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좀 더 명확하게 알게 하는 하는 감정
최근 타인의 성취를 목격하며 마주한 감정은 여러 고민 끝에 '부러움'으로 종결 내렸다. 축하의 마음과 동시에 느껴지는 씁쓸함을 솔직히 인정하고, 이를 질투나 시기와는 구분되는 '부러움'으로 정의함으로써 나의 마음을 좀 더 소중히 바라봐주기로 했다. 성취 지향적 성향과 또 빠른 성취를 원하는 나의 마음이 이러한 감정의 근원임을 다시 한번 조망했다.
부러움이란 두리뭉실한 감정 안에 다양한 감정들이 있는 듯하여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었다. 관련 논문들 중 특히 더 흥미로웠던 것은 한국적 '무해한 선망'에 대한 연구였다. 한국 정서의 '부러움'은 종종 영어의 'envy' 와는 다른 색깔의 느낌을 받았는데, 영어권에서 생활하는 나는 내가 느끼는 부러움을 완벽하게 번역하는데 곤욕이었다.
선망(envy)은 우리 자신의 '안녕'이 다른 사람의 '안녕'에 의해 빛을 잃게 되는 것을 꺼려하는 마음. 이는 우리의 행복을 판단하는 기준이 내재적 가치가 아닌 타인과의 비교에 있기 때문. (Kant(1797/1996))
한국적 맥락의 부러움은 '무해한 선망'으로서의 한국 사회 특유의 정서적 특징. 집합주의적 가치와 상호의존적 자아개념을 가진 동양문화권의 특성상, 타인과의 관계와 조화, 집단의 목표를 중시하는 문화적 배경에서 비롯된다.
-차운아. (2009). 부러움: 한국의 "무해한 선망". 한국심리학회지 : 사회 및 성격, 23(2), 171-189.
부러움은 특히 상향 사회비교 상황에서 경험하는 감정으로, 자신이 갖고 싶으나 소유하지 못한 것을 타인이 가진 상황에서 발생한다. 부끄러움과 같이 사회적 감정중 하나인데, 강도와 방향, 결합하는 다른 감정에 따라 질투, 시기, 열등감, 때로는 분노까지 다양한 형태로 다가온다.
타인과 나의 대조상황에 이상한 감정들이 들 때마다 종종 타이틀 선정에서 시간이 걸리는데, 가끔은 그냥 얼렁뚱땅 오 내가 부러운가 보다 하고 가볍게 지나가는 게 건강하게 느껴진다. 곱씹다 보면 의미 없이 깊어지고 기분이 나빠지는 감정 중 하나다.
오, 내가 부럽구나! 하고 그냥 지나가면 가벼워진다.
그럼 이 감정이 나의 생존에 어떤 도움이 될까 고민해 봤다. 부러움은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명확히 해주는 신호이다. 이 감정을 통해 나는,
진정한 욕구와 목표를 파악할 수 있고,
통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구분할 수 있고,
구체적인 행동과 실행으로 이어지게 할 수 있으며,
조금 연장된 지속 동기를 받는다.
부러움을 "나는 이것을 원하고 그것을 아직 가지고 있지 않다"라는 감정의 신호로 받아들인다. 내가 이게 아직은 없구나, 그리고, 어쩌면 나는 이것을 원하는구나. 나보다 먼저 원하는 것을 가지거나 이룬 사람들의 과정을 폄하하고 싶지 않다 보이지 않은 과정들을 나는 모를 테니까. 나를 잘 돌보는 시기는 그 축하가 좀 더 쉬워지기도 한다. 내가 생각한 내가 꽤 괜찮은 모습이니 말이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지 알아차리는데 시간이 꽤 걸릴 때가 있다. 그래서 요즘은, 왜 내가 이것을 원하지, 진정으로 원하는가를 구분하는데 더 집중하려 한다.
부러움은 문뜩 또 찾아올 것이다. 여기에 새벽은 아주 취약한 시간이다. 하지만 그 부러움과 같이 나는 타인의 성취를 동시에 축하할 수 있다 (야 너도 축하해). 그들에게도 그들만의 시간과 노력, 때로는 운과 놓침이 있었을 것이라 긍정적 비약을 해본다. 그리고 나에게도 성취의 순간들이 있었음을 기억하자
어느 순간 그 마음이 자라 열등감으로 덧날 때도 있지만, 그 비릿한 감정은 자주 나의 부지런하지 못함에서 온다. 따라서 나의 부단함은 이유 없는 바쁨이 아니라, 그런 마음이 자리하는 순간을 조금은 '덜' 자주 경험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부러움은 또다시 현재에 대한 감사를 할 때라는 것을 기억하자. 오늘 하루를 돌아보며 나에게 정말 중요한 것들을 돌아볼 때다.
내 몸과 마음이 건강한가
내 노력으로 일군 하루, 먹을 음식, 따뜻한 잠자리가 있는가
가족들이 대체로 무탈한가
나는 이걸로 행복한 사람 아니었던가. 필요 없는 것까지 끌어다 갖고 싶다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필요 없는 것도 갖고 싶게 만든 사회에서 살기에 잊어버리기 참 쉽다.
결국 타자와 나는 다른 객체다. 애초에 바나나와 사과처럼 다른 객체는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같은 바나나들이라 설령 비슷해 보일지라도 이 세상에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나는 애초에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대상임을 오늘도 한번 더 기억하려 한다.
그래서 부러움은 내가 원하는 것을 좀 더 명확하게 해주는 도구, 나 내면의 돋보기쯤이라고 해두고 나를 살짝 위로해 준다 (네가 못난 게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