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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우울하던 시절에 끄적였던 글 하나. 지금은 상황도 생각도 많이 변했다.
빛좋은 개살구라는 말 만큼 나한테 잘 어울리는 말이 달리 없는 것 같다. 가끔은 내가 나 자신에 대해 되새김질하다가 쓴웃음을 푹푹 터트리곤 한다. 한국에서 이름만 대면 누구나 끄덕이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외국에서도 그 나라에서 세손가락안에 드는 명문대의 대학원에 입학, 석사를 수료하고 박사과정에 재학중. 간혹 여행을 다니며 취미를 즐기며, 술을 즐기는 사람. 내가 모 SNS에 올린 사진들과 내 겉보기정보만 취합해보면 나는 남들의 부러움이나 질투를 살 만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 실제로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런 모습들만 보고, 너의 멋진 인생이 부럽다던가, 좋아보인다던가 하는 속없는 소릴 한다. 당신들이 부러워하는 이 멋진 인생, 하루에 열번씩 놓았다 들었다 한다면, 배부른 소리 한다고 비난받겠지. 그렇다고 내가 모든 것을 다 말할 필요는 없는거 아닌가.
할 줄 아는 것이 이나라 언어 뿐이었다. 줄곧.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는 나이. 집 경제 사정도 매우 좋지 못한 상태. 돌아가서 취직을 하고 싶어도, 짐이 되면 되었지 보탬이 될 리가 없다. 그렇다고 내가 공장에 취직하면 참 효도하는 짓이다. 나는 상관없지만 부모님이 뒷목잡으실 듯. 이런 집에서 십원 한푼 받을 수 있겠나. 생활비 학비 벌어서 산지 십년 가까이 되어간다. 남들은 공부만해도 논문이 나올까 말까 하는데 나는 하루의 반 이상을 아르바이트에 쓰고 남는 시간에 학교에 가고 그리고 남는 시간에 잠을 잔다.
자수성가 하려니 참 앞길이 멀고도 험하다. 그만두네 마네 매일매일 고민한다. 내나라말도 아닌 말로 공부하는게 쉽지가 않다. 나는 머리가 그리 뛰어난 편도 아니다. 노력파도 아니다. 게을러 터저서 틈만 나면 먹고 자려고 하는 인간이다. 학자가 될 리 만무하다. 요즘의 내 목표는 그냥 박사과정 수료다. 속물처럼 여기서 수료증만 받아서 한국 어디 대학에 내밀면 보따리강사라도 써주지 않을까 하는 알량한 속셈을 품고 있다. 다행히 내가 공부하는 분야는 한국에 박사들이 별로 없단다. 과정수료라도 어디 가서 명함 내밀 정도는 될런지도. 여행은 빚내서 간다. 다행히도 내 주변에는 좋은 친구들이 많아서, 내가 이렇게 정신적으로 망가져가는 모습을 보더니 돈 빌려줄테니 어디 가서 기분전환좀 하고 오라고 그러더라. 정말 나는 그들의 격려가 아니었더라면, 여행을 갈 수 없었다면 정신이 이상해졌을 지도 모른다. 내 평생에 없을 줄 알았던 정신병 증세를 경험했다. 공황장애. 천장이 내려 앉는 줄 알았다. 밖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뛰쳐들어오는 줄 알았다. 도망가려고 베란다로 뛰어내리려 했다. 내 행동을 제어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던 그날 밤, 그게 공황장애의 한 패턴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리고 며칠간 식욕장애와 수면장애가 찾아왔다.
이 모든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으니 입을 다물고 있지만, 가끔 질투섞인 발언과 비난을 들을때면 내 상태 홍보 ucc라도 제작해서 배포해야 하나, 부글부글 끓는다. 그냥 참는다. 그래서 요즘은 SNS도 자제하는 중이다. 그나마 여긴 아무도 모르니까. 임금님귀 당나귀귀 외치듯 질러대본다.
여기 쓰는 이야기들이 모두 다 지어낸 소설이라 생각해준다면 차라리 감사한 일이다.
아마 2015년쯤의 글이 아니었나 싶다.
공황장애에 우울증에 다양한 증상들에 시달리며 몇 번을 죽네 사네 하다가 결국엔 논문을 냈고 학위도 받았다. 다시는 공부 따윈 거들떠도 보지 않겠다던 결심은 몇 년간의 직장생활을 거쳐 무너져버렸고, 요새는 또 논문을 쓰고 있다. 우울이란 조용히 사람을 죽이는 병이라는 것을 지나고 나서 생각하게 되었다. 아무도 날 도와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빠져, 극심한 고독에 괴로워했던 것 같다. 돌이켜보니 항상 나에겐 나를 응원해주는 영원한 나의 편인 가족들과, 그리고 친구들이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혼자 몸부림치며 괴로워했었던 것이다. 우울이란 그런 병이다. 다시는 그런 날들을 맞이하지 않길 바란다. 요즘은 잠도 잘 자고 매일매일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 마냥 밝지는 않더라도, 그다지 나쁘지만은 않은 미래가 계속해서 찾아올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