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록지 않았어
대만유학생 친구가 영문발제를 준비하다 말고 비명을 지른다. "엔트로피!!! " 우리 모두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 친구를 본다. 나를 뺀 모두는 나와 그 친구를 번갈아 본다. 너네들 같은 부분이지? 대체 무슨 소리니. 엔트로피, 지오패쏠(th)로지. 잠시만요. 우리가 전공하는 과목 이름이 뭐죠?
십 년도 더 전에 이미 국회도서관 소장 논문을 클릭 몇 번으로 프린트할 수 있었는데, 시대를 역행하여 유학을 온 건지 오륙 년쯤 전의 학술지에 실린 논문 하나 보는 데 2주를 기다려야 한단다. 쌍시옷이 이빨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걸 틀어막고 복사를 신청한다. 펜으로 종이에 쓴다. 학적번호, 내 이름, 전화번호, 복사할 논문 제목, 실린 학술지 이름. 몇 페이지에 실렸냐고? 알 게 뭐야 끄아악. 종이를 구겨서 허공에 던 지는 상상을 했지만 꾹 참고 써서 제출. 도서관 전기세를 얼마나 아끼려고 하는지, 후덥지근해서 미칠 지경이다. 다시 한 전 묻는다. 여긴 어디죠? 지금은 몇 년도죠?
잡지 서가에서 발판 딛고 올라서가며 휘청거려가며, 내가 찾는 논문이 실린 잡지제본들을 뽑아 대출하려고 하니 "어머 지금 서가 정리 중이라 이 책들은 대출이 안 됩니다" 란다. 사서 눈을 1초 정도 노려보았다. 사서 잘못이 아닌데 왜 그렇게 그녀가 밉던지. 밖은 30 도고요, 실내온도는 29도인 것 같아요. 저는 키가 작아서 책장 꼭대기까지 손이 잘 안 닿아서요, 책 뽑아오는 것도 덥고 힘들어요. 대출 안 되는 줄 알았으면 내가 지갑이라도 들고 와서 복사를 해갔겠지! 주저앉아 엉엉 떼쓰고 싶었다. 지갑 안 들고 온 게 누구 잘못인데 어디다가. 결국 내 탓.
엔트로피 때문에 열받은 대만 유학생과 입센의 들오리를 읽다가 오리고기에 소주가 마시고 싶어진 한국 유학생이 마주 보고 한숨을 푹 쉬고, cheer up. Everythig will be....
헐헐 웃어버리고 말 일들에 하나하나 신경 곤두세우고 성질부리고 맘속으로 욕을 바락바락 지른 뒤에야 안정을 찾는다. 우여곡절 끝에 복사해 온 논문더미를 쳐다보다가 스르르 눈을 감아버렸다.
덥다. 아직 여름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덥다. 힘들다. 논문 목차도 안 썼는데 벌써 힘들다.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2015년 5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