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안 간 이야기
나는 고등학교에 안 간 것이 아니라 못 간 것이었다. 나 자신을 꾸미기 위해 고등학교에 안 갔다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사실 나는 고등학교 입시에서 실패한 사람이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 내가 살던 동네는 아직 고등학교 비평준화지역에 속해서 고교입시가 있었다. 초중학교 때 공부를 잘하는 편이던 나는 외고진학을 희망했으나 부모님의 반대로 좌절되고, 동네에서 그나마 제일 좋은 학교에 지원하기로 했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 제일 좋은 학교라는 곳이 정원이 적어서, 지원자가 지나치게 많을 경우, 나름 공부를 잘한다던 아이들이 무수히 떨어지게 된다. 그러면 안타깝게도 그들은 고교재수생이 되거나 실업계 혹은 성적이 저조한 아이들이 진학하는 후기입시학교로 가게 되는데, 그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랍시고 '입학전사정제'라는 걸 만들어놓은 것이다. 즉, 원서를 받기 전에 각 학교에 공문을 보내 A중학교는 몇 명, B중학교는 몇 명, 이런 식으로 원서 쓸 애들을 미리 정해달라고 하는 것이다. 거기에 내 이름이 들어갔다. 못 들어간 아이들은 당연히 난리법석이 일었지만, 떨어져서 재수하느니 미리 알게 된 게 어디냐는 반응이 더 많았다.
그중 나와 친했고 상위권 그룹 중에서 묘하게 중위권을 왔다 갔다 했던 라이벌이기도 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의 부모님은 결과에 대해 도저히 납득을 못하셨는지 학교에 와서 한바탕 난리를 치셨고, 입시결과에 대해서 학교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시고 나서야 원서를 쓰셨다. 솔직히 나나 그 친구나 성적은 거기서 거기였으니, 그 친구가 가장 납득하지 못했던 멤버는 아마 나였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날 이후로 그 친구와 나는 사이가 조금 어색해졌다.
재미있는 것이, 친구들까지도 패가 갈렸다. 나를 지지하는 파와 그 친구를 지지하는 파. 내가 보기엔 나를 지지하는 친구들이 더 많았다. 그 친구는 얼굴도 예쁘고 남자들에게 인기도 좋아, 어쩌면 그 부분에서 반감을 샀으리라. 나는 안 예쁘고 남자들에게 인기는 없으나 친구들에게는 인기가 있는 편이었다. 다들 나에게, 저 친구가 만약 그 학교에 간다 한들, 부모님의 힘으로 너를 누르고 갔는데 학교 생활이 순탄하겠냐, 아니 그전에 쟤는 합격하지 못할 것, 이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없었다. 입시 자체는 어차피 문제의 답을 다 썼느냐 못 썼느냐에서 갈릴 텐데, 내가 떨어진다면 그만큼 실력이 안 되었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나는 입시를 잘 치러낼 자신이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엉뚱한 말을 입에 담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안 가면 되잖아. 검정고시를 보면 되잖아." 말은 주문과도 같아서, 정말 나는 그렇게 되어버렸다. 물론 공부도 안 했다. 공부 열심히 하고 입시를 실패하는 것보다, 공부 안 하고 실패하는 모양새가 어쩌면 더 당연하지 않은가 싶어, 입시 한 달쯤 전부터 독서실에 다니며, 독서실에서 잠만 잤다. 그때 읽은 만화책이 산더미 같다. 같은 독서실에 다닌 친구들은 내가 그러고 있는 모양을 다 보았다. 담임선생님에게 일러바쳤다. 그리고 담임선생님은 나를 혼내다 못해 내 친구들을 다그쳤다. "쟤 공부 좀 시켜."라고 했단다. 그 말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입시날 아침부터 사랑니가 잇몸을 뚫고 나와 아주 아팠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도시락으로 죽을 만들어 주셨다. 입시를 포기한 나는 입시장에서 나는 긴장감이 하나도 없었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친구들과는 달리, 나는 죽을 후루룩 마시며 신나게 떠들어댔던 기억도 난다. 