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보내고 다시금 기억하는 것
끝이 정해진 길을 걷는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면 어떤 기분일까. 사실 우리 모두가 마지막이 있는 길을 가고 있다. 하지만 솔직히 아직은 모르겠다 지금 나의 나이 안에서 보이는 진짜 ‘마지막’이란 실감이 나지도 이해가 되지도 않은 단어이다. 죽음은 현실감이 없는 남의 이야기일 뿐인데 나의 이야기가 아닌 남의 이야기로 마주친다 하더라도 정말 끝, 소멸한다는 것 묘하고도 처절하게 슬픈 일인 것 같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몇 년 전쯤부터 감정에 가성비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슬플 가치가 있는 것인지 생각하는 나의 계산적인 습관은 그동안의 경험이 함부로 감정 소모를 하지 말라고 경고할 때 나온다 (이것 또한 체력의 문제인가). 근데 그런 나에게 그런 생각조차 안 들게 반응이 나오는 경우는, 누군가 아픈 소식을 듣거나, 영면으로 들어설 때이다. 그것이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말이다. 정도와 당사자와의 친밀감에 따라 눈물이 날 때도 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하염없이 무력감이 들기도 한다. 단지 그 사람이 아픔을 그만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 나 자신을 지나고 발견할 때마다 아직 나는 무언가를 재지 않고 공감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구나 안도하기도 한다.
메마른 감정이 촉촉 해지는 건 다행이면서도, 그 감정의 임계치를 넘어서야 비로소 나온다. 나는 감정을 소모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싶지 않다 (너무 팍팍하지 않은가). 그래서 시간이고 뭐고 오는 마음들을 충분히 느낄 때까지 세상이 나를 하염없이 기다려줬으면 좋겠다.
야속하게도 여전히 시간은 흐르고 엄마 아빠가 늙어가는 것처럼 나에게도 그 끝은 분명 오고 있다. 성장과 늙음의 경계가 어느 순간부터 모호해지는데, 아직은 성장 쪽이 훨씬 더 명확해 보인다. 성장은 해야 한다. 내 어린 선택들이 늙어가는 부모님의 주름살을 더 깊게 파이게 해서는 안 되니 말이다.
사람이 성장하기 위해선 느껴야 하는 아픔들이 있다고 한다. 근육도 크려면, 부하를 내고 회복을 반복해야 한다 들었다. 얼마 전 내 마음에 깊숙이 들어온 가사가 있다.
성장하지 않으면 성장통도 그냥 아픔 - 에픽하이 '빈차' 중
https://www.youtube.com/watch?v=pTD9Jysi3_g&ab_channel=EPIKHIGH
성장을 안 하면 아픔이 '낭비'된다는 것이다. 성장이란 도대체 무엇이기에, 왜 아픈 걸 알면서도 우리는 그 성장이란 것을 해야 할까. 이 모든 건 결국 무에 가까워지는 일임을 알면서도.
완숙에 가까워질수록 성장과 늙음의 경계가 희미해진다. 더욱더 큰 아픔이 계속이고 또 찾아올 수 있음을 알면서도 우리는 왜 도전을 하고 그것을 겪어내서 기꺼이 성장으로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일까. 굳이 어제보다 더 괜찮은 모습의 오늘이 되어보겠다고.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을 누군가는 이기적이라고들 한다. 이름도 붙여준다 피터팬 증후군, 콤플렉스... 치료되어야 하는 생각들이라 말한다. 타협하고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수월해질 때 어른에 가까워졌다 생각하는데, 그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인 것 같다. 마음이 멍들이 들어섰다 없어지기를 반복 깊게 할퀴어 영원한 상처로 자리한 것들도 있다.
그것들을 나는 털어낼 수 있을까. 그러려 또 이 아픈 성장을 감수하는 것일까. 끝이 있는 이 길을 그런 거 없다며 자주 잊어버리고 산다. 어쩌면 그래서 순간 이것들이 무한할 거라 착각도 했었나 보다.
https://www.youtube.com/watch?v=96Ofu5GgELY&ab_channel=i%27mperfect%3Ajo
이 글을 쓰고 6년 후 돌아보며 드는 생각은 비록 내 육체는 언젠간 늙을지언정, 어쩌면 내 마음은 영원히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저 내가 고여있지 않으면, 그러다 보면 부가적으로 성장이 돼있지 않을까. 또 얼마나 단단해지려고 따갑지만, 가끔 산뜻한 날들이 나를 아직은 잘 일으켜 주고 있다.
확실한 끝이 있는 이 여정이 그래도 괜찮은 건, 그 끝의 모양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끝의 상태, 그 도착점이 나를 정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으로 마무리하느냐가 아니다. 끝은 그냥 끝일뿐 성장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짜릿하다).
내가 지나가고 있는 길이 그래도 꽤 재밌고 멋지기에 이렇게 하루 살고 내일을 또 기대해 본다. 그저 오늘도 이 길의 풍경들을 찬찬히 잘 음미하며 가능한 오래 잘 걸어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