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본 학교는 여전히 삭막했다. 창문마다 창살이 쳐져 있는 모습은 마치 '감옥'을 연상시켰다. 행아는 살기 위해 뛰쳐나왔던 감옥으로 다시 발을 내디뎠다.
면접장에는 4명의 면접관이 있었다. 그중 3명의 선생님께 학창 시절 수업을 받은 적이 있었다. 가르침을 주신 은사님들 앞에서 가진 재주를 뽐내보려니 평소보다 더 긴장되었다. 앞에 학생들이 있는 상황을 가정하고 진행하는 수업 실연이 유난히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별 실수 없이 실연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그때까지 행아가 경험했던 것 중에 제일 어려웠던 면접이 시작되었다. 수업 내용이나 교수법에 대한 평이한 것들 사이로 "남자친구 있습니까?"라는 질문이 들어왔다.
취업과 기간제 채용을 준비하며 행아는 여러 차례 다양한 면접을 치렀고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다. 상대에게 호감을 줄 만한 목소리와 표정을 만들어내는 데 능란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뽑아 놓은 예상 질문 어디에도 없는 것이었고 당황한 행아의 얼굴은 순간 굳어졌다.
행아에게는 대학교 2학년 때부터 교제한 남자친구가 있었고 어디 가서 그걸 숨기거나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사실을 기간제 채용 면접 자리에서 말해야 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가까스로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그렇다고 대답하자 "결혼 생각은 있나요? 그렇다면 육아휴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라는 질문이 연달아 들어왔다.
행아는 결혼은 당장 생각하는 과업이 아니며 만약 결혼을 한다면 육아휴직은 부모 모두에게 주어져야 하는 당연한 권리라고 얘기했다. 소신대로 대답했지만 그래도 행아는 불쾌했다. 상황에 맞지 않는 무례한 질문이 불쾌했고, 질문자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선을 본능적으로 찾는 스스로의 비굴함이 불쾌했다. 하지만 그때 행아는 힘도 깡도 없었다.
선 넘는 이 질문은 이사장의 것이었다. 그는 아마 교사가 스스로의 인생보다 학교의 사정을 우선시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행아의 대답은 그의 마음에 차지 않았을 것이다. 인자한 입매와 달리 눈은 물정 모르는 어린애를 보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떨어질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결국은 붙었다. 돌고 돌아 예상하지 못한 곳에 행아는 잠시나마 자신의 둥지를 틀게 되었다. 1년짜리 기간제에게도 충성심을 요구하는 이곳에서 행아는 학생 때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나게 된다.
여기가 바로 문제적 교사들의 시작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