시험이 끝나고 학교에 돌아가 선생님을 만났다. 벌써 답이 나왔는지 다들 답을 맞혀보는데, 나는 선생님께 "망했어요! 떨어질 거예요!"라고 했다가 등짝을 세게 맞았다. 너 정말 그딴 식으로 살 거냐고 화를 내셨던 것 같다. 무서운 표정만 기억이 난다. 그리고 집에 돌아갔다. 엄마가 시험은 잘 봤냐고 물으시는데 뭐라고 대답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나는 비스듬히 누워 티브이를 보았다. 전화벨이 울리고 엄마가 받았다. 네, 네, 아니요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하고 끊더니 한숨을 쉬는 엄마. "너 떨어졌대." 하고 엄마는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제야 내가 저지른 짓이 얼마나 말도 안 되고 심각한 짓이었는지를 깨달았다. 밤에 아빠가 돌아와서 엄마와 방에서 심각하게 얘기를 나누시는데, 나는 할 말이 없어서 내 방에서 만화책을 보다가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밤에 아빠가 우셨다고 했다. 엄마는 아빠가 우는 모습을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셨다고 했다. 아빠가 나중에 나에게 말해주기를, 본인이 공교육에 종사하는 교육자인데, 딸이 공교육을 거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자기 딸도 제대로 인도하지 못한 양반이라는 소릴 들을 것이 겁이 났다고. 누가 누구를 가르치냐는 소릴 들을까 무서웠다고. 나는 그날 이후 삼 년간, 친인척과 아빠 친구분들, 지인분들께 "그냥 평범한 여고생"으로 살았다.
물론 실제로는 아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대학이나 일찍 가 보려고 검정고시를 빨리 패스하고 수능을 보았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못했다. 결국 나는 내 또래와 같은 나이에 대학에 진학했다.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음으로 인해 나에게 결여된 부분이 많다는 사실은 대학교에서 처음 깨달았다. 결과적으로는 고등학교를 안 다닌 보상인지 어떤 건지, 학교를 아주 오래오래 다니게 되었다.
부모님은 아직도 말하고 계신다. "너는 그때 우리 가슴에 대못을 박았어. 교육자 부모님 얼굴에 똥칠을 했어." 그래서 내가 이렇게 오래오래 교육기관에서 구르고 있는가 보다.
그때 나를 제치고 그 학교에 들어간 내 친구와는, 간혹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하거나 근황을 묻거나(요즘은 어느 학교의 킹카랑 누구를 놓고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는 둥, 여전히 미모로 인한 인기를 자랑하곤 했다) 그리 껄끄러운 사이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아이가 국가유공자자녀 특례입학전형으로 모 명문여대에 합격했다는 소리를 듣고, 왜인지 모를 엄청난 배신감에 휩싸여버렸다. 고등학교도 아버지를 업고, 대학교도 아버지를 업고.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었지만, 사실이라고 믿는 것이 아마 내 정신엔 이로웠던 모양이다. 그때부터 나는 그 아이와 연락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그녀는 학교에서도 미모로 유명세를 떨쳤고 결국 여배우가 되었다. 몇 년 전에 돈 많은 사장님과 결혼했다고 한다.
인생극장이란 티브이 방송이 생각난다. 그때 그 친구가 그냥 보통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내가 그 학교에 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여배우가 되어 사장님 와이프가 되지는 않았겠지. 그 친구가 해외 유학을 떠나 박사과정까지 밟는 일도 왠지 없었을 것 같다. 다만, 그녀의 삶도 지금의 내 삶도 흘러 흘러 이렇게 된 것이지 그때를 탓하기엔 너무 커다랗고 무거운 것이어서, 이제는 그저 추억할 뿐이다.
이제는 솔직하게 말하고 솔직하게 추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