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에스프레소

by 요빈

어느 날 그는 내 앞에서 에스프레소를 홀짝 소리가 나게 마시며, 커피의 맛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에스프레소를 왜 마시는지 알겠다고 했다.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나 스물한 살, 그 스물여섯 살. 겨울.

이미 오래전에 없어진 학교 쪽문 앞 그 카페에서. 쓴 커피를 맛있다며 마시는 당신을 보고,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처럼 커피전문점이 범람하던 시절이 아니었다. 아메리카노가 뭔지도 잘 몰랐고, 카페라테와 모카라테의 차이도 겨우 구분하던 때였다. 나는 커피 맛을 배우지 못한 채, 그와 헤어졌다.


몇 해가 지난 후에 나는 에스프레소 혹은 아메리카노를 즐겨 마시게 되었다. 아마 그가 내 앞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셨을 때의 그의 나이가 내 나이가 되었을 즈음. 나는 이제 드립커피를 즐겨마신다. 많이 변했지. 커피도 못 마시던 아이가, 커피의 맛과 향을 따져가며 마시는 어른이 되었으니. 세월도 그만큼 흘렀고.


사람들은 그를 떠올릴 때에 아메리카노를 함께 떠올리곤 한단다. 그의 묘에 찾아갈 때는 무슨 의식처럼, 아메리카노를 한 잔 사들고 간단다. 내가 모르는 모습이지만, 아는 모습이기도 하다. 내가 아직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그의 묘에는 에스프레소의 흐릿한 향이 퍼져있겠지. 허공에 대고 숨을 크게 쉬어본다.


당신의 흔적이 아직도 여기에 있다. 내 머릿속에 있다. 아마 영원히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흔적을 집어 올리곤 하겠지. 나는 당신을 에스프레소로 기억한다. 남들이 다 아메리카노로 기억하지만, 나만 다르다. 어쩌면 그때의 당신은, 조금 다른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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