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내용을 써 보려 할 때면 늘, 첫 줄을 망설이게된다. 별 것 아닌 내용을 쓰려 할 때는 당연하지만, 별 것 아닌 말들을 서슴없이 첫 줄부터 늘어놓게 된다. 그렇게 나는 지금도 첫 줄을 망설이고 있는데, 대단한 내용이 심각해질까봐 관둘까 고민도 된다. 문장이 지저분해지기 전에 생각을 멈춰야겠다.
오랜만, 그렇게 오랜만도 아니지만 확실히 서울은 변했다. 마음이란 게 참 재미있다. 향수병에 시달릴때는 서울이 아무리 미운 면을 내게 보여도 그조차 그리웠는데, 향수병을 떨쳐낸 지금 내 눈에 비친 서울은 괴로운 도시다. 사람들은 왜 이리 괴로울까, 도시의 풍광은 왜 이리 어두울까, 내 인상도 펴지질 않는다. 버스를 타고 명동 즈음을 지날 때, 삼일로 창고극장 간판 옆의 "예술이 가난을 구할 수는 없지만 위로할 수는 있습니다." 라는 글귀를 보았다. 그것이 내 심장을 깊게 찔렀다. 예술로 위로받을 수 있을까. 이렇게 상처가 크고 깊은데, 예술이 과연 메꿔줄 수 있을까. 환자가 환자를 위로하는 격이다. 의사가 필요한데 의사도 환자란다. 아팠다. 어린 시절 보았던 종합병원 안의 어둑어둑한 기운이 서울 안을 꽉 메우고 있다. 하늘은 파랗고 하얗고 햇살은 공기를 찢을 듯 강렬하지만, 내 눈에는 이 도시가 어둡다. 공허한 표정의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을 쳐다보기가 괴롭다. 고개를 숙였다. 나도모르게 탄식을 바닥에 뱉었다. 폐가 오그라드는 느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껏 한 적 없던 이기적인 결심을 하였다. 미안합니다.
2015년 9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