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결핍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를 읽고
최근에 '결핍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센딜 멀레이너선, 엘다 샤퍼)라는 결핍학 관련 책을 읽고, 내 삶에서 내 뇌와 마음 에너지('대역폭'이라 책에서 표현하였다)를 쓰고 있는 것들이 뭔지 정리해 봤다.
일, 커리어 구체화, 대학원, 앱 제작 사이드, 가족 건강, 인간관계, 재정 운용 및 관리...
많은 토끼들이지만 어느 하나 놓치고 싶지 않다. 하지만 하나하나 여간 내 신경과 마음을 쓰게 하는 일들이 아니다. 심지어 가능한 모든 곳에서 근사하게 해내고 싶다.
다양한 것들이 촘촘히 학교 스케줄처럼 짜져 있을 때는 분명 장점이 있다. 선택 에너지를 줄이고, 집중도와 가능성을 높여 생산성을 높여주기도 한다. '시간 결핍'이 새로운 방법을 찾아주기도 하고, 지금 아니면 못할 것을 알아 미룸을 덜하게 해주기도 한다. 특히나 조금이라도 시간이 뜨면 생각들이 찾아와 놔주지 않는 나는 오히려 이 방법이 제일 잘 먹힌다 생각한 적이 있다.
그래도 실행 안에 들어와 있을 때는 잘 모르니 다시 한 발자국 떨어져 큰 그림을 봤을 때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지 않은지 가끔 확인해줘야 한다.
예를 들어 막연히 더 좋은 생산성보다는 내가 즐겁고 행복해 따스함을 나누는 것이 더 중요한데, 여유가 없으면 그 마음들이 쉽게 무너져 내린다. 까칠한 내 모습은 그때도 그리고 후에 다시 생각할 때도 밉다. 그런 날들이 쌓이면 결국 그게 나인 것이다.
나의 결핍인 이 '시간'을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현명하게 다룰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면 현대인은 새삼 체력도 정신적인 파워들도 참 대단하다. 이 할 것들로 가득한 세상을 잘 버텨내고 있으니 말이다. '바쁘다 바빠' 하면서 일 많은 일들을 그래도 하나씩 쳐낸다. 나도 내가 하는 일들을 하나씩 천천히 수평을 유지한 채 아주 조심스럽고도 정교하게 젠가 하듯 그릇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지금의 촘촘한 스케줄이 부담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리스크 관리가 품목당 지수함수꼴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또 심지어 예상 가능한 변수들과 허들을 만났을 때 가끔 너무 무섭기도 하다.
이거 이러다 다 우후죽순 무너져 내리는 거 아니야?
복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무한하지 않기 때문에 어쩔 때는 타협하고 다음으로 가야 한다. 잘하고 싶은 나는 진심이 마음 아프게 하는 순간들이다. 사람들은 어떻게 자기 자식까지 돌보면서 일을 할까. 현대인들의 대역폭도 진화의 일부였던 것일까?
변화무쌍한 세상과 나에 패닉 하고 싶지 않다. 무너진 일정에 대응 못해 시간 결핍감을 더 확대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사고의 유연함을 가져보고자 했다. 유연한 사고를 적재적소로 하기 위해선 여러 능력들이 고려된다고 생각하는데, 아직도 더 유연해지기 위해 이 목록들은 늘어나고 있지만 크게 세 가지로 좁혀보자면:
첫째, 경험적 안정감 - 꼭 그렇게 되지 않아도 큰일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힘(뎃츠 오케이). 계획이 틀어져도, 일정이 밀려도,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도 세상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체득하는 것. 이 경험치가 쌓일수록 변화 앞에서 덜 흔들린다.
둘째, 현실 인식 능력 - 현 상황을 그대로 해석 없이 정확히 파악하는 것. 자존감과 메타인지가 여기에 크게 작용한다.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불가능한지, 어디서 막히고 있는지를 있는 그대로 보는 능력. 감정에 휩쓸리거나 과도한 해석 없이 팩트를 파악하는 것.
