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sm증후군과 새로운 시작

계기

by 노력하는 행아

'당신의 단점은 무엇입니까?'


취업 자기소개서를 쓸 때 가장 난감했던 질문이다. 솔직하게 내 단점을 늘어놓자니 떨어지는 지름길로 가는 것 같았고, 적당한 걸 적자니 너무 뻔하고 가식적인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연이은 자소서 탈락으로 쫄보가 된 나는 '너무 꼼꼼한 것'이 문제라며 후자를 선택했었다. 때만 해도 큰 단점은 없는 사람이라고 자평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생활에 변화가 생기며 진정한 단점을 찾아내었다.


바로 나의 개복치 같은 면이다. 개복치는 '복어목 개복치과의 바닷물고기'로 평균 몸무게가 1,000kg에 달하는 거대한 생명체이다. 나는 인간이고, 몸무게는 때때로 증감이 있지만 49kg 안팎인데 개복치라니? 개복치에 대한 얘기를 좀 더 해보자.


휴대폰 게임 중에 '살아남아라! 개복치!'라는 것이 있다. 제목 그대로 개복치가 오래 살아남으면 되는 게임이다. 언뜻 쉬워 보이지만 실상 그렇지 않다. 이놈의 개복치는 자기 지느러미만한 물고기랑 마주쳐도 죽고, 수온이 갑자기 바뀌어도 죽고, 이유도 모르겠는데 픽 죽는다. 한 마디로 개복치는 참 심신이 미약한 녀석인 것이다. 이 게임으로 개복치의 특징이 유명해져서 잘 놀라거나 심약한 사람을 '개복치 같다.'라고 빗대어 표현하게 되었다.


누구나 성격상 약한 부분이 있는데 그걸 단점이라고까지 할 수 있느냐라고 물으면 나는 정도가 심한 인간이라고 답하겠다. 개복치처럼 모든 것에 민감하고 바로 쓰러질 정도는 아니지만 특정 상황(특히 상대가 내 자존감에 상처를 입힐 만한 일)이 발생하면 내 머릿속은 순식간에 복잡해진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 흐름에 몸을 맡기면 시간은 어느 새 벌써 새벽 3시가 되어 있다.


얼마 전 직장에서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 일을 맡으리라고 예상하지 못해서 당황스러웠고, 떠맡은 것 같은 상황이 서러웠다. 하지만 출근해서 그런 티를 내기엔 자존심이 용납치 않아 사회생활용 가면을 겨우 뒤집어 쓰고 하루를 어찌어찌 버티어냈다. 결과 우울한 파김치가 되어 퇴근을 했다. 나만의 공간에 돌아왔으니 다 잊고 싶었는데....그게 잘 안되었다. 예능 프로를 보며 깔깔대다가도 다시 시무룩해지고, 자려고 누웠는데 고민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ASMR도 귀에 안 들어오고 양도 세다가 짜증나서 던져버렸다. 피곤해 죽겠는데 정신은 잠들지 못하는 날이었다. 정말이지 바닥에 머리만 대면 잠이 든다는 친구들이 제일 부러웠다.


그러던 중 'PESM 증후군'에 대한 포스팅을 보았다. 'Personnes Encombrees de Surefficience Mentale' 한국어로는 '정신적 과잉 활동 증후군'이라는 것인데 내가 여기에 해당되는 것 같았다. 이런 개념이 등장할 정도로 비슷한 사람들이 있다니! 좀 덜 외로워졌다. 게다가 주창자에 의하면 순기능도 있단다. PESM 증후군을 지닌 사람들은 생각이 많은 만큼 더욱 다각적으로 사고할 수 있으며 여러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고 도전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한다고 한다. 골치덩이로만 생각했는데 실상 내 성장의 자양분이었던 것이다.


다만 어쨌든 이러한 기질로 육체적 정신적 피로감을 느끼는 것 또한 사실이므로 스스로 조절할 필요는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창자인 프랑스의 심리치료사는 글을 써서 생각을 덜어낼 것을 권했고, 나는 결국 몇 년 전부터 가입만 하고 미뤄두었던 브런치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 글은 내가 왜 브런치에 기어코 글을 올리게 되었는지에 대한 짧은 고백록이다. 시작은 참으로 하찮지만 그 하찮음도 즐겁게 기록해보려고 한다. 그럼.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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