소보다 시간도 더 걸리고 바짓단이 흠뻑 젖긴 했지만 무사히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 꿉꿉한 지하철 플랫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정 안 되면 걸어가면 돼’라는 마지막 카드가 있다는 것. 이게 얼마나 큰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지. 지하철 외엔 대안이 없는 장거리 출근 때는 그런 여유가 없었다. 무조건 참고 기다려야 했다.
지금은 극한 날씨에도 비교적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대안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러다가 문득, 근본적인 물음에 도달한다. 출퇴근이란 대체 뭐길래. 우리는 이토록 험난한 날씨를 뚫어내고 눈과 비를 헤치우며 회사로 향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