셋째, 심리적·물리적 여유 공간 확보 - 이것이 최근에 깨달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촘촘한 일정 사이사이에 의도적으로 만들어두는 빈 공간. 이 여유가 있어야 변화에 따라 자유롭게 구부러질 수 있다.
이들 중 세 번째는 그래도 내가 비교적 단기간에 노력으로 가져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고 싶은 것이 많으면 내 앞에 세워진 것들이 촘촘할 수밖에 없다. 주어진 시간과 내 에너지는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어떻게든 잘 테트리스 해봐야 한다. 빽빽하게 세워진 것들을 또 성실히 이수해야 다음에 밀리는 것이 없다.
밀려버리면, 뒤는 더 촘촘해진다. 리스크가 리스크를 키우는 꼴이다. 그래서 여유를 더더욱 잃어버리고 정신없이 하나 다음 하나 이렇게 가다 변수를 맞닥뜨리면, 마치 도미노처럼 다시 뒤에 것들을 세워야 하기에 무척 곤란해진다.
변수는 참 많고, 상황도 환경도 그렇지만 나 스스로도 그렇다. 아파버리면 짜증과 불안이 그렇게 몰려온다. 건강해도 내 마음이 매일 같지도 않다. 이런 변수들은 이제는 예상안 범주에 든다. 여기서 여유 공간, '버퍼'는 리스크 관리를 용이하게 해 준다.
그래, 유연함은 여유, 그 공간에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80%다. 그 이상은 '만족'으로 나의 성공을 다시 정의하기로 했다. 완성도에 대한 부담을 줄이면서 일차로 심리적 여유를 줬다. 시간은 '많다'가 아닌 '있다'라고 말하며 나를 안심시켰다. 그래, 시간은 있고, 거기서 내 최선이 성공이다. '시간이 없어서', '정신이 없다' 같은 말들도 좀 더 조심해서 사용하기로 했다.
시간은 있다. 지금 그냥 가장 중요한 것을 하면 된다.
아프면 멈춰서 회복할 수 있도록 그러지 않을 때 부단히 해 버퍼 시간을 남겨놓는다. 책에서 지금의 여유는 미래의 결핍을 의미한다고 했지만, 나는 오히려 지금의 여유가 미래의 안정성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은 양을 줄이고, 좀 더 부담이 덜하게 나의 시작 자체를 쉽게 만들어 조금이라도 해본다.
하고 싶은 것들을 계속하려면, 그러면서 중요한 것을 잃고 싶지 않으면, 할 수 있을 때 부단히 해놔야 한다. 그러지 않았으면 아니 못했다면 깔끔히 인정하고 포기하자.
이런 심리적, 물리적 공간을 주기로 하기 전 처음에는 일단 잔가지를 쳐 관리 품목 자체를 낮춰보려고도 했다. 그것도 틀린 방법은 아니라 생각한다. 모든 것이 휘몰아쳐 너무 감당이 안 될 때는 지금 여기서 폭풍이 지나가고 내 모든 것이 차분하게 가라앉을 때까지 유지하거나 줄여야 하기도 한다.
나는 지금은 단칼에 그 가지들을 잘라낼 상황도 그럴 마음도 없으니, 내 물줄기의 방향을 재정비하는 정도로 해보기로 했다. 나의 선택과 집중은,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고, 실행의 빈도와 강도를 거기에 맞춰서 하는 것이다.
아직은 정보를 모으는 시기니 나의 욕심에 좀 져주기로 했다.
더 잘하고 싶어서 위해 좀 더 챙겨서 공간을 넣어주기로 했다. 일요일을 나만의 안식일로 정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심지어 주어진 시간이 줄어 더 압박을 느끼기도 했다.
안정적으로 지속하고 싶어 생산성에 대해 생각하는데, 결국 진짜 생산성은 모든 일정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것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변화에도 중심을 잃지 않고 유연하게 대응하는 능력에 있는 것 같다. 언젠간 무너진 일정을 보며 절망하는 대신, "아,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구나"라고 빠르게 받아들이고 다음 수를 유연하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근래 한 선택 중 가장 용기 있는 결정이었던 것 같다. 이 버퍼가 어쩌면 나를 더 유연하게 만들어 더 좋은 선택들을 내릴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